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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딩 Sep 06. 2024

마르케스로 읽는 라틴아메리카의 고독

<백년동안의 고독>(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다음 중 하나는 사실, 다른 하나는 허구라 가정하자. 당신의 눈엔 무엇이 사실 같은가?


100여 년 전의 예언에 따라 흔적도 없이 사라진 마을, 4년 11개월간 그치지 않고 내리는 비, 영혼이 깃든 자연물과 살아 움직이는 사물들, 돼지꼬리를 달고 태어난 아기와 죽었다 살아난 늙은이, 자신에게 반한 남자 모두를 죽음에 이르게 하고서 홀연히 승천한 미녀.
10만 콜롬비아인을 죽게 한 1000일간의 내전, 원주민 인구의 90%를 죽게 한 천연두, 적게는 수백, 많게는 삼천여명의 사상자를 낸 바나나 농장 학살 사건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의 선택은 아마도 후자일 것이다. 우리는 문명사회를 살고 있으니.


그렇다.

전자는 중남미 문학의 거장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소설 <백 년의 고독> 속 허구이고 후자는 과거 콜롬비아의 실제 역사다.



그런데 만약 18~19세기 중남미인들에게 무엇이 더 사실 같냐고 물으면 그들은 어떻게 대답했을까? 그들도 과연 후자를 골랐을까?



<백 년의 고독>은 부엔디아 가문이 ‘마꼰도’라는 가상의 마을에서 겪은 100여 년간의 비극을 다룬 소설이다. 이들은 근친상간의 대가로 돼지꼬리가 달린 아이를 낳을 거라는 저주를 받는다. 이로부터 달아나 새 삶을 살고자 하지만, 세대를 거듭할수록 가문의 구성원들은 하나같이 고독하게 죽어가고, 저주는 실현되며, 부엔디아 가문과 마꼰도는 6세대 만에 지도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마르케스는 <백 년의 고독>에서 라틴아메리카의 비극적 역사에 고유의 토착신앙을 결합했다. 서구 문학계는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허무는 탁월한 묘사와 전개로 ‘마술적 리얼리즘’을 정립한 작품”이라며 극찬했고, 마르케스에게 노벨문학상(1982년)을 안겼다.


 아이러니하게도 마르케스 본인은 자기 작품 앞에 붙은 ‘마술’이라는 수식어를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다. 왜일까? 마르케스는 자신의 책에 쓰여진 내용 중, 실제로 일어난 일에 바탕을 두지 않은 내용은 단 한 줄도 없다고 말했다.


여기서 이 텍스트를 해석하는데 큰 간극이 생긴다. 작가는 '현실'이라 하고, 독자와 평단은 '마술적'이라 하니 누구의 말에 더 무게를 실어야 할까?


필자 역시도 이 책을 처음 읽을 땐 '말도 안 되는 이야기 투성이'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이런 작품이 노벨문학상을 받았나? 란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남아메리카의 역사와 문화, 원주민의 삶과 그들이 공유하는 상식을 공부해 나갈수록, 작가가 왜 이 소설을 '현실'이라고 말했는지가 이해되었다.



‘마술적 리얼리즘’이란 쉽게 말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말이 되게 썼다.’는 뜻이다. ‘말도 안 되는’의 기준은 내가 속한 공동체, 즉 문명사회의 상식이다. 자신들의 세계관으로는 납득할 수 없거나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는 것을 ‘마술’이라 칭하는 것은 어쩌면 이 텍스트를 제대로 해석하기를 포기하는 것 아닐까.  



합리주의 전통과 기독교적 세계관이 지배하는 서구의 시선에서는, 소설의 일부인 죽은 자의 영을 불러내는 주술이나 돼지꼬리가 달린 아이의 출현은 ‘환상’의 영역이다. 하지만 토착신앙과 미신을 바탕으로 세계를 해석했던 토착민들에게 있어서는 삶의 일부였다. 이것을 ‘마술’이라 수식하게 되면 라틴아메리카 토착민의 전통은 ‘허구’라는 편견에 갇히고 만다. 그들에게 오히려 마술 같았던 것은 서양에서 흘러든 신문물이었다. 그들에게 더욱 믿기 힘든 악몽은 끝없는 내전, 자본주의의 침투, 신의 저주로 밖엔 생각할 수 없었던 전염병, 바나나농장 학살 같은 비극이었다.



