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두 명, 할아버지도 두 명. 어렸을 적, 나는 참 헷갈려 했다. 누구나 어렸을 적 한 번쯤은 가져보았을 것 같은 질문이다. 아빠, 엄마는 한 명씩인데, 왜 갑자기 할아버지 할머니가 두 명씩 나타나는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선물은 많이 받아 좋고, 나를 예뻐해 주는 사람이 많아지니 행복하다고 그런 궁금증은 무시하고 지나갈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이를 구별하기 위해 친할아버지, 외할머니와 같이 친가와 외가를 나누어 부르면서 마치 고유명사처럼 외웠었던 기억이 내 머릿속에 있다.
아빠는 어렸을 적, 할아버지들을 기억하지 못한다. 내가 너무 어렸을 때 돌아가셨다고 들었다. 무언가 복잡한 사정이 있기도 했지만, 그 많은 설명들이 결코 명쾌하지도 설득력 있지도 않아 보였다. 그래서 그냥 내 눈앞에 나타나는 할머니들만 좋아했다. 그래서 현정이가 그렇게 사랑하고 좋아하는 할아버지들에 대한 추억이 나에게는 없다. 할아버지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너를 보면 한 편으로는 참 든든하고 부럽다는 생각이 절로 난다. 그런 할아버지들의 단단한 매력은 뒤로하고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따뜻한 아빠의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려고 한다. 기억 속에 남아있는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에 관해서 말이다.
네 할아버지의 엄마였던, 아빠의 친할머니는 평생을 해녀로 사셨다. 어렸을 적 할머니 댁에 가보면 집에는 아무도 없기 일쑤였고, 열 발자국만 걸어가면 펼쳐져 있는 바닷가에 가보면 마치 거기가 집인 듯 네 왕 할머니는 늘 그곳에 계셨다. 땅 위를 걸어 다니면 멀미가 난다며 물속이 편하다고 하시던 분이니 아마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시간을 물속에서 또 물 곁에서 지내셨던 것 같다.
네 엄마와 결혼을 하는 날, 나의 친할머니는 참석하지 못하셨다. 요양병원에 계셨기 때문이다. 거동이 불편한데다 치매기가 있어 결혼식장에 모시는 것은 위험했다. 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그나마 옛날 분들이시기에 좋은 일을 앞두고 있는 네 엄마와 나의 할머니가 만나는 일에 대하여 조심하셨다. 사실, 나의 할머니는 90이 넘은 나이에 수년간 요양병원에서 지내시면서 기력이 많이 쇠하셨다. 마음이 아프지만 혹여나 돌아가시지는 않을지 마음 한편에 걱정하는 마음을 갖고 나와 너의 엄마의 결혼식을 준비하고 있었기에 네 엄마를 끝까지 나의 할머니 앞에 데려다주지 않았던 그분들의 선택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제주도 풍습 때문인지 제주도가 고향인 청년들이 다른 지역의 배우자를 만나게 되면 늘 결혼식을 두 번 해야 했다. 본식과 피로연을 분리하여 남자 쪽, 여자 쪽으로 나누어 2주간에 걸쳐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나 또한 그랬다. 네 엄마의 바람대로 본식은 제주도에서 치르고, 그 주 목요일쯤 신혼집이 있는 김포로 올라가 주말에 있을 피로연을 준비하여야 했다. 그렇게 본식이 지나고 2,3일 제주도 집에서 신혼집으로 갈 준비를 할 겸 쉬고 있던 그 주, 수요일이었다.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할머니가 위독하십니다. 빨리 와 보셔야 할 것 같아요.”
할아버지의 엄마가 지내던 요양원에서 급한 연락이 왔다. 때마침, 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서울에서 오신 손님들과(사실 이분들은 내 형의 장인과 장모였다.) 골프장에 계셨고, 물리적인 거리가 가장 가까웠던 내가 서둘러 너의 왕 할머니를 뵈러 갔었다. 집에 네 엄마만 남겨둔 채…
구급차를 타고 가까운 종합병원으로 향하는 급박한 상황에 혹시나 하는 생각에 마음의 준비를 해 두었다. 응급실에 옮겨진 할머니의 의식 없는 모습을 한참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병원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나의 할머니는 기적처럼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응급실 침상에 자리를 고쳐 앉으시더니,
“아이 밥 먹이고 보내라.”
하시면서 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었다.
“어머니, 누군지 알아보시겠어요?”
네 할머니가 더욱 놀라고 신기했는지 정말 곁에 서 있는 나를 알아볼 수 있겠냐고 확인하였고, 대답 대신 네 왕 할머니는 내가 아주 오래전 할머니 댁에 찾아갔을 때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나와 형에게 밥을 지어 주시던 바로 그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며 웃고 계셨다. 모두의 가슴을 철렁하게 만들었던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멀쩡한 모습으로 나의 할머니는 유유히 요양 병원으로 돌아가셨다. 요양병원 관계자와 의사선생님까지 모두 웃으며 헤어지는 훈훈한 하루의 마무리였다.
바로 다음 날, 나와 네 엄마는 차를 가지고 제주에서 김포까지 가야 했기에 서둘러 아침을 먹고 배를 타고 전라남도 장흥에 내려 서쪽 길을 따라 끝까지 올라가는 일정을 강행해야 했다. 그렇게 제주도를 등지고 배를 타고 한참 바다 물살을 헤치고 북으로 나아가던 항해 중 전화벨이 울렸다. 엄마였다.
“잘 들으렴.. 할머니가 돌아가셨단다.. 일단 가던 길 멈추지 말고 그냥 가고 상황 좀 정리하고 연락할게.”
