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성

by DJDJ

며칠 전, 아빠와 씻겠다는 너를 데리고 욕실로 향했다. (아직까지 아빠와 샤워하며 놀겠다는 초등학교 1학년 여자아이의 천진난만함이 언젠가 부끄러워하며 나를 밀어내는 너의 모습과 오버랩 되면서 그날이 언제 다가와도 마음을 다치지 않으리라 다짐해 보았다.)


“오늘 하루는 어땠어? 재미있는 일 있었어?”


아빠는 늘 딸의 하루가 궁금해 미칠 지경이니까..


그러면 골똘히 하루를 되새김질하는 너의 모습은 너무나도 사랑스럽다.


‘아, 참 오늘은 수영을 처음으로 배우러 갔던 날이었지..’


순간 떠오른 너의 첫 수영레슨과 함께 생각에 몰두하는 너를 도우려 이야기의 범위를 좁혀 나갔다.


“수영은 어땠어? 재미있어?”


그때부터 너는 수영장 이야기뿐이다. 엄마 손을 놓고 수영장 안으로 처음 들어갈 때 힘들었지만, 선생님도 잘 해 주었고, 친구들도 같은 나이라 어색하지 않게 적응을 잘 했던 것 같다. 심지어 한동안 빠져있던 승마도 뒤로하고 수영만 1년 내내 다니겠다고까지 할 정도였다. 한 번 밖에 가지 않았는데, 말을 타는 것은 물론 승마장에 있는 다른 동물들 돌보는 것을 그렇게 사랑하는 네가 갑자기 수영으로 전향한다고 선언하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이미 네 엄마가 나에게 생중계를 해 놓은 터라, 너의 이야기에 모든 상황이 그려졌다.


아마 모든 사람이 그렇겠지만, 처음 시작은 늘 어렵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이 두려울 수밖에 없다. 처음 가는 곳에 문을 열고 들어서는 것부터가 꽤나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문을 박차고 들어가지 못하고 조심조심 살짝 열어 한쪽 눈을 겨우 밀어 넣고는 동태를 살핀다. 그리고 수영복으로 갈아입는 곳에서 너는 아마 맥이 풀렸을 수도 있다. 내가 이걸 꼭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수영을 배우지 않아도 살아가는데 지장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이 시간에 내가 잘하는 승마를 하러 갔으면 더 좋았을 것을, 친구들이랑 놀이터에서 노는 게 더 나았을 것 같다는 생각 등등 아마 무수히 많은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휘젓고 다녔을 것이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괜찮다. 엄마가 옆에 있었을 테니까. 엄마한테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으며 볼멘소리를 했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드디어 수영장으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엄마는 더 이상 너와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너는 실망과 공포에 빠졌을 것이다. 쉽게 발이 떨어질 리 없다. 멀리서 선생님은 새로운 친구인 너를 환영하고 계속해서 가까이 오라고 부르고 있지만 너의 눈은 이미 닫힌 문에 고정된 채 사라진 엄마를 찾고 있을 것이다. 숲속에서 엄마를 잃어버린 헨젤과 그레텔처럼... 그 사이 네 엄마는 서둘러 유리 문으로 자리를 옮기고 엄마는 여기 있다고 쉴 새 없이 손을 흔들어 존재감을 알려 너를 안심 시켰을 테고 그제서야 너는 안도감으로 맥이 풀려 눈물이 나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리고 마치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엄마를 찾은 것처럼 목 놓아 울면서 엄마를 불러댔겠지. 지켜보는 엄마의 마음도 무너져내려 얼른 닫힌 문을 열고 너를 토닥이며 용기를 북돋아 주었을 것이다. 어느새 선생님도 다가와 네가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재미있을 것이라고 온갖 유혹으로 너를 수영장 안으로 데리고 갔을 것이다. 가까스로 엄마로부터 너를 떼어 놓고 겨우 준비운동을 시작하는 동안에도 너는 소심한 마음의 작은 동작들로 선생님을 따라 하면서도 애절한 눈으로 자꾸 엄마를 돌아보며 원망했겠지. 그리고 물속에서 여러 동작들을 배우는 동안 엄마는 조금씩 잊혀졌을 것이다. 조금씩 적응이 되면서 물놀이가 원래 이렇게 즐거웠다는 사실이 상기되면서 가끔씩만 엄마를 쳐다보며 마음의 안정을 이어갔을 것이다. 그리고 수업이 끝났을 때는 이미 신이 나서, 닫혔던 문을 박차고 나오며 엄마에게 웃으며 뛰어왔을 것이고, 시작부터 끝까지 온통 수영 이야기로 엄마를 기쁘게 했겠지. 네 엄마로부터 들은 몇 마디만으로도 위의 상황은 충분히 그려낼 수 있고 상상이 아닌 현실이라는 것을 아빠는 뻔히 안다.


