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아빠와 엄마는 형제가 있다. 아빠에게는 형이 엄마에게는 동생이 있어서 어려서부터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동시대를 함께하며 비슷한 고민을 나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만큼 잃어버리는 것도 많이 생긴다. 맛있는 음식도 입고 싶은 옷도 나눠야 할 때가 있어 다툼과 미움으로 얼룩져 버리는 관계가 그것이다. 너의 아빠와 엄마는 그런 유년 시절을 비슷하게 겪었고, 아마 너의 친구의 아빠, 엄마들도 비슷한 시대를 지내왔을 것이다. 안타깝지만 너에게는 이런 경험들을 체험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것 같다.
세대를 달리하면서 점점 식구 수가 줄어든다. 너의 할아버지 시대를 지나 나의 시대를 거쳐 핵가족화되더니 이제 너는 외동이라는 타이틀을 너의 인생과 함께 안고 간다. 나 때는 말이다,
“외동이면 이기적이고 배려가 없어.”
하고 폄하하기 일쑤였다. 형제자매와 부대껴 지내지 못하다 보니 나누고 양보하는 미덕이 몸에 배지 못하고 늘 자기중심으로 돌아가는 가족관계에서 관계의 경우의 수가 그다지 많지 않아 복잡한 감정싸움과 거기에서 파생되는 다양한 가족의 상황들은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이야기가 되었던 것이다. 반드시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외동딸을 가진 아버지로서 저런 편견에 조심스럽게 반박하자면, 자기의 것을 충분히 누리지 못한 형제들 사이에서 나오는 불만이 성급하게도 편향된 선입견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닌가 한다. 내 주변의 친구들을 봐도 외동이라서 반드시 이기적이고 배려가 없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고 요즈음같이 경제적으로 부담스러운(물론, 이건 나만의 생각일 수 있고, 형편마다 다를 수 있다.) 상황에서 밥숟가락을 하나 더 얹는다는 것은 무거운 의미로 다가온다. 외동은 이제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타이틀이 되었다. 그러니 너에게 외동이라는 상황은 남과 크게 다르지 않은 환경이며 그래서 이기적이고 배려가 없는 사람이 자연스럽게 되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것이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외동을 키우는 부모라면 늘 같이하는 걱정이 있다.
“아이랑 매번 놀아줘야 해서 너무 힘들어. 형제가 있었으면 서로 놀았을 텐데 말이야.”
나도 너의 엄마도 유아 친화적인 사람은 아니다. 그래서 너와 매번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만은 못한다. 사실 아빠는 그게 늘 불안했다. 회사에 가면 가끔씩 불안이 엄습해오곤 한다. 혹시 네 엄마가 또 참지 못하고 너를 혼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사실, 가끔씩 일하고 있는데 네 엄마가 빡이 쳐서 내게 전화가 오곤 하는 일들이 있다. 옆에서 들리는 너의 울음소리가 왜 그렇게 서럽게 들리는지 당장 달려가 구해주지 못해 내 마음은 타들어만 간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너와 노는 것은 내 담당이 되어 갔다. 너를 엄마에게 분리시켜 놓는 것이 내 마음이 편하니까.. 지금도 너는 나랑 노는 것이 엄마와 노는 것보다 좋을 것이다.
“역시, 아빠는 뭐든 다 해 준다니까~”
라며 나를 치켜세워주는 너의 말에서 너의 엄마와 너와의 둘만의 시간이 조금씩 의심이 갔었던 것이 사실이다. (물론 그렇다고 너의 엄마의 육아 방식이 잘못된 것은 없다. 그러기에는 누가 보아도 너무나 훌륭하게 엄마 역할을 해내고 있다.)
네가 8살이 되던 설날도 그러했다. 연휴는 늘 힘들다. 작금의 코로나 상황에서의 연휴는 더욱 힘들게 다가온다. 가족끼리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서 좋다는 것은 연휴가 아닌 때에 연휴를 그리워하며 하는 말일뿐이다. 막상 연휴가 되었지만, 어디를 가려면 붐비는 사람들과 꽉 막힌 도로 사정, 그로 인해 조그마한 불씨에도 서로에게 예민해지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파국으로 치닫는 연휴의 모습은 우리 가족만 그러는 게 아닐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이동과 모임이 제한되면서 4일 내내 집에 있어야 하는 답답한 상황은 이러한 고통을 가중시키고 다툼의 불씨를 여기저기 뿌리고 다닌다.
설날이었던 그 날도 언택트 세배로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 종일 집에 갇혀 있었던 하루였다. 오후가 되었고, 오전부터 함께 놀아주느라 지쳤던지 나는 너와 조금은 떨어져서 각자의 시간을 갖고 싶었다. 네 엄마는 각종 집안일을 하느라 우리를 관찰하는 역할에 충실했다. 아마도 내가 잘 놀아주지 못하고 중간중간 너를 밀어내는 말들을 많이 했나 보다. 너 혼자만의 시간도 갖고 얌전히 앉아서 책도 읽기를 바랐던 나는 자꾸 너를 나와 떨어뜨리고 혼자 지내는 시간을 만들어주려고 노력했다.
“아빠 내가 읽을 책 하나만 골라줘.”
“현정이가 읽고 싶은 책을 직접 골라 읽어야지. 아빠가 골라주면 어떡해?”
라며 그마저도 떼어내려는 순간, 보다 못한 네 엄마의 화가 치밀어 올랐고, 너를 향해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질척대지 좀 마, 네가 혼자 알아서 하면 되지 그것까지 아빠한테 부탁해? 그리고 둘 다 왜 내가 이야기하면 대답을 안 하는 거야?”
