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이 되고 난 후, 너의 삶은 많이 달라졌다.
우선 유치원보다도 출결 사항에 더욱 신경을 쓰느라 네 엄마도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 한다. 아침에 일어나 너를 깨우고 아침을 준비하는 네 엄마를 상상하고 있노라면, 나와 내 형의 학창생활 12년에 나이 터울 4년의 시간을 합쳐 거짓 16년을 규칙적인 삶을 살며 두 아들의 정규 교과과정을 개근으로 만들었던 너의 할머니의 대단함에 절로 박수가 난다. 너도 달라진 학교생활에 피로감이 더해지고 이제 한창 자랄 때라 예전과 달리 아침잠이 늘어가는 것을 보면서 보이지 않는 잠과의 전쟁을 치르는 내 여자들의 아침이 사뭇 걱정스럽다. (너도 잘 알다시피, 엄마는 아침잠이 많단다. 그래서 매일 아침이 조금은 걱정스럽다. 지각할까 겁이 나는 게 아니다. 그건 그다음 문제이다. 그보다 오히려 괜히 늦어진 책임을 탓하느라 서로의 감정이 실린 언사로 엄마와 너 사이에 다툼이 있지는 않을지... 그로 인해 서로의 하루가 무겁게 시작되는 게 걱정이 된다. 규칙적인 생활을 한다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또 있을까 마는 그래도 우리 모두 각자의 삶을 책임지는 주체로서 규칙적인 생활을 짜임새 있게 만들어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그 습관이 몸에 배면 네가 원하는 무엇인가를 얻는 것이 점점 쉬워질 것이다.)
아빠가 보기에 두 번째로 너의 삶에서 달라진 게 있다면 시간과의 싸움이다. 몇몇 학원을 다니는 중이라 그 시간에 맞추어 이동해야 하고 다녀와서는 그날의 과제와 학습지 분량을 해치워야 하며, 나름 호기롭게 네가 하겠다고 한 자율 학습 또한 끝내야 하므로 시간을 제대로 안분하지 못하면 해야 할 것들이 쌓여가며 너의 삶을 고통스럽게 한다. (물론, 그 고통에 중심에는 엄마의 야단이 있다. 이상하게 너의 엄마의 야단에는 절대 이길 수 없는 승기가 깔려 있어 늘 주눅이 들고 마는데 그런 상황이 자주 연출되다 보면 스스로 자신감이 없어지는 것만 같아 걱정이다. 그래서 엄마에게 야단을 듣는 사람은 우리 집에서 나 하나면 족할 것 같다. 너는 스스로의 자신감과 자존감을 드높여 언젠간 너의 엄마를 이기는 날이 오기를 조심스럽게 기도해 본다.)
주말에는 아직은 아빠와 노는 게 즐거운지 놀아달라고 하는 너를 보며 미루어 두었던 것들을 먼저 하고 노는 게 어떤지 물어보는 내가 가혹한 아빠인 것 같아 너의 의무를 나 또한 잠시 미루어 두게 된다.
어제도 그런 하루였던 것 같다. 계속 반복되는 그런 주말들이 쌓여간다.
“다음 주부터는 현정이가 약속한 것들은 다 하고 노는 거야, 알았지?”
하고 아빠와 엄마는 이번 한 번만 봐준다는 생각으로 너에게 다짐을 받아내지만,
“알았어.”
하는 너의 말에는 다음에는 꼭 그렇게 하겠다는 다짐보다는 얼른 대답하고 원하는 것을 더 빨리하겠다는 욕심이 담긴 건성만 느껴진다.
이제는 걱정되기 시작했다.
아직 초등학교생활을 시작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지만, 습관의 형성이라는 것은 무섭도록 빠르기 때문에 너의 마음속에 오늘 해야 할 일들이 너를 긴장시키지 않는다는 사실이 하루를 사는 너의 습관과 기질을 만들까 아빠는 심히 우려된다.
자꾸 미루는 너에게 오늘은 아빠의 생각을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너의 아빠는 미루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먼저 하는 것을 좋아한다. 물론 삶의 태도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무엇인가를 먼저 한다는 것에도 단점은 존재한다. 시행착오가 수반되며, 결국에는 먼저 했던 일을 다시 한번 돌아봐야 하고 심한 경우에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착오가 생기기도 한다. 조금만 넉넉히 기다렸다 알맞은 템포를 찾아 적당한 속도로 시작하면 오히려 효율적인 경우도 상당히 많지만, 아빠는 그런 기질은 아닌가 보다. 나는 항상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무엇인가를 시작한다. 미루었다가 걷잡을 수없이 커져가는 나의 부담에 내 스스로 질릴까 신경이 곤두서는 조금은 소심한 면이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아빠는 가장 힘든 일을 가장 먼저 하는 것을 좋아한다. 어떤 일이 생겼을 때는 늘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계획을 세워야 한다. 그런 아빠의 확률적으로도 일어날 일이 없는 것들에 준비하는 모습에 답답함을 느끼는 주변 사람들이 있고, 네 엄마도 때로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상황까지 계산에 넣는 것에 핀잔을 주기는 하지만, 아빠는 금융을 하는 사람이다. 적은 확률에 위험을 무시하다 보면 그게 쌓여 엄청난 위기를 만들어내는 것들을 삶의 과정 중에, 그리고 금융 시장의 매일 속에서 목도하게 된다. 1998년의 IMF 경제 위기와 2008년의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와 같은 경제 위기는 낮은 확률에 안도감을 갖고 대응하지 않았던 것들이 위기의 싹을 키워 결국 세상의 많은 사람들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는 대형 참사를 만들지 않았던가. (금융시장에 관한 이야기들은 나중에 따로 정리하여 너에게 알려줄 예정이다.)
가끔씩 나는 너에게 물어볼 것이다.
“가장 맛있는 것과 가장 먹기 싫은 것이 있으면 무엇부터 먹을 거야?”
아빠는 가장 먹기 싫은 것을 먼저 먹는 사람이고 맛있는 것을 나중에 먹는 스타일이다. 마찬가지로 가장 어렵고 힘든 일을 먼저 하고 가장 쉽고 즐거운 일들을 나중에 하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어떤 일이든 최악의 상황을 먼저 대비하고 최고의 시나리오를 나중에 생각하는 나의 버릇은 앞으로도 더욱 강해질 예정이다.
물론 사람마다 달라서 쉬운 것들로 워밍업을 하고 어려운 것들을 단계적으로 해결해 내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그 사람들도 나름의 이유와 방식으로 아빠와 다른 사고를 하고 훌륭한 결과물들을 만들어내는 경우를 늘 보게 된다.
너는 어떤 사람이었으면 좋겠니? 정답은 없다.
분명한 것은 하기 싫은 것들을 뒤로 남겨두다 보면, 해결해야 할 어려움들이 커져갈 것이라는 것이다. 너처럼 미루기 좋아하는 친구는 아빠와 같은 삶의 방식이 어떨지 고려해 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미루더라도 네가 하고 싶은 것들, 좋아하는 일들이 뒤로 남겨질 테니 조금은 마음의 짐이 덜어지지는 않을까?
그렇게 너의 삶이 조금이라도 쉬워지기를 바라는 아빠의 간절함을 생각해서라도 우리 미루는 것은 그만하는 게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