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도 2월.. 그렇게도 꿈에 그리던 동계 올림픽을 우리나라 평창에서 개최하던 그때를.. 사실 나는 잘 기억하지 못한다. 오히려 1988년 서울에서 열린 올림픽 때 내 나이 또래의 아이가 굴렁쇠를 굴리는 장면(왜 굴리는지에 대한 강한 의문이 있었다.)과 2002년 한국 축구의 4강 신화를 낳은 한•일 월드컵 때의 ‘붉은 악마’들의 응원이 더욱 선명하다. 그러나 동계 올림픽은 조금은 다르다. 비인기 종목이 많은 게 사실이었고, 따뜻한 남쪽에서 자란 나에게 익숙하지 않은 눈과 얼음을 바탕으로 한 스포츠라는 점에서 경험이 없던 터라 더욱 멀게만 느껴지는 겨울 스포츠 대잔치였다. 그나마 평창 동계올림픽은 우리나라에서 열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던 올림픽이었고, 덕분의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사실이다. 별로 관심이 없던 나에게도 평창올림픽과 관련하여 두 가지만은 잊지 못할 것 같다.
첫 번째는 김연아 선수의 UN 연설 장면. 훗날 김연아 선수에 대한 너희 세대의 평가가 궁금해진다. 피겨스케이팅의 전설 김연아 선수는 비인기 종목이었던 한국의 피겨스케이팅을 인기 스포츠의 반열에 올려놓기만 한 것이 아니다. 감동을 선사하는 그녀의 연기는 국민들은 물론 세계의 스포츠 팬들의 넋을 앗아갔고 그녀의 피날레 이후 터져 나오는 눈물과 환호는 멋진 예술 작품을 감상한 것 같은 전율을 선사하곤 했다. 특히, 마지막 트리플 악셀을 하기 위해 저만치 멀리서 도약을 시작할 때, 온 세상이 고요해진다. 그 엄청난 스피드와 자신감으로 빙판을 가르며 의지의 찬 모습으로 누구보다 높고 빠르게 하늘 위로 날아오를 때는 경이로움이 느껴지기까지 했다. 피겨스케이팅 선수들이 이른 나이에 은퇴를 할 수밖에 없기에 그녀는 어린 나이에 빙판을 떠나야 했지만 그녀의 영향력은 계속되고 있다. 2017년 11월, 그런 그녀가 평창 올림픽을 앞두고 UN에서 평창올림픽 휴전 결의를 위한 특별 연설을 하게 된다. 어찌나 당당하고 멋있는지 그 장면은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난다. 꼭 한 번 볼 것을 추천한다.
두 번째 장면을 이야기하기 전에 오늘 내가 너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시작해야겠다. 오늘은 속도에 대하여 아빠가 살아오면서 느꼈던 것들을 전해주고 싶다. 20대 중후반의 어느 순간에서인가 나는 과연 잘 살고 있는지 스스로 반문하기 시작했다. 취업에 대한 걱정과 함께 개인적인 삶의 목표 사이에서 갈등을 하고 있던 그 어려웠던 시기에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나 혼자서 고민이 많았던 것 같다. 그 누구에게 물어보아도 명쾌한 답을 해주는 사람이 없었고, 결정은 결국 나의 몫이기 때문에 결심을 선뜻 내리지 못하고 하루에도 수십 번씩 갈팡질팡하던 시기였다. 그때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만한 깨달음을 얻었다. 그것은 바로 삶의 속도였다.
‘나는 나의 페이스대로 잘 가고 있는가? 나의 속도를 지키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페이스에 말려들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나의 삶의 속도에 대한 정의와 고민. 우리는 무엇인가를 할 때 늘 속도에 대한 판단을 내리게 된다. 어떤 일은 빨리 처리해야 하고, 또 어떤 문제는 다른 사람의 속도에 맞추어 해결해야 한다.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에도 상대방의 의식의 속도를 쫓아가기 바쁠 때가 있고, 내 속도를 무시하고 느려지는 답답함에 속이 터질 지경이 되기도 한다. 각자의 삶에는 각자의 속도, 즉 사람마다 스스로의 페이스가 존재한다. 그런데 나는 그때까지 내 페이스대로 달리지 못했던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속도가 무엇인지도 모르겠고 늘 주변 환경의 속도와 다른 사람의 페이스에 말려 내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경우들이 허다했다.
‘어떤 경우에도 나의 페이스를 잘 유지해야 한다. 남의 페이스에 말리면 안 된다.’
