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불균형

by DJDJ

정인이 사건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아직도 조사 중인 사건이고 결론이 어떻게 나올지 궁금한 상황이지만, 너무나도 분명한 것은 반인륜적인 일이었다는 것이다. 피가 섞이지 않은 양부모라고 하지만, 그에 앞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힘이 있는 자가 그보다 약한 자를 괴롭히고 학대한다는 것이 개탄스럽다. 아동학대 문제가 계속되는 작금의 상황에 인간성에 대한 불편한 진실이 자꾸만 드러나는 것 같아 착잡한 마음이다.


세상을 살다 보면 힘의 균형이 깨지면서 강한 자와 약한 자가 생기게 되고 그로 인해 지배자와 지배를 받는 자로 계층이 생긴다는 것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 온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생태계의 진리이다. 기원전 6000년 경 신석기 시대 사람들이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식량이 늘어나고 잉여 물자를 저장해 두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시 한번 곱씹어 보기 바란다. 두 눈을 감고 우리 가족이 움집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자. (물론, 네 엄마는 진화가 덜 된 신석기 인이었어도 무척이나 매력적이고 예뻤을 것이다.)


"와~저 집 창고 좀 보소. 쌓아놓은 먹을 것들이 엄청 많네~부럽네 부러워."

"우리는 먹을 것들이 다 떨어져 가는데, 저 집은 먹을게 풍족해서 늘 행복해 보이네. 당장 내일 무얼로 배고픔을 달래야 하지?"

"안 되겠어. 내일은 저 집에 가서 먹을 것을 좀 나눠달라고 사정해봐야겠어."

"이런.. 먹을 게 저렇게 많은데도 나눠줄 수 없다고 딱 잘라 말하고 나에게 무안을 주다니. 내일 아침에는 내 돌도끼를 들고 가서 겁을 주고 먹을 것을 빼앗아 와야 겠다."


무언가 차이가 생기면 사람들은 나와 비교를 하게 되고 비교로부터 오는 열등감 때문에 마음이 다치게 되고 그것이 당장 나의 생계와 직결된 문제가 되었을 때 비굴해지며 비굴함이 극으로 치달으면서 폭력성을 띠게 되고 결국 돌이킬 수 없는 후회막심할 행동을 하게 된다. 정인이 사건의 원인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지만, 양부모의 폭력성 어딘가에는 아마도 정인이에게 몹쓸 짓을 하기 이전에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던 어떤 종류의 열등감이 자리 잡고 있을 것이라는 것이 나의 추측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알겠지만 나의 추측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보편적인 추론이며 문제의 정답일 것이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런 상황들은 네가 발을 붙이고 있는 곳이면 전 세계 어디서나 일어나게 될 일이다. 크고 작은 정인이 사건은 어디에서나 발견할 수 있고, 다른 영역에서 네가 정인이가 되거나 또는 정인이의 양부모가 되는 일들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너에게 일어날 것이다. 그래. 세상은 그렇게 균형을 잃고 늘 기울어져 있단다.


그래도 평등하고 공정한 세상을 만들어보자고 많은 사람들이 노력한 결과 현대 사회는 각종 제도와 법으로 이러한 힘의 불균형을 조금이나마 달래줄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장치를 해 두고는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뼛속부터 느껴지는 분명하고도 차가운 그 느낌..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의 진실된 마음속 외침은 결코 전달될 수 없고, 이미 드러나 있는 그러한 힘의 불균형을 끝내거나 덮을 수도 없다. 태어나서부터 죽는 순간까지 남과 비교하게 되고 그로 인해 아파하고 상처받고 분노하고, 그러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때로는 성취감을 맛보기도 하고 우월함을 느끼기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사람의 인생인 것을 어떡하겠니. 그러니 잘못된 세상에 태어났다며 너의 비뚤어진 마음을 외부 요인으로 돌리는 것은 어떠한 해결책도 되지 않고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부모로서 너에게 그런 세상을 만들어주지 못해 아주 조금 미안할 뿐이다. 왜냐고? 아빠도 그런 인생을 계속해서 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 세상에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런 인생이니 문제의 해결책은 네 안에서 찾아야 한다.


