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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딩 Jun 18. 2024

주차된 외제차를 박았다.

내 과실 100프로, 와 나 ㅈ됐네


"외제차는 페인트 자체가 달라서 수리 단가가 높아요. 그리고 중요한 문제가 하나 있는데... 저희가 협력업체 카센터에서 수리하시도록 피해차주 분께 말씀은 드려보겠지만요. 차주 분께서 굳이 P사 직영 센터에서 수리하시겠다 하시면 말릴 방법은 없어요. 직영 센터가 수리비가 훨씬 높고요."


망했네 망했어.


망했네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렇다. 나는 남의 차를 들이박았다. 왜 이 놈의 주차는 도무지 늘지를 않는 건지. 설상가상으로 억 소리가 나는, 로고만 봐도 내가 나임네-하는 그런 외제차를 박은 거다. 그나마 다행인 건 주차된 차를 들이박아서 다친 사람이 없다는 거고, 절망적인 건 내 과실이 100프로라는 거다. 피해차량이 외제차임을 확인하는 순간부터 머릿속에서 계산기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어느 정도 상황이 파악되자 짜증이 솟구쳤다. 마트에서 콩나물 한 봉지 살 때도 그램 단위로 가격을 비교해서 샀는데, 예쁜 봄 야상을 골라놓고 살까 말까 고민하다 장바구니에만 넣어두고 끝내 결제하지 못했는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이었단 말인가. 깨알같이 모으고 모아 한번 써보지도 못하고 이렇게 날려버리는데.


주차된 상태의 차를 박았기 때문에 차주는 그 자리에 없었다. 차주에게 먼저 전화를 할까 하다가 보험사와 먼저 상담하는 게 일처리가 수월할 것 같이 보험사에 먼저 연락했다. 냉큼 달려와준 보험사 직원은 풀 죽은 나의 모습을 보며 안 봐도 니 속을 다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앞 범퍼를 갈아야 할 것이며 페인트 칠도 새로 해야 한단다. 그리고 피해 차주가 외제차 회사에서 직영으로 운영하는 수리센터에 간다고 하지 않도록 잘 설득해야 그나마 수리비가 덜 들겠다고 말했다.


“사모님 차량도 수리하시겠어요? 자차 수리는 자부담금이 있어요.”


“아뇨.. 제 차는 됐고요. 상대방 차나 수리해 주세요.”


사실 내 차가 찌그러진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찢어진 청바지처럼 가늘고 긴 흰 선이 죽죽 그어진 외제차의 스크래치만 보였다. 저게 다 돈이구나... 아이고 내 돈.


"차주분께 전화드려서 잠깐 내려오시라 할 건데 같이 만나시겠어요?"


“네.”


차주를 기다리면서 나는 겉으로는 가만히 서있었지만 속으로는 등이 굽어지는 걸 느꼈다.


'직영센터로 간다고 하면 어떡하지? 괜히 한몫 잡아서 비싸게 수리하려고 들면 어쩌지? 블랙박스가 있으니 설마 다른 걸로 트집 잡진 않겠지? 불쌍해 보여야 하나. 가난해 보여야 하나...'


차주는 50대 중반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였다.


"저희 고객님께서 주차를 하시다가 사장님의 차량을 조금 손상시키게 되었습니다."


차주는 그래서 그게 누군데 하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나는 최대한 공손하게 허리를 구부려 인사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초보라 실수했습니다." 차주는 본인차를 한번 쓱 살펴본 뒤 "하이고 참.... 뭐 그래도 그렇게 심각하진 않네요."라고 말했다.


“손상된 부분은 저희 보험사에서 최우수업체로 선정된 외제차 전문 센터에 맡겨서 최대한 빨리 수리해드리려 하는데 괜찮으신지요."


보험사 직원이 말하는 와중에 차주는 "흐아암"하고 하품을 했다. 그러고는 생각보다 하품 소리가 컸다고 생각했는지 "자던 중에 전화를 받아서요."라고 말했다."주무시는데 죄송합니다." 나는 다시 한번 사과했다.


