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다니는 회사는 똑똑한 사람들만 모여 있는 지식 집단이다. 어려서부터 1등 아닌 등수를 자신의 성적표에 찍혀 있는 것은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천재라는 소리를 듣던 사람들이고 시험이라면 항상 100점을 받던 사람들이 모여 무엇인가 회사의 목표를 향해 함께 일을 한다.
(애석하게도 아빠 회사에서 아빠가 제일 공부를 못하는 축에 낀다. 그러니 위의 공부 잘하는 친구들의 이야기는 아빠와는 상관이 없다. 미리 미안해, 내 딸!)
‘사장님은 참 복도 많지. 어떻게 저런 인재들만 골라서 직원으로 만들고 회사를 운영할 수 있을까? 너무 행복하겠다.’
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 그러면 어떨 것 같니? 못해 낼 것이 없을 것 같고 1등들만 모여 있으니 주어진 업무의 결과는 항상 1등의 결과물처럼 완벽하고 번뜩이는 것들만 쏟아져 나올 것 같지 않니?
그러나 그런 아빠의 회사도 항상 1등만 하고 늘 맞는 결과물을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네가 나중에 사회생활을 해보면 알겠지만, 때로는 평범한 한 사람만도 못하는 똑똑이 집단이 있고, 우매한 대중의 힘이 현자들의 교훈과 소수의 엘리트의 결정보다 나은 경우도 자주 보게 될 것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조직에 관한 다양한 연구에서 학문적으로 접근해 그 문제를 파헤쳐 보기도 하고, 사회학에서 이 문제를 다루어 보기도 했다. 그 이유를 읽어보면 신기하게도 모두 맞는 말이다. 하지만, 오늘 아빠는 나의 생각을 너에게 이야기해 주고 싶다.
도대체 왜 답을 찾는데 1등인 사람들이 모여 있는데도 문제가 발생하는 것일까?
아빠의 답은 “질문”에 있다.
무슨 말인지 궁금하겠지? 지금부터 아빠가 살며 느끼는 것들을 설명해 보도록 하마.
공교육이 시작되면(그러니까 너처럼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면) 우리나라 학생들은 우선 답을 찾기 바빠진다. 선생님의 질문에 대답을 잘해서 칭찬을 받고 싶은 욕심에 너도나도 답을 맞히기 위해 안달이 난다. 그래서 정답을 말하고 다른 친구들 앞에서 칭찬을 받게 되면 스스로의 자존감도 올라갈 것이고 앞으로 정답을 찾기 위한 동기부여가 되어 더더욱 해답 찾기에 몰두하게 된다. 중, 고등학교 시절도 마찬가지이다. 비록, 시험이라는 제도가 묻는 자와 대답하는 자를 엄연히 분리시켜 학생들에게 답을 말하도록 설정이 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정답을 찾기 위해 문제를 분석하고 어떻게든 답을 써 내려가는 학생들의 머릿속에는 온통 정답에 대한 고민뿐이다. 대학에 가면 어떨까? 대학은 그나마 낫다. 5지 선다형 문제보다는 주관식 문제를 통해 정답을 표현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으니까. 그나마 정답에 가까운 답을 다양하게 표현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정답 찾기의 함정에서 조금은 벗어나게 된다.
그런데 왜 우리는 답은 그렇게 열심히 찾으면서 질문은 하지 않는 것일까?
올바른 질문은 그 해답만큼 중요한 것인데…
상상해 보자. 네가 학교 교실에 친구들과 앉아있는 어느 수업 시간이다. 선생님께서는 쉬운 질문들로 너희들의 발표 의지를 북돋아주었다. 몇 번의 질문을 통해 친구들은 수업에 매료되었다. 갑자기 선생님께서 무언가 생각하지 못한 질문을 던졌다. 그때 교실의 반응은 어떤가? 침묵이 흐를 것이다. 너희들을 완전히 압도하는 그 어떤 질문은 숨을 쉬다 갑자기 산소가 한순간에 없어진 것 같은 적막으로 교실을 바꿔 놓을 것이다. 해답을 찾기 위해 너희들은 생각할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마땅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도무지 선생님의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을 찾지 못한다. 나뿐만 아닌 모든 친구들의 얼굴에는 아리송함의 그늘이 그득하다.
이때 답을 찾는 방법은 무엇일까? 답을 찾는 방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선생님의 질문에 관하여 선생님에게 다시 질문을 하는 것이다. 질문을 이해하지 못하고 선생님의 생각을 제대로 읽지 못하니 답을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면 선생님의 의도를 파악하고 그 질문에 대한 정보를 더 많이 얻는 것이 답을 찾는 방법이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은 질문자와의 간극을 좁히는 것이다. 그래서 질문을 한 선생님에게 되돌아가 다시 질문을 한다. 이 질문을 통해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묻는 이가 듣고 싶은 답, 답하는 이가 찾는 답에 가까이 가게 된다.
