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이거 내 선물이야?"

선물에 대하여

by DJDJ

해가 바뀐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찬 공기가 한창인 추운 어느 겨울밤을 뚫고 집으로 오는 길이었다. 조금은 늦은 시간까지 일을 하고 책상을 정리한 후, 겉옷을 입으며 생각했다.


‘오늘은 와이프가 받고 싶다던 꽃을 사고 가야 한다.’


시계를 들여다보니 시간은 벌써 7시를 넘어 있었고, 혹여 꽃 가게가 문을 닫지나 않았을까 하는 조급한 마음에 서둘러 가게에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집 근처 꽃 가게는 아직 영업 중이었다. 8시 반 근처에 꽃을 사러 가겠다고 수화기 너머에 있는 꽃 가게 주인에게 문을 닫지 않고 나를 반드시 기다려야 한다는 투로 이야기한 후, 통화를 끝내고 버스 정류장으로 빠른 걸음을 재촉했다. 그렇게 서둘러서 한참 뒤에 도착한 꽃 가게에서 나의 눈을 사로잡았던 장미꽃... 노란 장미를 고르고(한겨울에 장미꽃이 신기하기도 했지만 그 짙은 노란색이 뭔가 따스하게 느껴졌었다. 하지만 노란 장미 뒤에 무슨 뜻이 숨어 있는지는 아직까지도 모른다. 방금 찾아보니 시기, 질투란다. 이런...) 적당히 예쁘게 포장해 달라고 플로리스트에게 부탁했다.


와이프를 알고 지낸 지 5년이 넘었지만 꽃 선물은 처음이 아닐까 싶다. 맞다. 결혼 전에 한 번 약속 장소에 일찍 도착했던 나는 백화점 앞 노점상에서 팔고 있는 꽃을 보고 선물해야겠다는 생각을 갑자기 한 적이 있다. 결심을 하고 노점상에 다가간 순간, 언제 나타났는지 서둘러 나를 가로막으며 꽃을 사지 못하게 했던 내 여자친구(지금의 내 와이프이다.)의 웃는 얼굴이 순간 그려졌다. 지난 생각을 하면서 혼자 웃음을 머금고 집 문을 열었는데, 네가 나를 먼저 바라보았다.


"아빠, 이거 현정이 선물이야?"


...


문득 집에 오는 길에 버스에서 듣던 라디오에서 네 살짜리 아이가 그림책을 사달라고 졸랐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네 살이면 무언가를 사달라고 의사표시를 하게 된다는 사실에 신기해하며, 우리 딸은 언제 저렇게 의사표시를 하게 될까 하고 육아에 지친 마음에 버스 안에서 조그마한 한숨을 지었었다. 그런데 지금 네가 나에게 자기 선물이라는 의사표시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여태껏 딸을 위한 선물을 살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그냥 부모가 항상 무언가를 사줘야만 했던 갓난 아이는 자기의 의사와 상관없이 다른 사람들의 선택에 의해 수동적으로만 물건을 취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자신의 의사가 반영될리 없는 모든 물건들이 아이의 주변에 있는 것이다. 아기 옷은 물론, 젖병, 신발, 유모차 등등 아기의 선택은 완벽히 배제되어 있다. 선물이라는 이름으로 내가 너를 위해 무언가를 샀던 기억이 없다. 항상 생필품 사듯 무의식적으로 딸아이의 물건은 그저 쇼핑카트에 넣는 ‘그냥’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너도 선물을 받을 준비가 된 것이다. 선물이라는 말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내 손에 들려 있는 무언가가 자기를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설렘을 안고 날 쳐다볼 줄 아는 그녀는 이제 무려 네 살이니까... 앞으로는 가끔씩 너의 선물도 사 올 줄 아는 센스 있는 아빠가 되어야 할 텐데...


가끔 살아가면서 선물을 할 때의 기쁨이 그립다. 남에게 무언가를 주는 기쁨, 그리고 내가 준 무엇이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의미가 있을 때, 선물은 정말 할만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준 선물을 두 손으로 고이 받쳐 들고는 경이로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살며시 뿜어져 나오는 그 기쁨의 단내가 퍼지는 찰나의 순간. ‘나는 이렇게 센스 있고 멋진 사람이야.’라는 자신감과 함께 상대방으로부터 전해져 오는 화창하고 따뜻한 행복의 기운이 선물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주는 내가 무언가를 얻기 위함이 아닌, 받는 네가 무언가를 얻기를 바라는 선물... 그로 인해 행복을 느끼는 따뜻함... 너도 나도 그렇게 따뜻한 사람이 되도록, 이 세상과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선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