보험사 직원은 보험사 협력 카센터에 외제차를 보내도 되겠냐고 재차 물었다. 그 사람의 말 한마디에 나의 다음 해 보험료가 얼마나 인상될지가 달려있었다. 나는 무표정한 그의 얼굴을 힐끔힐끔 살피며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분석하려 애썼다.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차주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그러세요."라고 말했다.


"수리하는 기간 동안 다른 차를 렌트해드릴 텐데 혹시 원하시는 차종이 있으신지요?"


"아... 괜찮습니다. 한대 더 있어요."


보험사 직원은 양해해 주어 고맙고 최대한 빨리 수리해 주겠노라고 말하며 상황을 마무리 지어주었다. 나도 차주에게 두 번이나 더 감사하다고 말했다.


차주가 자리를 뜨자 안도감이 밀려왔다. 나는 보험사 직원에게도 감사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시계를 보니 시간이 30분도 흐르지 않았다. 나는 어쩐지 오늘 하루의 에너지를 다 써버린 것만 같았다. 아무도 다치지 않았고 그나마 수리비가 덜 드는 카센터로 차를 보냈으니 그럭저럭 선방이었다. 그런데 이 일을 곱씹을수록 왠지 모를 부조리함이 느껴지는 거였다. 이 감정의 정체는 뭘까. 나는 무척 씁쓸해졌다. 내가 그에게 피해를 끼쳤고 그는 상식적이고 이성적인 태도로 나를 대해주었는데, 나는 왜 부조리한 일을 당한 것 같은 걸까.


차주의 ‘쿨함’이 나를 씁쓸하게 했음을 나는 곧 깨달았다. 나는 차주에게 고개를 숙인 게 아니라 돈에게 고개를 숙였단 것도. 외제차를 긁은 후 나는 온갖 상상력을 동원해서 나에게 생길 수 있는 불행한 일들을 지레 걱정했다. 외제차주에게 갑질을 당하고 이런저런 이유로 지갑을 털리고 보험료도 올라갈지 모르며.... 블라블라. 정작 차주는 아주 심플했다. 자신의 차량을 오래 쳐다보지도 않았고 딱히 자신의 유리한 입지를 이용해 나를 압박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정작 그의 쿨한 태도는 나 스스로를 매우 초라해 보이게 만든 것이다.


그와 나 사이엔 피해차주와 가해차주라는 상황적 위계 말고도 외제차와 국산차만큼의 간극이 주는 보이지 않는 위계가 있었다. 나는 상대방의 차량이 외제차여서 더 미안해하고 또 더 감사해했다. 아마 내가 느낀 씁쓸한 감정의 정체는 돈 때문에 구겨진 나의 모습을 마주한 불편함일 거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의 영향력이란 과연 어디까지일까. 물론 나는 가난하지 않고 차주도 부자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명한 것 하나는 내가 끌던 차가 k5가 아니라 폐지 리어카였더라면 나는 더욱더 비굴해지고 초라해졌으리라는 것. 만약 그랬더라면 비굴과 초라함을 넘어 삶이 무너지는 경험을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새삼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난한 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가난하다는 것은 단순히 경제적 여유가 없다는 것뿐 아니라 사소한 일에도 두려움을 갖게 되는 것이며 울컥울컥 가래처럼 차오르는 굴욕감을 끊임없이 삼키며 살아야 하는 것이겠구나. 그리고 그 두려움과 굴욕감은 강자가 전혀 의도하지 않고도 심지어 선의를 베푸는 와중에도 약자의 마음을 좀먹을 수 있는 것이다. 박탈감과 피해의식에서 비롯된 약자의 행동들을 '없는 게 벼슬이냐'며 경멸의 눈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상대적 약자를 대하는 나의 태도와 시선을 좀 더 섬세하게 다듬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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