아빠도 그렇다. 새롭게 시작하는 것은 늘 두렵다. 무엇을 배우는 것과 다르게 회사에서 하게 되는 새로운 일들은 일단 두렵고 공포스러운 존재가 된다. 새롭게 만나는 상대방과 처음 말을 시작하는 것도 늘 어려운 일 중에 하나가 된다. 게다가 아빠는 엄마도 없다. 심지어 아빠를 따르는 부하직원들도 있다. 위에서는 너 정도 되면 잘 해내야지 하는 당연한 기대감이, 밑에서는 네가 알아서 잘 하겠지 하는 무관심과 막연함이 아빠에게 더해진다. 그래서 무엇인가를 시작하는 것은


‘내가 부족하지는 않을까, 잘 해내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


라는 두려움과 결과에 대한 불안에 주변 상황들까지 나에게 불리한 것으로 해석되면서 자신감이 없어지고 당장의 일을 회피하려 들게 된다. 결국 거부 반응으로 얼굴 표정의 변화, 당황함이 드러나고, 손사래를 치며 새로운 일로부터 뒤돌아 서게 만든다. 그러고 너처럼 닫혔던 문으로 서둘러 도망치게 된다.


문제는 저렇게 반복되다 보면 진짜 저런 사람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조금만 앞, 뒤, 주변 상황들을 생각하면 전혀 다른 태도를 가질 수 있다.


아빠의 경우에는 새로운 일이 생기면 우선 이유를 이해하려고 한다. 정해진 일이면 되돌릴 수 없다. 어차피 아빠는 그 정도로 힘이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결정한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


‘분명 이유가 있을 테니까!’


그리고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나에게 주어졌다면 그만큼 나는 인정을 받고 있다는 것이고 적임자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며 전폭적인 지원을 해 주겠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물론 도와주지 않으면서 일을 떠넘기겠다는 의지가 있는 사람들도 많이 만나게 될 것이다. 이 일은 내 일이 아니고 너의 일이라고 생각하며 선을 긋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세상이다. 그래서 때로는 지원이라는 것은 확정된 것이 아니라 이끌어내야 하는 대상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전혀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은 늘 각오해 두어야 한다.) 이제부터 그 일은 양팔을 걷고 부딪혀 보아야 하는 대상으로 바뀐다. 그리고 헤쳐나가는 과정 중에서 나도 모르게 나의 전투력과 시야가 향상되는 것을 느낄 것이고, 일을 하는 진정한 이유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 일을 통해 나의 경험치는 올라갔을 것이고 그만큼 레벨도 달라지게 된다. 이제는 성취해내지 않으면 안 되는 나의 일이 되어 버렸고, 어떻게든 이 결과를 최고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해 임하게 된다. 어때? 이 상태의 나와 방금 문밖으로 도망치려던 나를 두고 비교해 보거라.