준비되지 못한 엄마의 불화살에 너는 당황했고, 울면서 나에게 안겼다. 아마도 아침부터 꾹꾹 눌러왔던 화가 폭발했었나 보다. 오전에 나에게 있었던 불만 상황과 네가 아빠를 잡고 놔주지 않는 상황이 뒤섞이면서 그녀의 샤우팅이 시작되었다. 분명한 선제공격이었다. 처음에는 혼나서 우는 너를 껴안고 네 엄마만 보게 소리 지르지 말라고 입모양으로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나까지 함께 묶음으로 공격을 멈추지 않는 네 엄마를 보고 너를 방어해야겠다는 생각과 내가 가지고 지내던 불만도 함께 터져 나왔다. 나도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고, 육성을 통한 난타전으로 상황은 점점 더 거칠어졌다. 해서는 안 되는 이야기들이 몇 마디 오갔고,
“너는 평소에도 애나 어른한테나 자기중심으로만 생각하고 이야기해! 남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어!”
나는 소리쳤고,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정신병원에 가보라고까지 소리쳤다. 물론 그날의 말다툼이 어떤 양상으로 전개되어 이 지경에 이르게 되었는지 부족한 나의 글 솜씨로는 상세하게 설명할 수 없지만, 몇몇 트리거가 되는 감정 포인트들과 군데군데 섞여 있는 몹쓸 단어들이 상황을 극단으로 치닫게 했다. 네 엄마와 싸우면서 가장 크게 소리를 질렀던 날이었다. 네 엄마는 절대 잘못했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내 평생 딱 한 번 들었었던 네 엄마의 잘못했다는 말을 듣기 위해 나는 그날도 최선을 다해 상처를 줬다. 내가 그렇게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리고 이 와중에 나에게 찰싹 달라붙어 엉엉 울고 있는 너를 끌어안고 네가 보는 앞에서 심하게 싸웠다. 네 엄마도 폭발했고 양가 부모님한테 내가 정신병원에 가라고 했다고 그 자리에서 전화를 걸어 보고를 하고 억울하다며 울어젖혔다.
‘이건 도를 지나친 것 같은데.’
아차 싶었던 순간이지만, 말리지 않았다. 우리 둘 싸움으로 끝낼 수 있었던 것이 양가 부모님을 끌어들이는 순간 이제부터는 집안싸움이 될 것이고 우리에 대한 우려와 걱정으로 부모님의 마음에 커다란 짐을 하나씩 안겨 드리는 상황이 펼쳐질 것임을 직감했다. 하지만 네 엄마는 자기가 이런 소리까지 듣는 사실을 양가 부모님에게 알려야겠다며 진짜 전화를 했다. 알려서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자기의 억울함을 풀겠다는 것인가? 이런 소리까지 들으면서 살고 있는 자신을 불쌍하게 여겨 달라는 것인가? 그래서 결국에 우리의 관계가 막을 내리더라도 자신에게는 잘못이 없다는 것을 못 박기 위함이었던 것일까?
결국 그렇게 전화를 끊고 싸움에 지쳐갔던 우리는 자연스레 목소리의 톤을 다운시키고 상황을 진정시키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미안하다는 이야기는 늘 내가 바라는 사람이 아닌 너의 입에서 나온다. 내가 사과를 듣고 싶은 네 엄마가 아닌, 내 딸에게서 말이다. 뜨겁게 달리던 자동차 엔진이 시동을 끄고 식어가듯, 서서히 서로의 상황을 받아들이며 화를 삭이면 어느샌가 너는 우리의 곁에 끼어들어와 살며시
“나 때문에 싸우게 해서 미안해.”
라고 이야기한다. 사실 너의 잘못은 전혀 아니었던 것인데도 말이다. 아니.. 어쩌면 네가 혼자 놀기만 했어도, 나를 찾지 않고 네 엄마가 생각하는 것처럼 질척대지만 않았어도 일이 시작되지 않았을 테니 너에게도 잘못이 있다고 이야기해야 하는 것일까? 하지만, 절대 아니다. 그건 우리의 다툼의 근본적인 원인이 아니었으니까 어린 네 잘못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고 너는 결코 미안하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런데도 그런 마음을 가져줘서 오히려 고맙고 내가 미안할 따름이다. 결국 얼싸안고 주르륵 흐르는 눈물과 함께 평화가 찾아왔다.
며칠이 지났다. 네 엄마가 나에게 이야기했다.
“현정이가, 자기는 혼자서 어떻게 놀아야 할지 모르겠데.”
그랬구나! 너는 혼자 노는 방법을 몰랐던 것이다. 그 누구도 가르쳐 준 적이 없었던 것이니까 당연하다. 우리는 혼자 노는 방법을 어떻게 터득한 것일까? TV를 보고 인터넷을 뒤적이고 SNS와 유튜브를 돌려보는 것이 혼자 노는 것일까, 아니면 책을 보고 영화를 보고 혼자 무엇을 하는 것이 혼자 노는 것일까.. 생각해보면 어른들도 혼자 노는 방법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흔한 취미도 제대로 가지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어린 너에게 혼자만의 시간을 강요했다는 생각에 나는 더욱더 미안해졌다.
그런데 너는 외동이라는 너의 상황 때문에 혼자만의 시간에 익숙해져야만 할 것 같다. 하나씩 혼자 있는 시간과 혼자 무엇을 하는 것에 익숙해지는 법을 가르쳐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때로는 혼자 있는 시간이 무척이나 소중하지만, 지금 아빠로서 나는 너에게 가르쳐야만 하는 혼자 노는 방법이 그저 쓸쓸하고 한없이 미안할 뿐이다.
어쩌지.. 나도 혼자 노는 방법을 잘 모르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