기울어져 있는 세상 속에 던져졌으니 방법은 하나다. 열등감을 어떻게 마주하고 다스릴 것인지가 너의 순간순간의 결정을 좌우하는 매우 중요한 키가 될 것이다. 모든 상황에 앞서 늘 힘의 균형이 어떠한 상황인지, 그로 인해 나의 열등감은 누구를 향해 있으며 얼마만 한 강도인지 늘 살필 줄 알아야 한다. 물론, 어른이 되어 무수히 그런 상황에 익숙해져 있는 나도 그게 잘 안된다. 감정이 앞서게 되면 생각은 뒷전이 되어버리니까. 하지만 감정적인 행동의 끝은 늘 후회로 귀결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고 감정을 숨기고 너의 감정에 맞설 필요는 없다. 힘의 균형과 열등감을 파악하게 되면 너의 감정에 어느 정도까지 충실해야 할 것인지 판단이 설 것이다. 어디까지 화를 내야 하는 건지, 말은 어느 수준까지 거칠어질 수 있는 건지, 즐거움은 어디까지 향유해야 할 것인지 등등 너의 그릇에 물이 넘치지 않을 만큼 너를 분별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가끔씩 아빠와 엄마는 너를 혼내거나 타이를 때, 누군가와 비교를 하게 된다. 어쩌면 너를 온전히 너로 보지 않고 남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너에 대한 학대가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므로 남과의 일반적인 비교는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도 든다. 적어도 개성 있다는 소리에 그쳐야지, 남과 너무나도 달라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아서는 안되지 않겠니? 그리고 그래서 그런지 너를 부모 욕심이 가득한 이상적인 가상의 현정이를 만들어 둘을 비교하기도 한다.


얼마 전, 처음으로 너를 무릎 꿇고 앉혀놓고 오랜 시간 혼을 냈던 일이 있었다. 네가 8살이 되고 얼마 되지 않은 어느 저녁이었다. 칼퇴근을 하고 저녁 설거지를 하는 네 엄마를 뒤로 한 채, 나는 너와 놀고 있었다. 매일 정해 놓고 아침저녁으로 사칙연산을 연습하는 '구몬'학습지 구독자였던 너는 그날의 분량이 아직 남아 있던 터였다. 아마도 나를 핑계 삼아 계속 놀고만 싶었겠지. 무언가 대화를 나누다가 '곱하기'라는 단어가 트리거가 되었고 잊고 있던 네 숙제가 떠올라 엄마도 아빠도 너에게


"그만 놀고, 너 스스로 약속한 거니까 얼른 해."

"그래 현정아, 구몬 하자~구몬 다 끝내고 아빠가 책 읽어줄게."


하고는 너를 채근했다. 화가 났는지 너는 불평 가득한 얼굴로 투덜투덜 대며 소리를 지르며 방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나에게 계속해서 큰 소리로 화를 내는 모습과 예의 바르지 못한 모습에 나도 결국 화가 났다. 예의 바르지 못한 모습에 가끔씩 네가 다른 곳에서도 이렇게 버릇없이 행동하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되는 나는 때때로 너를 혼내곤 했었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적당히 혼을 내고 말 일이었는데, 네가 엄마에게 나와서 무언가 상황을 피해 가려는 듯한 뉘앙스의 거짓말을 했다. 교묘하게 머리를 굴리는 듯한 모습이 내 시야에 포착되었고, 자기에게만 이롭게 꾀를 부리는 거짓말에 화가 난 나는 네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렇게 심하게 화를 내게 되었다. 이런 상황을 눈치챈 네 엄마도 내 편이 되었고, 우리 가족의 삼각관계의 힘의 균형은 여지없이 깨어지고 말았다. 마루 한가운데 무릎 꿇고 앉혀놓고는 너를 힐난하기 시작했다. 한마디 대꾸도 하지 않고 꺼이꺼이 울고 있는 네 모습이 한없이 불쌍해 보였지만, 멈출 수 없었다. 버릇없는 모습을 고치기 위해,


"지금부터 아빠, 엄마한테 존댓말 써! 알았어?"