너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조금만 앞, 뒤, 주변 상황을 헤아려볼까? 아빠는 이런 과정을 진정성을 갖는다고 이야기하겠다. 수영을 배우는 것에 대하여 조금은 더 진정성 있게 임해보자. 수영을 왜 배워야 하는지 생각해 보자. 여러 재난 상황들을 직, 간접적으로 보았을 것이다. 얼마 전에는 쓰나미가 얼마나 무서운지, 배가 가라앉았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수영을 할 줄 안다는 것이 나의 생명을 지킬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의 생명까지 구할 수 있다는 것을 함께 보았을 것이다. 반드시 필요한 능력임을 너도 잘 알고 있다. 하루라도 빨리 배워 두어야 언제 닥칠지 모르는 위험에 대비할 수 있다. 게다가 지난달 갔던 여수의 한 수영장에서 팔에 끼는 튜브에 의존하지 않고 수영을 한 번 해 보겠다고 호기롭게 이야기했다가 물을 엄청 먹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거기서도 너는 수영을 꼭 배워야겠다고 나에게 이야기했었다. 그래서 네가 해야 하는 일이고, 필요하다고 판단되어서 엄마가 너를 지원해 주러 수영장 문 앞까지 데려다주었고, 수영을 배울 수 있게 전문가인 선생님께서 너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두려울 것이 없다. 수영장 문안과 밖에 너를 전적으로 진원해 주려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말이다. (물론 이 지원 가운데 절반은 돈으로 산 것이지만, 때로는 그렇게 무엇인가로 도움을 이끌어내야 한다. 그게 인생의 이치이니까.) 이제부터 수영은 걷을 팔은 없지만 없는 팔이라도 걷어서 부딪혀 보아야 하는 대상이다. 그리고 호흡하는 방법부터 하나씩 배우고 조금 더 물에 몸을 띄우고 자유형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 속에서 너는 조금씩 성장을 하고 수영이라는 전투력이 향상되며 그 안에서 너만의 재미와 기쁨을 찾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는 아빠와 엄마는 모르는 너만의 수영에 대한 감각이 너의 몸에 자리 잡을 것이고 그것을 통해 너의 몸을 더 잘 깨닫고 다른 운동에도 활용할 수 있는 너만의 철학을 얻게 될 것이다. 이것이 너의 경험치와 레벨을 눈에 띄게 올려놓았을 것이다. 그래서 수영을 더 잘하게 되면, 너 스스로도 수영장에서 더 잘 즐길 수 있고, 언젠가 남의 생명을 지킬 수 있는 꼭 필요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아빠는 제주도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아직도 수영을 할 줄 모른다. 그래서 물에 빠진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구해주고 싶지만, 그럴 능력이 없는 사람이다. 그 상황에서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내가 물에 빠지면 내 스스로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이라 물 근처에 가는 것이 두렵다.)


진정성을 갖고 무엇인가를 대하는 것은 이렇게 많은 차이를 불러일으킨다. 두려워서 앞으로 한 발짝도 못 나가게 하던 일을 양팔을 걷어붙이고 하게 만든다. 하기 싫고 자리를 피하고 싶어 울던 너를 강한 의지를 갖고 앞으로 나아가게 만든다.


매사 진정성을 갖는다는 것이 굉장히 피곤하고 소모적이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지만, 어렸을 때부터 마주하는 모든 것들에 진정성을 갖고 깊이 있게 대하다 보면 어느새 너는 매우 깊은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남들과 다른 태도와 눈빛을 갖게 될 것이고, 그 결과는 그 누구보다 훌륭할 것이다. 그리고 모두가 너를 기대하고 너에게 한 발 다가가려 할 것이다. 딱 한 번만, 앞, 뒤 상황을 생각하고 이유를 고민해 보는 습관, 이것 하나가 너의 인생을 다르게 만들 것이다. 아마도 뒤에서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현정이 그 친구는 말이지. 가짜가 아닌 진짜야. 믿고 맡겨도 돼.“


아빠도 이런 사람이 되도록 더욱 진정한 모습을 가꾸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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