<발췌>
신기하기 이를 데 없는 그 수많은 발명품에 현혹된 마꼰도 사람들은 어느 것에서부터 놀라야 할지 몰랐다. (중략) 마치 하느님이 인간을 놀라게 할 수 있는 모든 능력을 시험해 볼 작정을 하고서, 마꼰도 사람들로 하여금 경탄과 실망을, 그리고 회의와 터득을 끝없이 되풀이하게 해서 마침내는 이제 현실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를 그 누구도 확실히 깨닫지 못하게 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2권 P38
“오오! 그럼 신부님도 역시 믿지 않으시는군요” 아우렐리아노가 말했다. “뭘 말인가?”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이 서른두 번이나 반란을 일으켰고, 모두 패배를 했었다는 사실 말이에요. 군대가 삼천 명의 노무자를 몰아세워 기관총으로 난사했다는 사실, 그리고 화차 이백량이 연결된 열차로 시체를 운반해 바다에 버린 사실 말이에요” 아우렐리아노가 대답했다. 2권 P295   



라틴아메카 원주민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선 그들의 역사뿐 아니라 지리적 맥락도 알아야 한다. 노아의 홍수를 연상케 하는 거대한 폭포, 바다 같은 호수들, 지구최대의 정글이자 특이 생물의 난장인 아마존, 해발 6000m가 넘는 고봉이 100여 개에 달하는 안데스 산맥... 인간의 상상을 뛰어넘는 원시자연과 공존해야 했던 그들이 과학과 이성 대신 주술과 미신으로 세계를 해석하는 것은 당연했다.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그 땅의 사람들이 보고 듣고 느낀 현실은 허구가 되고, 지금은 수치와 활자로만 존재하는 믿기 힘든 죽음들이 오히려 현실이라는 것.  



마르케스는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본인에게 노벨문학상이 수여된 것은 단지 문학적 표현 때문이 아니라 라틴아메리카가 처한 이 엄청난 현실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중략) 나의 작품은 종이 위의 현실이 아니라, 비극적 역사를 견뎌낸 라틴아메리카의 모든 창조물의 실제 현실입니다.


 

어쩌면 <백 년의 고독>의 의의는,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마술적'으로 허물었다는 점이 아니라, 라틴아메리카의 전통과 세계관을 세상 밖으로 끄집어냈다는 데 있지 않을까?   



라틴아메리카와 좀 더 깊이 눈 마주치기 위해 <백 년의 고독> 속으로 들어가 보자. 이 작품에서 단 하나의 키워드를 꼽는다면 ‘고독’이다. 모든 인물은 지독한 고독 속에서 살아가거나 죽어간다. 이 고독은 라틴아메리카의 숙명 그 자체다.


긴 세월 동안 중남미인들은 죽음 언저리를 배회하며 살아야 했다. 이들은 주류 역사로부터 소외당했고 자신들의 세계관을 설득할 수 있는 전통을 상실함으로써, 그들의 삶을 살지 않은 그 누구에게도 이해받을 수 없게 되었다. 라틴아메리카가 지닌 고독의 근원은 ‘불통’과 ‘소외’다.



 삶을 황폐화시키는 것이 모두에게 동일하지 않다는 사실과 주체성을 찾으려는 우리의 피맺힌 노력을 잊은 채, 서구인의 잣대로 우리를 재단하는 것을 한편으로는 이해합니다. 하지만 우리 현실을 타인의 방식으로 해석하는 행위는 갈수록 우리를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로 만들고, 갈수록 우리의 자유를 앗아가며 우리를 더욱 고독하게 만들고 말 것입니다.(중략) 왜냐하면 우리의 가장 큰 문제는 우리의 삶을 믿게끔 만들 수 있는 전통적인 수단이 불충분하다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친구 여러분, 이것이 바로 우리 고독의 핵심입니다. 

 -마르케스의 노벨문학상 수상소감 中   



<백 년의 고독>에서 인물들의 정신과 육체를 잠식했던 고독과 죽음의 그림자, 세대가 바뀌어도 뫼비우스의 띠처럼 되풀이되는 비극적 운명, 최초의 예언대로 지도상에서 흔적 없이 사라진 마꼰도.

<백 년의 고독>은 그 자체로 라틴아메리카의 역사이자 그 안에서 고통받았던 라틴아메리카인들의 삶이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억압과 수탈과 포기에 맞서 왔던 우리의 대답은 삶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홍수나 페스트, 굶주림과 대격변, 심지어는 수세기 동안 지속된 영원한 전쟁도 죽음을 초월한 끈질긴 삶의 장점을 축소시킬 수는 없었습니다.

-마르케스의 노벨문학상 수상소감 中


마르케스의 결론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는 이어지고 그들은 오늘을 살고 있다. <백 년의 고독>은 비극으로 점철된 역사 속에서 고독하게 죽어간 사람들과 이 비극을 딛고 오늘을 살고 있는 라틴아메리카에게 바치는 마르케스의 비망록이자 헌사처럼 느껴진다.



적지 않은 분량과 결코 쉽지 않은 텍스트, <백 년의 고독>은 분명 힘든 책이다. 그러나 이 작품을 읽어내려는 우리의 작은 노력이 라틴아메리카를 고독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첫걸음이라 믿는다. 완독이 쉽지는 않으나 그 시간과 노력이 헛되지 않을 작품이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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