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는 안방에서 풍기는 썩은 냄새의 근원이 아빠라는 걸 어찌 알았는지, 멀찍이서부터 코를 막고 현관으로 걸어왔다.
“아빠, 잘 가.”
“OO야, 다녀올게. 이거라도 신어야겠다.”
남편은 까치발을 하고 신발장 맨 위에서 시커먼 무언가를 꺼내 바닥에 내려놓았다.
탁-하고 구두굽 부딪히는 소리를 듣고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무광블랙임에도 어딘가 촌스럽고 화려한, 남편이 절대 고를 리 없는 디자인의 구두였다. 어딘가 낯익은 구두인데... 이걸 어디서 봤더라?
“아오, 나 발에도 살쪘나 봐. 이젠 하다 하다 구두도 안 들어가네.”
“오늘만 참아. 토 묻은 신발... 세탁해놓을 게.”
“토? ▢▢(막내)가 또 토했어?”
“아니, 너네 아빠가 어제 술 먹고 신발이랑 옷에 토했단다. 엄마가 야밤에 그거 치우느라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아 씨, 머리 아파 죽겠는데 애들한테 왜 그런 말을 해.”
“이거나 마시고 언넝 가셔.”
약국 판매용 숙취해소제였다. 숙취해소엔 역시 편의점보단 약국약이지. 남편이 회식에 끌려가는 날이면 항상 약국에서 숙취해소제 2병을 미리 사둔다. 갓 퇴근해서 한 병, 다음날 출근 전에 한 병.
“고마워. 나 갈게. 아오. 이 놈의 구두. 불편해 죽겠네.”
남편은 간이 안 좋아 술을 잘 못한다. 남편이 회식을 하고 온 날이면 남편의 몸뿐 아니라 이불, 베개, 화장실, 안방, 심한 날은 집 전체에서 술 냄새가 난다. 간이 술을 해독시키지 못하니 몸 밖으로 술기운을 어떻게든 떠밀어 보려 애쓰는 느낌이다. ‘액체’는 오줌을 싸면 되고 ‘안주’는 소화시켜 똥을 싸면 되지만, 그놈의 술 ‘기운’. 그 기운은 차마 해결이 안 되나 보다. 온 집안의 공기에서 쩐내가 난다.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며 창문을 열었다.
남편은 술을 질색하지만 일주일에 한 번 꼴로 회식에 끌려가 술이 떡이 되어 온다. 그러고 나면 3일 정도를 술병으로 끙끙 댄다. 첫날은 머리가 깨질 것 같다 하고 둘째 날은 배탈이 난다. 셋째 날은 죽은 듯이 잠만 잔다. 거대한 와불상 같던 남편은 그렇게 3일 정도를 골골대고 나서야, 좀비처럼 삐걱거리며 안방에서 걸어 나온다.(물론 그 와중에 출퇴근은 다 한다.) 설상가상으로 그때부턴 몸의 긴장이 풀렸는지, 디스크가 있는 허리가 아파온다. 일주일 내내 앓고 있는 남편을 보면 세상 저런 원수가 따로 없다. 어쩌자고 저렇게 껍질만 크고 속은 부실한 남자를 골랐지? 웬수야, 웬수야 하며 수발을 들다가 이제 겨우 좀 살아나나 싶으면 다시 회식에 끌려가 술이 떡이 되어 오는 거다.
어제는 그런 남편이 유독 술을 더 많이 마시고 온 날이었다. 양동이로 물을 쏟아붓듯 비가 오는 날이었다.
밤 10시쯤 남편의 전화가 왔다.
“벌써 끝났어?”
“비가 많이 와서 일찍 파하는 분위기네. 휴. 진짜 선방했다. 대리 불렀어. 금방 갈게. 1시간 내로 가.”
“너무 다행이다. 조심해서 와. 차에 지갑이나 휴대폰 놓고 내리지 말고.”
