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치기를 만났을 때

by DJDJ

너는 요즘 들어 유치원에 한 친구에 관해 부쩍 자주 이야기한다. 좋은 이야기는 아니고, 자꾸 네가 놀고 있는 친구들 무리에 들어와 한 친구들을 빼앗아 간다며 이 상황에 무척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스트레스라니..’


7살 밖에 되지 않은 네 입에서 스트레스가 무엇인지 알고 나온 말인지부터 의심하며 내 귀는 너에게 향했다. 사실, 가장 묻고 싶은 말은 스트레스라는 말을 어디서 알게 되었는지 지만 꾹 참고 너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평소에도 친하고 싶은 친구와 짝이 되었는데 자꾸 짝이 된 친구에게 문제의 한 친구가 다가와 자기와 놀고 있는 상황을 가로채고는 못된 말을 섞어가며 자기를 무시한다는 것이다. 알고 보니, 짝이 된 친구는 평소에도 인기가 많아 늘 함께 놀고 싶은 친구로 동성은 물론 이성 친구들에게도 인기 만점인 친구였다. 그러니 너도 당연히 친하게 지내고 싶었을 것이고, 짝이 된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했다는 것은 십분 이해가 되었다. 그런데 문제의 친구가 나타나 너의 기회를 자꾸 빼앗으려 든다는 이야기였는데, 이 상황을 눈으로 보지 않으니 무엇이라고 분명히 조언을 해 주거나 대처할 방법을 마련해 주기가 난처했다. 사실 너 스스로 해결해 나가야 할 너의 사회생활이었으나, 딸이 스트레스라는 말을 처음 입 밖으로 내뱉으며 난처함을 표할 때, 아빠로서 무엇인가 멋진 코치를 해 주어야 하고 주옥같은 인생의 교훈을 심어줘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한 번은, 줄을 서 있었는데 너의 앞으로 새치기를 해 들어오더니, 오히려 네가 새치기를 했다며 졸지에 너를 나쁜 아이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거짓말을 한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고 그렇게 궁지에 몰렸던 적이 더러 있었던 것 같다. 문제는 다른 친구들에게도 이렇게 행동한다는 것인데, 그럴 때마다 다른 친구들이 나름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 리더십이 있는 너에게 나쁜 친구와 대결을 해 달라며 도움을 청한다고 했다. 남을 도와주는 것을 좋아하고 자기보다 약한 동생이나 애완동물을 돌보는 것이 마냥 좋은 너는 이를 참지 못하고 궁지에 몰린 친구들을 대신하여 문제의 그 친구와 맞서게 된다고 한다.


상황을 가만히 듣던 나는 먼저 선생님이 알고 있는지 물었다. 그런데 너의 엄마는 이미 이 상황을 잘 알고 있는 듯했다. 대답을 가로챈 네 엄마는 선생님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것 같지만, 강력하게 제재를 하기보다는 아이들 편에 맡기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스스로 해결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인지, 상황을 모면하는 것인지 모를 정도의 애매한 무관심으로 이런 상황을 대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전적으로 너의 편에 서 있는 엄마의 이야기이다. 사실 이 글을 쓸 때, 나의 마음도 이미 너에게 기울어져 문제의 친구를 객관적인 고운 시선으로 볼 수 없었고, 지금도 그렇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듣고 너에게 이야기했다. 먼저, 새치기는 옳지 못한 행동이니 옳지 못한 행동을 한 친구에게 잘못을 알리고 그렇게 하는 것은 잘못한 행동이니 시정하라고 정중히 요청하라고 너무나도 원론적인 방법을 알려주다가, 어차피 그렇게 해 봐야 상대방의 반응은 거짓말과 못된 말로 너의 속을 긁어 놓고 싸움으로 번질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나의 감정과 생각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과연 나는 그렇게 할 수 있나 하는 생각에 현실적인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의무감이 더해져 전적으로 너의 편이 되어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누군가 잘못을 했을 때, 가장 무서운 것은 대중으로부터 신뢰를 잃어버리는 것이며 그렇게 고립되는 것, 무시되는 대상이 내가 된다면 그때부터 상대방의 태도가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음에 또 새치기를 하거든 주변 친구들에게도 그 친구가 새치기를 한 친구라는 것이 들리도록


“XX야, 새치기하지 마. 새치기는 나쁜 행동이야!”