시간이 멈춰버렸다. 이해되지 않았다. 어제 분명 그렇게 정정하셨는데 갑자기 무슨 일이 있던 건 아닌지 궁금해졌다. 잠시 생각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뇌리를 스치는 한 생각,
‘아.. 할머니가 마지막으로 내가 보고 싶었던 모양이구나..하늘나라에서 편히 잠드세요.. 할머니…’
신기한 일이었다. 한참을 사람도 못 알아보시던 할머니가 그렇게 내 눈을 분명히 바라보며 밥을 먹고 가라 하셨는데.. 이제 더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결혼의 기쁨도 잠시 멈추었다. 좋은 일들과 나쁜 일들은 이렇게 계속해서 섞여 일어나는가 보다. 변함없는 그림에서 갑자기 할머니만 지우개로 지워진 느낌이었다. 나는 장례식장에도 가지 못하고 이틀 뒤에 있는 서울에서의 결혼 피로연을 예정대로 진행해야 했다. 그래도 할머니의 맑은 정신에 마지막으로 만났던 사람이 나였다는 것을 위안 삼으며 그렇게 작별의 시간을 삼켜야 했다.
이번에는 너의 할머니 이야기를 해볼까? 드라마를 보느라 너와의 영상통화를 빨리 끊으려 하는 내 엄마 말고, 세상에 이미 없는 네 외할머니 이야기 말이다. 네 엄마의 엄마.. 그러니까 나의 장모님을 나는 만나 적이 없다. 오랜 시간 방배동에서 자란 네 엄마의 가족들 덕분에 나의 장인과 고인이 된 장모는 방배동 할아버지와 방배동 할머니로 불린다. 방배동 할머니를 보려면 일산에 위치한 납골당을 찾아가야 한다. 차가운 납골함에 담겨 있는 너의 외할머니에게 찾아갔던 첫날이 기억난다. 결혼을 허락받기 위해서 나와 네 엄마는 너의 외할머니를 뵈러 갔었다. 처음 만난 나의 장모님. 두꺼운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장모님의 사진과 나의 눈이 마주했었고, 마음속으로 결혼의 허락을 구하던 그날이 지금도 생각이 난다. 그리고 오랜 시간 엄마 없이 자란 너의 엄마가 더욱더 안쓰럽고 대견스러웠다. 네 엄마를 꼭 끌어안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다 이해했으니까 괜찮았다. 요즈음은 자주 다니다 보니 장모님의 모습이 익숙해졌다. 훗날 내가 하늘나라에 가서 만나도 어색하지 않을 것만 같았다.
가끔 너에게 방배동 할머니를 만나러 간다고 하면 "진짜?"라고 되묻는다. 그러면, "그럼~"하고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지만, 곧이어 들려오는 너의 말은
"사진으로 말고 진짜? 하늘나라에 가는 거야?"
라고 야무지고 똘망똘망한 눈으로 다시 묻는다. 간단한 설명으로 하늘나라가 얼마나 먼 곳인지이야기하고 너와 함께 40~50분 차를 타고 납골당에 도착하면, 너는 일 년에 한두 번 밖에 오지 않는데도 용하게도 방배동 할머니의 자리는 귀신같이 찾아낸다. 장모님이 손녀딸을 부르기라도 하는 것처럼 무엇에 홀린 듯, 한 번에 그 자리를 찾아내는 실력은 어렸을 적부터 일품이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꽃을 유리 문에 붙이는 네 모습에 분명 하늘에 계신 할머니도 흐뭇해하실 거다. 얼마나 너를 안아보고 싶어 하실지 벌써부터 두 팔 벌려 너를 기다리는 나의 장모님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아직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도 먼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삶의 끝자락에는 죽음이라는 것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기를 바란다. 아직은 나도 나이가 주는 무게감을 제대로 느낄 만큼 철이 덜 들었는지 죽음이라는 것이 크게 두렵지 않다만, 모든 죽음 앞에서는 그 무엇도 후회가 된다는 말이 있듯이 내 눈에 네가 밟힐 것 같아 벌써 걱정이 된다. 훗날 나와 네 엄마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되었을 때 홀로 남겨질 외동인 네가 더욱 가련하기만 하다. 적막한 장례식장을 상복을 입고 홀로 지키고 있을 너를 생각하면 죽음이 두렵기 시작한다. 그 무겁고 싸늘한 공기 때문에 답답해서 관 속을 뛰쳐나오게 될지도 모른다. 부디 그 앞에서 강인하기를, 죽음을 앞에 마주하게 되더라도 두려워하지 말기를, 그 공포를 극복해 내는 현명함을 갖기를 바란다. 이겨내고 더 큰 삶의 의미를 찾아내기를 바란다. 물론, 나도 겪어보지 못한 죽음 앞에 이렇게 쉽게 이야기하는 게 우스운 일일지 모르지만, 이제까지 지켜보았던 죽음 앞에 내 나름대로 죽음을 맞이하는 방법을 배웠다면 위와 같다.
그러니 현정아, 언젠가 내가 죽음을 마주하게 되면, 나 또한 약해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테니, 너도 두려워하지 말고, 남은 삶을 살아가기를 바란다. 언젠가 우리가 다시 마주 앉아 서로의 눈을 바라보지 못하게 될 그날이 올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 공포를 이겨내는 현명함을 갖기를, 반드시 스스로의 힘으로 의지하고 외로움과 괴로움을 비켜갈 수 있어 주기를 빈다.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신에게 기대는 지혜로움을 배우고 삶의 순리를 인정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래 본다. 내 딸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