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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딩 Jul 19. 2024

'절약'이라기엔 서글프고 '가난'이라기엔 미안한

 


우린 생활이 쪼들린다. 간단하고 속 시원하게 ‘나는 가난하다’라고 표현하고 싶지만, 그건 ‘수도세를 못 내어 수도가 끊기고 쌀이 떨어져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한여름에도 에어컨 없는 방에서 부채질을 해야 하는’ 진짜 가난한 사람을 기만하는 일일 것 같아 관둔다. 그렇다고 우리의 생활 방식을 ‘절약’이라고 말하기엔 서럽고 억울하다. 나는 절약이 싫다. 그리고 난 절약을 하는 게 아니라 돈을 쓰고 싶어도 쓸 수가 없는 거다. 절약이란 응당 더 나은 삶을 위해서 현재의 욕구를 절제하는 방식이어야 하는 것 아닌가? 우리는 오늘의 빵구를 땜하려 내일을 저당 잡히는 방식의 삶을 살고 있다. 이건 아무리 봐도 절약이 아니다.



 객관적으로 말해, 우린 절대적 잣대의 가난에 속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늘 쪼들린다. 아이가 셋이 되고, 셋 중 하나가 느린 아이라는 이유로 어쩔 수 없이 나의 휴직이 길어지자 우리는 자연히 긴축재정으로 경제정책을 선회했다.



 남편은 매일 아침 먹던 녹즙을 끊었다. 나는 친구를 만나지 않게 되었다. 첫째는 학원을 줄이고 방과후 프로그램이나 문화센터를 이용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가장 체감되는 건, 몸이 힘들어도 외식을 망설이게 된다는 것이다.

 


 피자를 먹을 땐 늘 1+1 피자를 주문한다. 크기도 왠지 작고 토핑도 부족해 2판을 다 먹어도 어딘가 포만감이 부족하다는 걸 매번 깨닫지만 늘 그렇게 시킨다. 파마한 지 한참 된 머리는 뿌리 부분이 봉긋함을 잃고 비라도 맞은 것처럼 두피에 달라붙어버렸다. 초라함을 숨기려 머리를 질끈 묶고 다니면서 동네 미용실에서 만원 짜리 앞머리 파마만 반복한다. 남편은  저가 프랜차이즈 남성커트 전문점을 이용하게 되었다. 커트비는 단돈 만원. “와 정말 혜자스런 가격이다. 앞으로 계속 거기 다니면 되겠네.”라고 말하자, 남편은 “그런데 정말 딱 만 원 치만 깎아줘.”라고 말했다.



 언제 한 번은, 남편이 고기를 무한으로 리필해 주는 샤브샤브집에 가자고 했다. 가격은 인당 2만 2천원. 아이들까지 데려가려면 한 끼에 7만 원이 든다. 이런 배때지 부른 놈! 숯불구이도 아니고 샤브샤브에 7만 원 지출을?


 “히익! 샤브샤브를 7만 원이나 주고 먹자고? 그냥 전에 갔던 샤브샤브집 가서 2인분 시키고 고기 조금 추가하면 4만 원이면 덮어쓸 텐데? 먹어봤자 얼마나 먹는다고 비싼 무한리필집을 가?”


 “3만 원 차이네. 자기가 돈 아깝다는 생각 안 들게 내가 그 3만 원 치 다 먹어 줄 테니 오늘은 거기 가자.”



 그날 무한리필 샤브샤브집에 간 우리 가족은 가게의 고기를 거덜 내고 왔다. 와, 샤브샤브 고기를 새우깡 집어먹듯 건져 먹을 수도 있는 거구나. 일등공신은 단연 남편이었다.

 


 “와, 우리 10 접시도 넘게 리필해서 먹었다. 그렇지? 신기하네. 그동안 어떻게 가족 다섯이서 샤브샤브 2인분에 고기 2 접시 추가한 걸로 배를 불리고 왔지?”



 말하는 순간 깨달았다. 당신은 지금껏 샤브샤브를 먹으면서 야채랑 죽만 먹었구나. 그것도 모르고 늘 배불리 먹고 왔는데 무슨 놈의 무한리필이냐고 당신 앞에서 입을 놀렸네.



