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우리 단둘이

by DJDJ

자정을 넘기고 1시가 되기 5분 전.. 지금은 드디어 너와의 첫 번째 밤이다.


재작년 3월, 너의 4번째 생일을 앞두고 나는 큰맘을 먹고 네 엄마에게 3박 4일 동안의 일본 여행을 선물한 적이 있다. 5년간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딸을 온전히 키워냈던 강인한 엄마였다. 거기에다 네 엄마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많은 것들을 포기할 줄 알고, 그 사람의 아픔을 진심으로 자기 것으로 만들어 이해할 줄 아는 현명한 사람이다. 물론, 잔소리도 많고 남편과 딸을 혼내는 데는 천하제일인 진짜 나의 엄마 같은 엄마이지만, 그전에 나라는 한 남자의 마음을 그대로 받아내고 가져갔던 지켜주고 싶은 여인이다. 그런 네 엄마는 본인의 어머니를(나는 장모님의 살아있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일찍 하늘나라로 보냈고, 새로 생긴 시어머니마저 제주도에 두게 되었으며, 가난한 대학원생을 남편으로 맞이하는 바람에 순도 100% 리얼 독박 육아를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그런 네 엄마에게 호기롭게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 5살이 되었던 너에게 물었다.


“아빠랑 둘만 같이 잘 수 있지?”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엄마와 떨어져 본 적이 없던 너는 그게 무슨 큰일이냐며,


“당연하지.”


라고 시원하게 대답해 주었다. 그래서 오사카행 비행기 티켓을 끊고 시내 한복판에 괜찮은 숙소를 일찌감치 예약해 두고 와이프에게 당당히 이야기했다.


“그간 고생 많았는데, 보라도 좀 쉬어야지. 처제 데리고 둘이 다녀와요.”


캬~지금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그 순간까지는 참 대견스럽고 훌륭한 남편의 모습이었다.


와이프는 내심 걱정하며,


“둘만 잘 수 있어? 현정이가 오빠랑 둘만 있으려고 하지 않을 텐데. 자다가 다시 나를 찾으면 그때는 어떻게 하려고?”


나의 대답은 괜찮다는 것이었다. 토닥토닥해서 다시 잘 재울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라고 소리쳤다. 이후의 일은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말이다.


여행을 며칠 앞두고 다시 너를 재우기 위해 셋이 누워 있는데, 와이프는 또 걱정이었다.


“정말 엄마 없이 아빠하고 둘만 있는 거 괜찮아? 아빠랑 둘만 자는 거야. 알았지?”


그런데 아니 이게 웬일인가! 갑자기 너는 울음보를 터뜨렸다.


“엄마 없이 못 자.. 엄마 보고 싶으면 어떡해?”


쉬지 않고 울어대는 바람에 결국 여행을 며칠 앞두고 똑같은 비행기표와 똑같은 숙소를 두 배 가까운 금액을 지불하면서 추가 예약을 해야 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멋지던 나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팔짱을 낀 채 나를 쳐다보며 비웃는 와이프의 한마디,


“결국 이렇게 쫓아올 거면서 처음부터 같이 가자고 하면 돈이라도 절약했을 거 아냐?”


한마디 대꾸도 할 수 없었다. 그 이후로 나와 너의 둘만의 하루는 데이트라는 이름으로 가능할지 몰라도 1박 2일이 넘는 일정은 꿈도 꾸어 본 적이 없다. 여행은 늘 우리 가족 모두가 참여해야 하는 행사로 바뀌어 있었다. 살면서 언젠가 와이프에게 혼자만의 시간을 주고 싶은데, 아직까지 너를 엄마로부터 떨어뜨리는 일은 너무나도 잔혹하며, 그로 인해 받을 나의 고통도 잔인하기만 하다.