라고 윽박지르고, 평생 아빠 엄마한테 '요'자 한 번 붙이지 않던 네가 당황했는지, 아니면 겁에 질렸는지 그러겠다고 울음 범벅이 된 목소리로 대답했다. 계속해서 혼이 나던 네가 어느 순간


"아빠, 엄마, 제가 잘못했어요..."


라고 울음을 가득 머금은 채 숨도 제대로 고르지 못하면서 떠듬떠듬 이야기 한 그 순간. 내 눈시울이 붉어지고 가슴이 먹먹해져 왔다. 통감자가 목구멍을 한 번에 타고 들어오는 듯한 답답함에 숨이 막혔다. 처음 들어보는 용서를 구하는 너의 존댓말이었다. 그날 그 모습이 리모컨의 일시정지 버튼을 누른 것과 같이 뇌리에 박혔다. 어쩌면 그렇게 너의 자존감을 무너뜨리지 않아도 되었지 않았나 싶었다. 혼내는 만큼 나도 혼나는 기분이었다. 내가 너에게 했던 그 모든 부정적인 감정들이 너의 그 한마디에 뒤섞여 커다란 눈덩이가 되어 내 가슴팍에 되돌아와 명중한 순간이었다. 내 가슴이 너무나도 아팠다.


더 이상 혼낼 수 없었다. 양치하러 다녀오라고 너를 보내고 식탁에 주저앉아 있었다. 움직일 수도 없을 정도로 나도 다쳤다. 너는 양치를 끝내고 나에게 다가오더니 내 무릎 가까이에 두 손을 살포시 얹었다. 너를 꼭 끌어안았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하지 못했지만, 나의 눈에서 눈물이 터져 나오는 것을 간신히 참아내며 좀 더 너를 가깝게 안았다. 내 품에서 너를 내려놓지 않고 이 세상 어떤 것으로 부터라도 너를 보호해 주고 싶었다. 멀리서 갑자기 조용해진 상황이 이상했는지 네 엄마는 갑자기 뒤를 돌아보고 우리가 껴안고 있는 모습을 보고 피식 웃었던 것 같다. (가끔 보면 네 엄마는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단단한 사람이다.)


결국 그날도 힘의 균형은 깨어졌던 것이다.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너의 열등감을 불러일으키며 너를 한없이 물어뜯었고, 나는 감정적인 학대를 너에게 가했던 것이다. 정인이 양부모와 내가 다를 게 뭐였을까..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에도 너에게 그렇게까지 화를 낼 일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내 감정만 쏟아냈던 그날의 일은.. 이제 나에게 치명적인 기억이 되었다. 현정아, 보다시피 힘의 균형에서 우위에 있는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 가한 아픔은 다시 돌아오게 되어 있다. 그러니 열등한 상황에 너무 슬퍼하거나 분노하지도 말고 우월한 감정에 갇혀 도취되거나 막 나가서도, 상대방을 무안하게 만들어서도 안된다. 결국 위로 도를 넘든 밑으로 벗어나든 벗어난 만큼은 반드시 아픔과 후회로 되돌아와 너의 마음을 공격하고 너라는 사람을 만신창이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너에게 가해지는 그런 학대와 모멸감을 어떻게 견디고 있는지 아빠도 너의 마음이 궁금해진다. 훗날 그날의 일이 너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는지, 아빠는 꼭 물어보고 싶구나. 그 이야기를 웃으면서 나눌 수 있는 서로가 되기 위해 우리의 관계가 기울어지지 않도록 오늘도 더 많이 너를 사랑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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