라고 말하고 여러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게 만들라고 이야기했다.


순간 아차 싶은 생각이 들었다. 결코 적절하지 못한 해답이었던 것이다. 내가 추천해 주는 방법이 도덕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하고 누군가를 사회에서 매장시키는 일종의 왕따를 만들어내는 행동이라서 그런 것은 아니다. (이야기 해놓고도 어른으로서 낯이 부끄러웠다. 내 자식에게 정도가 아닌 길을 가라고 가르치는 것 같이 못난 아빠의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네 속을 후련하게 만들어 주고 싶은 욕심이 더 강하게 생겼다.)

그 해답이 옳은 답이 아니었던 이유는, 내 대답을 들은 네가 답답해하며


"아빠는 내 마음을 이해 못 해."


라고 말하며 엄마 품에 안겨 서럽게 울었기 때문이다.


사실 너의 말에 대답해 주는 동안 중간중간에도 네가 너의 기분과 생각에 관하여 이야기를 했고, 자기도 똑같이 못되게 복수하는 것이 맞다고 주장했었지만, 그러면 똑같은 나쁜 어린이가 된다고 너의 방법에 반대만 했었다. 어쩌면 이해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마냥 반대만 하는 내가 너무 싫었을 것이다. 그래도 나쁜 행동에 대한 맞불작전은 해결책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어렵사리 너를 달래 재워놓고 네 엄마와 또 한바탕 말다툼을 하게 되었다. 쉽게 결론나지 않는 올바른 교육 방법에 대해 우리는 계속해서 평행선에 놓여 있었다.


그렇게 불편한 밤을 보내고 아침 출근길에 지하철에 앉아 어제의 일을 가만히 생각을 해 보았다. 나는 잘못했던 것이다. 올바른 부모란 부모가 올바르다고 믿는 그들의 방법을 주입하는 것이 아니었다. 부모 스스로 겸손해져서 아이들 스스로 판단하고 그 결과를 책임지는 것을 지켜봐 주어야 했던 것이다. 내 딸은 나에게 조언을 듣기 위해서 그런 이야기를 늘어놓았던 것이 아니었다. 나를 위해줄 수 있는 내 편이 필요했던 것이고 그것이 아빠였으면 했던 것이었다. 얼마나 답답했을까…


내가 새치기를 당했다고 해보자. 나는 과연 불의를 알리고 상황을 바로잡을 수 있는 용기가 있을까. 그렇지 못할 것이다. 기껏해야 상대방에게 당신은 지금 새치기를 했고 나는 그로 인해 피해를 입어 불편하다 정도 이야기하는 것이 전부. 그 사람을 대열에서 이탈시키거나 그 사람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받으며 사회 정의를 구현할 것이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어느 누구나 그럴 것이다. 불합리한 상황에 놓이면 누구라도 이를 바로잡고 정의를 실현하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일 것이다. 하물며 7세 어린이에게 나도 못하는 것을 바라는 것은 올바른 부모의 모습이 아니라 부모 스스로 비겁한 것이었다는 생각이 들자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아빠는 이제 너의 선택을 믿고 너의 책임에 박수를 보내겠다. 어떠한 결과든지 너의 마음이 편한 방향으로 행동하여라. 다만 그 일의 결과에 대하여는 스스로 책임을 지게 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구나. 새치기하는 친구를 밀쳐 버리든 때려버리든 모두 너의 선택이야. 원하는 대로 실행에 옮겨 보도록 하렴. 그러면 그 결과가 너에게 어떤 책임을 묻게 되는지 벌어지는 상황 속에서 스스로 배워 나가도록 하여라. 앞으로의 너의 인생에서도, 불의라는 것에 대해 현명하게 대처하는 방법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을 선택해 너의 몸과 마음을 보호하고, 그 결과에 대해서도 당당하게 책임지는 것임을 알았으면 좋겠다.


오늘 아빠는 너로 인해 이것을 배운다. 이제까지 그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던 불의를 맞서는 방법 말이다. 그것은 결과에 상관없이 내 상황과 내 행동을 이해해 주는 내 편을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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