“걱정 마”
대리를 불렀으니 한 시간 내로 집에 올 거라던 남편은 12시가 넘어도 소식이 없었다. 아니, 늦으면 늦는다고 무슨 일이 있으면 있다고 말을 해줘야 내가 기다리든 안심하고 자든 경찰에 신고를 하든 할거 아닌가? 아저씨. 저는 당신이 몇 시에 오든 7시면 일어나야 하는 사람이거든요?
시간이 갈수록 짜증은 걱정이, 걱정은 두려움이 되었다. 술도 얼마 안 마셨다고 했는데 전화는 왜 안 받는 건지. 비 오는데 길에서 미끄러지기라도 했나. 저 인간 잘 못 넘어지면 허리 아작 나는데. 아니면 빗길에 교통사고라도 낫나. 질병 구완도 서러운데 설마 교통사고 구완까지 해야 하는 건 아니겠지.
새벽 1시. 두려움이 절실함으로 바뀌려 할 무렵, 현관 비번을 누르는 소리가 났다. 몇 번이나 에러가 났다. 반가운 마음도 잠시 단전에서부터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연락도 없이 왜 이제야 오는 거야! 기다리는 사람은 생각 안 해?”
현관문이 열림과 동시에 음소거 모드로 외쳤는데, 집에 돌아온 남편의 몰골을 보고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남편은 사지육신 멀쩡하게 돌아왔다. 얼굴, 옷, 가방, 신발에 까지 토사물을 잔뜩 묻힌 채로.
“이런 꼴로 와서 미안해. 너무 흉하지.”
“어떻게 된 거야?”
“택시에서 멀미가 나서 토했어...”
혀가 잔뜩 꼬부라진 그가 말했다. 신발을 벗는 몸이 휘청였다.
“고개 숙이지 마. 어지럽잖아.”
신발 벗는 걸 도와주려 내가 허리를 숙이자 남편은 휘청이는 와중에도 손사래를 쳤다.
“아냐. 자기는 만지지 마. 더럽잖아.”
“괜찮으니 얼른 들어와.”
괜찮으니 얼른 들어와. 이 불쌍한 인간아...
“씻을 수 있겠어? 도와줄까?”
“바닥에 앉아서 씻으면 돼. 미안해. 옷은 내일 내가 빨게. 자기는 만지지 마.”
“안 더럽다니깐? 자기 씻는 동안 내가 해결해 놓을 테니 조심해서 씻고 나와.”
안방 화장실의 샤워기 소리를 뒤로하고 남편이 허물처럼 벗어놓은 옷가지를 들고 거실로 나왔다. 비닐장갑을 끼고 두루마리 휴지를 돌돌 말아 셔츠에 달라붙은 토사물을 떼어냈다. 얼룩지고 시큼한 냄새가 나는 남편의 옷가지가 그의 신세인 것만 같아 마음이 아렸다.
“옷 그대로 놔둬! 내일 내가 치울게.”
“안 더럽다니깐?”
남편은 샤워를 하면서도 그게 신경 쓰이는지 밖에다 대고 외쳤다.
‘당신이 당신 옷을 닦으며, 이게 꼭 당신의 신세 같다고 생각하게 할 순 없잖아.’
남편이 나오기 전에 얼른 옷을 닦고 물로 한번 헹궈낸 뒤 세탁기에 던져버렸다.
‘토 묻은 것들. 너넨 오늘 내 남편 눈에 띄면 뒤진다.’
샤워를 하고 나왔어도 술냄새는 여전했다. 숙취해소제에 빨대를 꽃아 내밀었다.
“고마워.”
그래, 이 사람은 아무리 혀가 꼬부라지고 속이 뒤집어져도 고맙다는 말은 잊지 않는 사람이다.
“금방 온다던 사람이 왜 이렇게 늦은 거야? 얼마나 걱정했는 줄 알아?”
“비가 와서 일찍 마쳤는데... 비가 오니 대리가 안 잡히는 거야. 다 같이 대리를 기다리다가 부장이... 대리 잡힐 때까지 3차나 하자고 하지 뭐야. 그 길로 막걸리 집에 들어가서는 계속 퍼마시기만 했어.”
