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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딩 Jul 18. 2024

'The Great Gatsby'는 'Great'한가?

<위대한 개츠피> (스콧 피츠제럴드) 서평

현대의 고전이다’, ‘과대평가된 범작이다.’ <위대한 개츠비>는 논란이 분분한 텍스트다. 어떤 독자와 평론가들은 1920년대 미국에 대한 다양한 상징과 묘사, 주인공 개츠비의 캐릭터가 지닌 양가적인 매력에 찬사를 보낸다. 한편에선 ‘1차 대전 직후 대공황 직전의 미국’이라는 시대 자체의 매력을 등에 업고 유명세를 탔을 뿐이며, 고전의 반열에 오르기엔 문학적 깊이가 얕다고 평하기도 한다.


위대한 개츠비  작가 스콧 피츠제럴드



 고전이란 ‘시공간을 거스르는 힘’을 지닌 텍스트다. 그 시대의 역사와 문화, 인간의 삶을 충실히 재현하는 것은 물론, 시대와 인종, 지역을 아울러 울림을 줄 수 있으며 그 주제의식이 오늘날의 인간에게도 여전히 유효할 때 그 작품은 고전이 된다. <위대한 개츠비>는 지구 반대편 혹은 다음 세기의 인간에게까지 깊은 울림을 줄 수 있는지는 의문지만, 특정 시대(미국의 1920년대)의 문화와 그 시대 인간군상에 대한 충실한 묘사, 캐릭터와 플롯 자체의 매력 등 텍스트 자체의 완성도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개츠비를 읽으면 1920년대 미국의 공기가 만져진다. 그 시대의 미국 상류층의 삶을 이보다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텍스트는 찾기 힘들 것이다.


 제이 개츠비는 그 자체로 미국의 상징이자 미국적 마인드의 전형을 가진 인물이다. 그는 ‘Dreams come true'식의 낙관주의와 ’Make the impossible possible‘식의 개척정신의 소유자다. 또한 도전정신, 한탕주의, 졸부 콤플렉스 등 개츠비가 가진 성격적 특징은 당시의 미국인들이 두루 공유했던 정서다. 또한 톰, 데이지를 비롯한 소설 속 인물들은 법도덕의 해이, 과시적 소비, 불법적인 부의 축적이 만연했던 1920년대 미국 상류층의 전형이기도 하다.


(줄거리)

하류층 집안에서 태어나 1차 대전에 참전하여 장교가 된 개츠비는 상류층 여인 데이지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데이지는 아름답고 매력적이지만 사치스럽고 이기적인 여자였다. 개츠비는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데이지의 마음을 얻는 데 성공하지만, 그녀는 개츠비의 제대를 기다리는 대신 상류층 자제 톰과 결혼한다. 부를 얻으면 데이지를 되찾을 수 있다 생각한 개츠비는 불법적인 방법으로 부를 축적한다. 그리고 유부녀가 된 데이지의 저택 근처에 대저택을 사들인 후 매일 밤 사치스러운 파티를 열고 그녀의 방문을 기다린다.


당시 미국의 부유층은 두 종류가 있었다. 소위 old money(윗세대의 부를 대물림받은 상류계층)와 new money(자수성가형 졸부)다. 톰과 데이지는 전자, 개츠비는 후자다. 개츠비는 이상적 자아를 머릿속에 그려두고 그대로 되고자 노력했고 또 그럴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타고난 운명을 거부하고 자기 힘으로 부를 거머쥐었다. 그는 ‘귀족적 취향과 말투를 가진, 품위가 몸에 밴 태생적 부자’로 타인의 눈에 비치기를 원했지만 톰과 데이지와 같은 old money 계층에게 개츠비는 졸부일 뿐이다. 그는 부자가 되어도 결코 그들의 집단에는 소속될 수 없었다.



부자가 되어 돌아온 개츠비는 다시 데이지의 마음을 얻는 데 성공하지만 데이지에게 그는 그저 아름다웠던 과거이자 일탈의 대상이다. 개츠비는 데이지가 남편 톰을 사랑했던 사실을 부정하고 자신과 결혼하길 바란다. 한편 톰은 개츠비를 수상히 여겨 그의 과거를 캐기 시작한다. 이들의 갈등이 절정에 달하던 날, 데이지가 운전하던 차에 톰의 정부 머틀이 치여 죽는 사고가 생기고, 그 차의 주인인 개츠비가 범인으로 지목되는데...



개츠비의 워딩을 액면 그대로 믿자면, 그는 데이지를 되찾기 위해 부를 쌓았고 자신의 모든 걸 바쳤다. 허나 그가 원한 데이지는 ‘단 한순간도 다른 사람을 사랑한 적이 없는 데이지’다. 그는 데이지의 이기심과 허영은 감싸줄 수 있으나 그녀의 과거를 보듬지는 못한다. 개츠비는 정말로 데이지를 사랑했던 걸까? 혹, '가난 때문에 사랑을 잃어야 했던 자신의 과거'를 되돌리고 싶었던 건 아닐까.



개츠비가 진정 열망했던 것은 ‘돈’이었을까, ‘데이지’였을까, ‘자신의 이상 속 자신’이었을까.



그는 순수하지만 무모했고, 진취적이지만 외골수였으며, 꿈은 거머쥐었지만 콤플렉스는 놓지 못했다. 그리고 범법자다. 그는 불법적인 방법으로 부를 쌓았고 그의 사랑은 부도덕했으며 어떤 의미에서 그의 죽음은 자멸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개츠비>의 화자인 닉은 그를 ‘Great'하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뭘까?



당시는 부가 곧 법이자 도덕이었고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웠으나 정신적으로는 공허했던 시대였다. 당시의 상류층들은 과시적 소비, 섹스, 파티에 탐닉했다. 그런 시대를 살면서 ‘잡을 수 없는 이상’을 추구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희소한 일인가. 닉이 말한 ‘Great'은 ‘타락한 시대를 살고 있는 타락한 인간 중 당신(개츠비)이 가장 순수하다(혹은 제일 낫다.)’는 의미 아닐까. 사랑할 가치가 없는 여자(데이지)를 사랑했고 바꿀 수 없는 것(자신의 출신과 학력, 데이지의 과거)을 바꾸려 했고, 이상과 실제 삶의 불일치를 용납하지 못했기에 개츠비의 몰락은 당연했는지도 모른다. 결과적으로 자신을 파멸시킨 욕망이라 해도, 그가 욕망한 대상이 사실은 무가치한 것이었다 해도, 죽는 순간까지 무언가를 끝까지, 간절히 열망했다는 사실. 그 사실이 닉을, 그리고 당시의 독자들을 감동시켰던 것 아닐까.



나는 <위대한 개츠비>가 고전의 반열에 오르기엔 모자라다는 평가에 동의한다. 하지만 현대의 고전이면 어떻고 과대평가된 범작이면 어떤가. 이렇게 매력적이고 완성도 높은 20세기 소설을 21세기에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즐겁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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