남편은 배를 두드리며 말했다.

 “거봐, 돈 안 아깝지?”

 “응! 정말 배부르다. 당신이 야채 아니고 고기로 배를 채워서 너무 좋아!”



 다시 말하지만 우린 쪼들린다. 치킨을 먹는 날엔, 한 마리를 시켜놓고 아이들의 배를 미리 조금 불려놓기 위해 밥에 김을 싸서 한 명당 5개씩 의무적으로 먹게 한다. ‘치킨 먹을 건데 왜 밥을 먹어야 하냐’고 아이들이 물으면, 치킨만 먹으면 배가 아플 수 있어서 그렇다고 대답한다. 시장에선 크고 싱싱하고 빨간 딸기를 째려보다가 결국은 빨간 다라이에 수북이 담긴 작고 시든 딸기를 고른다. 집에 와서 씻어보면 아랫부분의 딸기는 더 크기도 작고 문드러져 있을 거란 걸 알면서도 다음에도 똑같은 딸기를 집는다.



 그래서 부자가 되고 싶으냐고? 사실 그건 아니다. 그저 조금만, 조금만 더 여유가 있으면 좋겠다. 내 기준에 ‘생활에 여유가 있다’는 건 명품 가방을 들거나 비싼 피부 관리를 받는 것이 아니다. 백화점에 가서 누워있는 옷 대신 마네킹이 입고 있는 옷을 벗겨오고 싶은 것도 아니다.



 치킨으로 저녁을 때우기로 한 날은 그냥 한 번에 두 마리를 시키고 싶다. 몸이 고달픈 날은 고민하지 않고 배달의 민족을 뒤지고 싶다. 개수보다 크기와 싱싱함을 따져서 과일을 사고 싶다. 냉장고에 숨겨놓고 조금씩 아이들에게만 꺼내주는 게 아니라 나도 신선한 제철 과일을 와구 와구 먹고 싶다.



내일은 남편의 생일이다.

아이들을 재우고 남편 옆에 쓰러지듯 털썩 누웠다.


“온몸이 다 아프고 기력이 하나도 없어. 이제 비타민드링크를 먹어도 힘이 안 나. 수명을 가불 받아서 하루하루를 버티는 느낌이야.”


“우리 여보가 정말 뼈밖에 안 남았네. 누가 보면 간디인 줄 알겠어. 자기를 호강시켜줘야 하는데... 나부터가 이렇게 골골대고 있어서 미안해.”


“됐어. 하루 이틀도 아니고. 내가 전생에 무수리였나 보지.”


“내일 병원 가서 링거 한 대 맞고 와. 한의원 가서 보약도 지어먹고.”


“우리 통장이나 확인하고 그런 소릴 해. 마통 한도가 터지기 직전이라고. 600 남았어. 몇 달 뒤면 폭발이야. 이런 상황에서 링거고 보약이고 그런 걸 어찌해?”


“드디어 테슬라가 다시 회복하고 있어. 내가 뭐랬어? 머스크는 이대로 안 무너진 댔지. 안 팔고 버틴 보람이 있지 뭐야. 자기 그 정도 해줄 돈은 있어.”


“테슬라가 오르는 거랑 우리 생활비 쓰는 게 대체 무슨 상관이야? 난 그 돈 본 적도 만진 적도 없어. 그거 오르면 오늘 나한테 현금이 생기나? 내일 당장 ATM 가서 뽑을 수 있나? 대체 그게 지금 내 생활이랑 무슨 상관이냐고.”


“심리적 지지대가 되어주잖아. 마음을 풍요롭게 해 주고 좋은 꿈을 꾸게 해 준다고.”


“심리적 지지대 같은 소리 하네. 그게 전기세를 내줘, 수도세를 내줘?”



 나는 오늘만 사는 인간이다. 남편이 말하는 재테크가 나중에 우리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해 줄지는 몰라도 지금의 나를 위로해주지 못하는 건 확실했다. 지금 내게 중요한 건 통장에 찍힌 마이너스였다. ‘쓰읍!’하고 디스랩을 장전하려다 멈췄다.