“나쁜 놈들... 술 못 먹어 죽은 귀신이 붙었나. 그건 그렇다 치고 전화는 왜 안 받은 거야!”
“배터리가 나갔어. 미안해.”
“살아 돌아왔으니 됐어. 얼른 자.”
안방 문을 닫고 나왔다. 부아가 치밀었다. 한국의 회식문화는 믿을 수 없게 폭력적이고 말도 안 되게 저열하다. 혼자 열폭 한들 무엇하리. 열 낸다고 뜯어고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술을 마시면 늘 새벽에 목이 타는 남편을 위해 포카리 스웨트를 머리맡에 놓아주려 다시 남편 방의 문을 열었다.
남편은 벽 쪽을 보고 웅크리고 누워있었다. 조용히 문을 닫고 나오려는데 남편의 혀 꼬인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자기야...”
“얼른 자지, 왜.”
“난 정말 우리 가족 때문에 살고 있는 거야.”
“......”
“그런데 난 이렇게 살고 싶지가 않아. 이건 내가 원한 삶이 아니야......”
“......”
“못난 모습 보여서 미안해. 그런데 나 정말 힘들어...... 내 꿈은 이게 아니었어.”
“당신 꿈이 뭔데...”
“몰라. 이젠 기억도 안 나. 근데 이건 아니야.”
“...”
“돈이랑 시간을 바꾸는 건 괜찮아. 근데 건강까지 바꾸면서 살고 싶지는 않아. 이렇게 하찮은 일로 내 젊음을 다 버리고 싶지가 않아......”
"이건 내가 원한게 아니야. 난 이렇게 살기가 싫어 " 남편은 같은 말을 수없이 중얼거렸다. 목소리가 습하고 탁했다.
불쌍한 내 남편.
그의 곁으로 가서 양손으로 어깨를 잡고 얼굴을 내 쪽으로 돌렸다. 숙취 때문인지, 울음 때문인지 눈을 반도 채 못 뜬 그의 얼굴이 울긋불긋했다.
“잘 들어, 자기. 자기는 지금 아주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 거야. 자기 덕분에 우리 가족이 다 같이 밥 먹고 사는 거야. 가족을 부양하는 건 정말 힘들고 어려운 일이야. 자기가 하는 일은 하찮은 일이 아니라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모두가 한다고 해서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야.”
“고마워... 못난 모습 보여서 미안해.”
“하나도 안 못났다니까. 괜찮으니까 얼른 자. 정말 늦었어.”
“난 자기 덕분에 사는 거야.”
“알았다니까. 얼른 자.”
남편은 더 무어라고 중얼거렸지만 더 이상 듣지 않고 밖으로 나왔다. 거실 소파에 앉아서 남편의 코 고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 소리 없이 엉엉 울었다.
“나 갈게.”
“그래, 점심때 해장국 먹어.”
남편은 전 날의 대화를 기억하지 못하는 듯했다. 차라리 다행이었다.
남편은 ‘머리가 아파 죽네, 속에서 꾸륵꾸륵 소리가 나네’ 소리를 하며 신발장에서 찾아낸 구두를 신고 나갔다.
‘다 치운 줄 알았는데... 신발에 묻은 걸 안 치웠구나.’
단벌신사의 하나뿐인 컴포트화를 닦으려 신발장에 쭈그려 앉은 나는 ‘아!’ 하고 나도 모르게 외쳤다. 생각났다. 남편이 방금 신고 간 그 구두. 생소하지만 분명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낯익은 구두, 그 구두는 우리의 결혼식 날 남편이 신었던 구두였다.
맞춤정장가게에서 국산원단 대신 이태리원단으로 턱시도를 맞추고 서비스로 받은 바로 그 턱시도 구두. 처음 신을 땐 딱딱한 것 같아도 ‘이태리산 최고급 가죽’이라 발 모양대로 가죽이 늘어나고 신을수록 부드러워져서 10년은 거뜬히 신는다던 바로 그 구두.