그런 네가 지금.. 이 시간(왼쪽을 힐끔 봤는데, 쌔근쌔근 마루에 누워 크리스마스트리 불빛을 벗삼아 아주 꿀 잠을 청하고 있으시군..^^) 나와 단둘이 집에 있다. 네 엄마는 건강검진 때 발견한 용종을 제거해야 하기에 오늘 근처 대학병원으로 절제술을 받으러 갔고, 나는 그 곁을 지키느라 낮 시간 동안 처제에게 부탁하여 현정이를 돌봐 달라고 부탁하였다. 건강검진 결과는 아마도 한 달도 훨씬 전에 나왔던 것 같고, 대학병원 외래 진료 이후 수술 일정과 입원 스케줄을 정한 것도 한 달이 넘은 것 같다. 그때부터, 현정이와 나의 둘만의 시간이 걱정된 네 엄마는 틈만 나면 나와 너를 걱정하며 수술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지 혀를 찼다. 그런 네 엄마와 나의 불안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너는,


“아.. 빨리 12월이 왔으면 좋겠다. 이모랑 하루 종일 놀 수 있는데...”


라며 이모와 하루 종일 놀 날 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손꼽아 기다린 그날이 오늘이다. 간단한 시술 정도로 여겼던 수술이지만 수면 마취가 필요했고 잠시나마 고통스럽고 잘 걷지도 못할 정도로 힘들었던 네 엄마를 병원에 남겨두고 처제와의 교대를 위해 서둘러 집으로 차를 몰았다. 집에 도착하니 이미 9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처제에게 고맙다는 말과 함께 얼른 집으로 보낸 뒤, 너와 나의 둘만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무조건 전부 맞춰줘야 해!”


와이프가 나에게 했던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될 수 있으면 너의 기분을 긁지 않고 최대한 너와 친한 관계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분위기를 맞추어 나갔다. 셋이 있을 때와 둘이 있을 때는 분명 다른 것 같다. 이제 믿고 의지해야 할 사람은 서로 밖에는 없었다. 영화를 보는 것을 좋아하는 너를 위해 네 엄마와 내가 계획한 우리 둘만의 밤은 네가 잠들 때까지 영화를 보는 것이었다. 다행히 하루 종일 노느라 피곤했는지, 영화 두 편 만에 마루에서 실신하셨다. Thanks God!


와이프에게 잠든 너의 사진을 찍어 보내 안심시킨 후, 나도 샤워를 하고 나왔다. 하루를 끝마치는 기분이었다. 전장에서 승리를 하고 돌아온 장수의 첫 번째 샤워와도 같은 느낌으로 기분 좋고 자랑스럽게 수증기 서린 거울을 보며 웃는 얼굴로 샤워를 했다. 그리고 나와보니 자고 있는 너의 얼굴은 크리스마스트리 불빛에 비쳐 천사처럼 밝게 빛나고 있다. 너무나도 고마운 내 딸, 이제 많이 자란 것 같다. 아빠와의 둘만의 밤을 7년 만의 드디어 기적처럼 이루어 냈다. 이 모든 영광을 내 딸과 와이프에게 돌린다.


그래도 잠들기 전 네가 엄마를 그리워하며 했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내일도 엄마 병원에서 나오지 못하면 어떡하지? 그럼 이모하고 또 하루 종일 놀 수 있는 거야?”


여전히 노는 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미운 일곱 살의 사랑스러운 너. 하지만 내일은 병원에 가서 꼭 엄마를 구출해 오자던 아빠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주며 의지에 찬 눈빛으로 입술을 앙 다무는 네 모습이 나를 미소 짓다 못해 눈물 나게 한다.


네 엄마를 구출하기 전에 잠들어 있는 네 옆으로 가 살포시 누워 보려 한다. 네 엄마 구출 작전 전에, 잠들어 있는 너를 지키는 것이 지금 내가 해야 할 최우선 순위 임무이니까. 그것이 너와 단둘이 보내는 첫 번째 밤을 더욱 행복하게 기리는 길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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