 그래, 내일은 저 치의 생일이지.  

“그건 됐고, 생일 선물 뭐 받고 싶어?”

“난 필요한 게 아무것도 없는데.”

“그래도 말해봐.”

“진짜 괜찮다니까. 선물 없어도 돼.”

“왜 이래, 아마추어 같이. 다음 달 내 생일인 거 몰라? 난 생일 선물이 필요해. 그러니까 자기도 얼른 받고 싶은 거 말해.”

 남편은 “정말 없는데.....”라며 뜸을 들이다가 조금 뒤 입을 열었다.



“내가 받고 싶은 선물은 당신의 건강이야. 당신이 건강한 게 최고의 선물이야. 그러니까 내 선물 살 생각 하지 말고 내일 병원 가서 링거 맞고 한의원에서 보약 지어먹어. 일시불로 막 그어버려. 생일선물인데 그 정도 플렉스는 할 수 있지.”



 순간 눈가가 시큰해왔지만 그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더 눈을 부라렸다.



“내가 건강해지면 또 나를 얼마나 부려먹으려고 그래?”


“안 부려먹을 테니까 건강해지기만 해. 나는 점점 올챙이처럼 배만 볼록 나오는데, 당신은 점점 간디처럼 빼빼 말라가니 내가 장모님 뵐 면목이 없어. 살이 다 빠져서 코스모스처럼 돼 버렸잖아. 옆에서 차가 쌩 지나가면 덩달아 휘청 넘어질 것 같아.”


“코스모스? 나 머리 크다고 디스 하는 거야? 왜, 아예 츄파춥스라고 하지 그래?”


“코스모스처럼 예쁘다는 거야. 내일 꼭 병원 가서 인증샷 보내. 그게 내 생일 선물이야.” .



 다음날 아침, 쌀뜨물을 받고 소고기를 잔뜩 넣어 미역국을 끓였다. 후다닥 밥을 마시고 출근하는 남편이 입안을 데지 않도록 적당한 온도로 미역국을 데웠다. 국자로 미역국을 한가득 푸고 젓가락으로 냄비를 휘휘 저어 소고기를 골라 남편의 그릇에 더 얹어주었다.



 출근, 등교, 등원 러시가 끝난 뒤, 정말로 한의원을 찾았다. 30만 원이 넘는 돈을 ‘치료’가 아닌 ‘보신’의 목적으로 쓰는 것이 찔렸지만 그래도 과감하게 긁었다. 날 위한 것이기도 하고 남편을 위한 것이기도 하니 사실은 60만 원어치를 30만 원에 긁은 거나 다름없는 거라며, 그러니 가성비 좋은 선택이라며 혼자 피식 웃었다. 보약 지어먹으면 뭐 하나. 골골거리는 남편, 팔다리 어깨에 주렁주렁 매달린 아이들을 수발하느라 녹용의 약빨을 다 닦아 쓰게 되겠지 싶다. 그래도 일단 녹용이 한번 내 몸에 들어갔다 나가는 거니 안 먹은 거 보단 낫겠지.



 잘 먹고 건강해질게. 고마워, 남편.



 우리는 ‘절약’이라기엔 서글프고 ‘가난’이라기엔 미안한 그런 일상을 살고 있다. 통돌이 세탁기에 처박혔다 나온 빨래처럼 쭈글쭈글했다가 또 탈탈 털리기를 반복하는 하루하루, 도무지 덜어지지 않는 내 몫의 노동, 내가 누군지 무얼 좋아하는지 무얼 할 때 행복한지를 자꾸만 잊게 되는 삶. 그래도 그 속에서도 난 행복을 찾을 수 있다. ‘내가 받고 싶은 선물은 너의 건강이야’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옆에 있기 때문이다.




PS. 다음 달은 내 생일인거 알지?

당신이 원하는 선물을 해줬으니 나도 내가 받고 싶은 선물을 받을 거야.

미안하지만 ‘당신의 건강’은 아냐. 돈 잘 모아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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