그 기억이 너무 새삼스럽고 반가워 혼자 웃었다. 10년은 개뿔. 공짜는 다 이유가 있다고, 남편은 결혼식 날 딱 한번 신은 뒤로 그 구두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저게 최고급 가죽이라니 이탈리아 사람들은 다 나막신만 신나보다’며 욕을 한 바가지 했던 기억이 난다.
남편은 거의 10년 만에 그 구두를 꺼내 신고 갔다. 오래전 클래식 반주에 맞춰 멋진 턱시도를 입고 결혼식장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던 그 다리로, 그날의 구두를 신고 터덜 터덜 걸어 집을 나섰다. 그날의 음악이 새삼 머릿속을 맴돌았다. 환한 얼굴, 곧은 목, 쭉 펴진 어깨, 당당하던 발걸음이 생각난다. 친정아빠의 손을 잡은 채 땅을 보고 걷다 고개를 들었을 때, 깊은 눈 마주침으로 보내온 그의 강한 확신을 기억한다. 그때 그 확신은 어디에서 온 걸까? 우린 사실 서로에 대해 잘 몰랐는데 말이다. 데이트 때마다 완벽한 계획을 세워 날 이리저리 데리고 다니던 ‘완벽한’ 당신은, 사실은 자신의 계획이 조금만 틀어져도 짜증이 솟구치는 불안쟁이였고, 다른 여자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나만 바라보던 남자는, 사실은 여러 사람이 모인 곳에 내놓으면 꿔다 논 보릿자루가 되어버리는 아싸였다. 난들 뭐가 다를까. 결혼전 그가 기대했던 나는 지금의 내가 아닐 것이다.
결혼 생활 중 우린 서로가 서로에게 결국은 타인일 뿐임을 깨닫고 절망하기도 했다. 그래도 완벽해 보이던 그때의 그보다 지금의 그가 좋다. 그의 결핍은 세상에서 나만이 아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결핍을 온전히 내 보일 수 있는 단 한 명의 사람이 나이기에 내가 그의 아내인 것이다.
우리 그때 참 꿈도 많았다. 서로만 있으면 뭐든 다 잘 될 줄 알았지. 당신은 이제 기억도 안 난다던 당신의 꿈을 내가 안다. 글이 쓰고 싶었던 나, 그리고 물리학을 연구하고 싶었던 당신. 말보다 글을 좋아하고 가르치는 것보다 배우는 걸 좋아하던 나는 교사가 되었고, 자신을 증명하기보다 세상의 이치를 탐구하길 좋아했던 당신은 월급쟁이 회사원이 되었다.
카톡.
남편의 카톡이다.
“여보. 미안해.”
“괜찮대도. 잘 도착했어?”
“어제 나 때문에 속상했지. 힘들다고 해서 안 행복한 건 아냐. 그건 다른 거야. 안 힘들고 안 행복한 것보다 힘들고 행복한 게 백배 나아. 난 행복한 사람이야.”
어제 일을 기억하고 있었구나. 그래. 당신은 그런 사람이지. 난 그런 당신을 사랑하고.
꿈을 이루지 못하는 게 대수인가? 애초에 꿈을 이루는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 중요한 건 서로의 꿈을 기억하는 반려가 있다는 것이지.
결혼식 날 내게로 걸어올 때 신었던 그 구두를 신고 뚜벅뚜벅 집으로 돌아오면은, 그날의 설레고 행복한 마음으로, 하지만 더 크고 깊은 사랑과 연민으로 당신을 맞이할게. 있잖아. 우리는 우리의 꿈만큼 대단한 사람이 되지도 못했고 처음의 약속만큼 아름다운 삶을 살지도 못하겠지만 말이야. 내 머리가 하얗게 세고 당신의 웃음에 깊고도 굵은 주름이 패일 때까지 서로의 곁을 지켜주는 다정한 부부가 되자. 서로의 늙음을, 함께한 세월의 흔적으로 귀하게 여기며 오래도록 우리의 지난 시간을 이야기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