정곡을 찌르는 선생님의 질문은 예리하고 올바른 질문으로 좌중을 압도했다. 그런 선생님과의 간격을 좁히기 위해서는 선생님에게 다시 올바른 질문으로 응수해야 한다. 그리고 문제를 완전히 알았을 때 그때, 판단을 하고 답을 이야기해도 늦지 않다. 그래서 질문은 매우 중요하다. 거기에다 질문을 주고받는 과정을 거치면서 서로의 인간적인 벽도 낮아지면서 감정적인 이해도도 깊어진다. 단, 그 질문은 상대방을 불편하게 만들거나 궁지에 몰아넣는 나쁜 질문이 아닌, 서로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올바른 질문이어야 한다.
아빠의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늘 회의가 한창이다. 각자 자기의 보고를 하느라 정신이 없다. 준비해온 정답을 잘 전달하기 위해 열심히 답만 이야기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허를 찌르는 질문을 받게 된다. 그때, 그 사람은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머릿속으로
‘저 사람이 묻는 질문에 적절한 답은 무엇이지?’
하는 생각만 하게 된다. 그리고 모자란 정보로 판단하여 대답하는 답은 언제나 정답에서 빗겨 있다. 그럴 때에는 차라리
“조금 더 명확하게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라고 좀 더 많은 설명을 요구하거나 상대방의 질문의 중요한 한 꼭지를 구체적으로 펼쳐낼 수 있도록 질문을 하는 것이 정답으로 다가가는 올바른 접근 방식이 된다.
질문은 이렇게 힘이 있는 것이다. 정답을 멋지게 말하는 것보다 질문을 통해 시간을 멈출 수 있는 것이다. 나에게 생각할 시간을 만들어주고, 대화의 주도권을 가져올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질문이다. 올바로 질문할 줄 알아야 원하는 답을 이끌어낼 수 있다. 좋은 질문은 좋은 답을 만들어 내기 마련이다. 어렵거나 난해한 질문들은 장황한 답을 얻지 못하고 주변을 빙빙 배회할 뿐이다. 그리고, 질문은 서로의 거리를 가깝게 만들어준다. 나의 말에 대해 궁금한다는데 공격적이고 불쾌한 질문이 아니라면 그 질문은
‘너의 질문에 대해 더 잘 알고 싶어, 너라는 사람의 사고방식을 좀 더 잘 이해해 보고 싶어.’
라는 것과 동일한 것이다.
아빠의 회사는 물론 많은 회사들이 그 훌륭한 인재들을 모아 놓고 생산적이고 효율적인 일을 쉬이 할 수 없는 이유는 올바로 질문하는 사람들이 없기 때문이다. 모두 정답만 찾을 생각이지, 아무도 물어보려 하지 않는다. 정답은 오로지 사장님 입에서만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질문은 답을 찾기 위해 전무에서 상무로, 상무에서 부장으로, 부장에서 팀원들한테까지 흘러간다. 질문하는 자와 답하는 자 사이의 간격이 보이는가? 서로 얼굴도 마주한 적 없는데 사장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올바로 찾아낸다면 그것이 오히려 신기하다. 그래서 임원 회의에서 질문의 의도를 최대한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충분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 회의가 길어져서 좋을 것은 없지만, 모호한 질문만 남겨놓는 회의는 회사가 가는 방향을 엉뚱하게 만드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회의의 결과는 공감으로 귀결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가 서로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도록 많은 질문들이 오고 가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너 자신을 위해서 스스로에게도 많은 질문을 하라는 것이다.
순간순간 너스스로의 생각과 감정이 모호할 때가 있을 것이다. 그때마다 자기 자신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기 위해서, 지금의 감정 상태가 어떤지 분명히 파악하기 위해서, 생각을 보다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 스스로에게 올바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질문은 너를 풍요롭게 만들어 줄 것이다. 더 많은 정보를 얻게 할 것이고, 누군가와의 관계를 더욱 가깝게 만들어 줄 것이다. 그런 질문을 올바르게 할 줄 아는 사람이 되도록 질문의 실력을 갈고닦기를 바란다. 이제 초등학교 1학년이니까 앞으로 무수히 많은 질문들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올바른 질문들을 열심히 찾으며 앞으로 멋진 네 삶을 위해 발을 내디딜 수 있도록 앞으로 아빠도 너에게 더 좋은 질문들을 많이 하도록 최선을 다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