지금 이 순간 내가 너에게 남겨주고 싶은 중요한 삶의 원칙 가운데 하나이다. 너만의 속도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너의 삶의 속도를 컨트롤하려는 어떠한 외압으로부터 너의 페이스를 지켜내야 한다. 절대 남의 속도에 말려 들어서는 안 된다. 그 순간, 너 자신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리고 너를 둘러싼 환경의 속도와 다른 사람들의 페이스를 인정하고 알아주기만 하면 된다. 그 정도의 선이 남을 배려하는 것이 될 것이다. 남의 속도를 무시하는 것은 타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것이며, 남의 속도에 말리는 것은 나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것이 될 것이다.
평창 올림픽의 두 번째 명장면은 누구나 인정할 쇼트트랙 여자 계주 3000미터 준결승전이다. 당시 우리나라의 여자계주 주자였던 4명은 가공할 실력을 갖춘 여전사들이었다. 2014년 소치에서 열린 동계 올림픽에서 금, 은, 동메달을 하나씩 거머쥐었고 차세대 쇼트트랙 여왕의 수식어가 따라다니던 심석희 선수. 2017~2018년 시즌 전 종목 랭킹 세계 1위를 차지했던 세계 최강의 올라운드 플레이어이자 기량 면에서는 역대급 천재라는 찬사를 받는 최민정 선수. 스타트 속도와 초반 가속도가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고 거리가 벌어졌을 때 단기간 안에 상대를 따라잡기 위한 부스터 역할을 도맡는 김예진 선수, 2017년 주니어 세계선수권에서 개인전을 석권하며 차세대 에이스로 낙점되었던 막내 이유빈 선수까지 그야말로 믿고 보는 경기였다. 준결승이라서 2등 안에만 들어오면 결승 진출을 바라볼 수 있어 더더욱 편안하게 관람할 수 있었다. 중간중간 장면을 놓친다 하더라도 봉지 팝콘 하나를 전자레인지에 데우며 휘파람까지 불면서 조금 이따 당연히 진출하게 될 결승전이나 지켜봐야겠다고 여유를 부리던 그때였다.
23바퀴를 남기고 잘 달리던 이유빈 선수가 넘어졌다. 당시 중계진에서는 스케이트 날이 불안해 보였다고 했지만, 이유가 어떻든 갑작스럽게 위기 상황이 닥쳤다.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고 순간 맥이 풀렸다. 이유빈 선수가 넘어진 순간 나는 할 말을 잃고 꿀 먹은 벙어리처럼 그 자리에 얼음이 되어 있었다. 시선만 TV에 고정한 채 앙다문 입술을 머금고 손끝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이렇게 끝나는 줄 알았다.
‘어떡하지…’
나는 관람객으로서의 나의 페이스를 잃고 말았다.
그 짧은 찰나이지만 2바퀴 반이나 차이가 벌어졌다. 2바퀴 반을 어떻게 따라잡을 것인가! 망했다는 생각으로 경기를 지켜보는데 이제부터 기대하시라.
넘어지면서 궤도를 이탈하면서도 터치할 선수를 찾으며 본능적으로 팔을 뻗었던 이유빈 선수의 뒤를 최민정
선수가 번개같이 이어받았다. 그리고 질주하기 시작했다. 쇼트트랙에서 2바퀴 반이라는 차이는 웬만한 경기력으로 뒤집을 수 있는 거리가 아니다. 그런데도 참 이상했던 것은 그 당시의 중계진이었다. 당시 중계를 맡았던 2명 중 한 명은 바로 전이경 전 국가대표였다. 그러니까 우리나라를 쇼트트랙 강국을 만든 레전드 선수가 마이크를 잡고 선수들의 레이싱을 설명하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 전이경 선수는 중계방송을 하던 자신의 페이스를 잃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여기서 당황하지 말고 따라가야 돼요.”
아니 이게 무슨 중계방송인가. 저렇게 차이가 나는 것을 어떻게 따라간다고 당황하지 말라니! 거기다 한 술 더 떠서
“오늘 워밍업 확실히 하고 있습니다.”
결승전을 위한 워밍업을 확실히 하고 있다는 말인데, 여기서 2위 안에 들지 못하면 결승전은 진출도 못하는데 무슨 워밍업이란 말인가! 방송 경험이 부족해서 뭐라도 이야기해야 하기에 그냥 막 하는 말이었다고 생각이 되자 기가 찼다. 어색한 발음과 톤도 불편한데 이제는 그냥 필터링도 거치지 않고 막 내뱉는 건가?
그런데 정말 저만치 보이지도 않던 우리 선수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아직 3위와의 거리 차이는 많이 있었지만 좁혀지고 있는 것이 눈에 분명하게 들어왔다.
“서두를 필요 없고요, 침착하게 따라가야 합니다.”
나는 속으로
‘지금 침착하게 생겼나? 서두를 필요가 없다니, 이게 무슨 중계방송이야..’
그런데 기적이 눈앞에 펼쳐졌다. 13바퀴를 남기고 격차를 완전히 좁혔던 것이다. 정말이지 언제 따라왔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거기에다 선수들은 전혀 지친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더 날카로워지고 점점 더 강한 스케이팅이 느껴질 정도로 그 기세가 무서웠다. 서서히 달아오르더니 그 기운이 계속되면서 꼭짓점을 뚫고 날아가는 불꽃같았다. (김연아 선수의 트리플 악셀을 위한 점프와 비슷하다.)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하나씩 둘씩 제쳐나가더니 7바퀴를 남기고는 어느새 1등으로 치고 나왔다. 되려 다른 나라 선수 한 명이 넘어지고 말았고, 마지막 남은 4바퀴는 심지어 여유롭기까지 했다. 그 어린 선수들이 끝까지 자기 페이스를 놓치지 않고 환상적인 스케이팅을 보여줬다.
결과는 경이로웠다. 올림픽 신기록을 세웠던 것이다. 넘어졌었는데도, 남들보다 2바퀴 반을 더 타야 하는데도 올림픽 신기록을 세우며 1위로 결승을 진출했다. 자신만의 속도를 끝까지 지켜내는 모습이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를 잘 보여주는 경기였다.
만일, 그렇게 뒤처져서 다른 사람들이 저만치 앞서나가는 속도에 주눅이 들어 나의 페이스를 잃고 늦춰버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리고 최선을 다해 나의 페이스를 끌어올려놓고 결승선을 통과하기 전에 그 페이스를 내려놓았다면 1등으로 올림픽 기록을 달성할 수 있었을까? 가장 대단했던 것은 역전하던 그 페이스를 잃지 않고 끝까지 유지하며 달렸다는 것이었다. 자신만의 속도를 존중하고 끝까지 그 속도를 지켜낸 것이 무척이나 인상 깊었다. 또한 중계를 하던 전이경 선수의 페이스도 잊지 못할 것 같다. 스포츠 선수들의 강인한 정신력은 바로 이런 페이스 조절 능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한다.
삶이란 이런 것이다. 내 주변을 둘러싼 어떤 것들이 나의 페이스를 가로막기도 하고 함께 달리는 다른 사람들의 페이스가 서로 달라 나의 페이스가 그들의 속도에 말려들기도 한다. 그렇게 나와 다른 페이스에 말리면, 나는 내 속도를 잃어버리고 내가 원하던 결과와는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 내가 생각했던 나의 결과와 가장 가까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나의 속도를 끝까지 지키는 것이다. 나의 페이스대로 끝까지 달릴 수 있으면 된다. 그것이야말로 나의 집중력을 100퍼센트 발휘하는 길이며, 오롯이 하나에 빠져 최선을 다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비법인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너의 속도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아야 하고 지금 내가 나의 페이스로 잘 달리고 있는지 항상 스스로를 돌아보는 노력이 필요하단다. 아직은 어린 너에게 아빠는 가끔씩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를 하곤 한다. 거북이가 토끼를 이길 수 있었던 것은 거북이가 부지런했던 것이 아니다. 토끼가 자만심에 빠져 자신의 페이스를 잃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느리지만 자기의 속도를 가만히 유지했던 거북이는 승리할 수 있었다. 결국 토끼는 거북이의 페이스에 말려들었던 것이다. 오늘 아빠도 너에게 다짐한다. 나도 나의 페이스를 잃지 않고 끝까지 달려볼게. 딸아, 너도 누군가의 속도에 말려들지 않고 너만의 속도로, 너만의 페이스로 삶이라는 레이스를 달려야 해.
넘어질까 걱정하지 마라. 엉덩방아를 찧고 얼른 팔을 뻗으면 어느샌가 아빠가 너의 손을 터치하며 바통을 이어받아 줄 테니.. 어때? 우리도 믿고 보는 은빛 레이스를 세상에 보여주는 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