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바뀌었다. 미국에서 맞이하는 첫 번째 해이다.
‘어서 와! Is this your first time?’
그러나, 처음은 아니라는 것…
그래서일까? 오늘은 조금은 다른 모습이었다.
어제 사다 놓은 시리얼은 그렇게 맛있지 않았나 보다. 너의 엄마의 말을 빌리면 맛이 형편없다고 했다. 한국의 호랑이는 참 맛있는데 말이다. 그렇게 먹는 둥 마는 둥 준비를 마치고 결핵검사 장소인 마이크로네시아몰로 향했다고 한다. 나도 지도에서 이곳저곳 길 찾기를 통해서 찾아보았는데, 그곳으로 향하는 길은 괌에서도 가장 번화한 투몬 해변을 끼고 있는 메인 해안 도로였다. 길가에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식당들과 고급 호텔, 리조트들을 너도 엄마도 보았을 것이다. 물론 엄마는 그 덕분에 기분이 좋아졌다고 했다. 면세점과 루이비통 매장을 지나치면서 엄마는 도시 여자답게 조금씩 이성을 되찾고 감정을 컨트롤하기 시작했을 테고 아마 입가에 미소가 번져 나갔을 것이다.
결핵검사를 마무리하고 그 결과 이상이 없어야 학교에 다닐 수 있는 모양이다. 사전에 오리엔테이션 때에는 한국에서 검사 결과를 가져가도 이상이 없을 것이라고 안내하였는데, 현지에서 이것저것 사정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다. 늘 마음대로 되는 일들은 없다. 항상 발품을 팔고 현지에서 직접 부딪히면서 배워가야만 한다.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면 답은 늘 현장에 있는 법이다. 선택지가 존재한다면 이격지가 아닌 현지에서 처리를 하는 것이 옳다. 이곳에서 그곳에서도 할 수 있는 것들을 준비해 가는 것은 불필요하다. 어차피 현지에서는 그곳에서의 법칙과 그곳에서의 관행이 있을 테니까 말이다. 네가 그곳으로 향해 일본산 렌터카에 몸을 싣고 한낮의 무더위를 뚫고 갈 무렵, 나는 우리 브니(기아자동차 k7을 우리는 ‘세븐’의 끝 글자를 따서 이렇게 부른다.)의 마지막 최고급 스파를 선사하기 위해 미세먼지 주의보가 내려진 한국의 겨울을 가르고 있었다. 무슨 세차 가격이 30만 원씩이나 하냐고 할지 모른다. 나도 처음 그 가격을 듣고 의심했으니까. 하지만 도대체 얼마나 깨끗하게 하길래 그 돈인지 궁금하기도 했고, 내가 브니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일지도 몰라서…최고급 세차를 선택했다. (물론 세차를 맡기고 기다리기 위해 계단을 올라오면서 머릿속으로 브니에게도 그런 자격이 충분하다고 곱씹었다. 브니 덕분에 나는 너의 엄마를 편안하게 할 수 있었고, 브니와 함께 너의 어렸을 적 많은 추억들을 함께 할 수 있었으니까. 사실 우리의 아름다운 사진들 숨은 공은 사진 밖에 남겨져 있던 브니에게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브니도 나에게, 우리 가족에게 적응해 왔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3시간이나 기다려야 하니, 커피나 한잔해야지 하고 커피숍을 향해 가는 길에 톡이 왔다. 행복하게 파스타를 먹고 있는 너의 얼굴. 기특하게도 너무나 잘 먹어서 너의 엄마는 감동했고, 미안해지기까지 했다더라. 배를 채우고 난 뒤 그곳에서 게임도 하고 몰 구경도 하고 나니 네 엄마의 목소리는 행복해져 있었다.
‘아, 벌써 적응하기 시작했구나.’
마트에도 다녀오고 호텔로 돌아와서 짐을 정리하고 다시 해변으로 발을 돌렸다. 몇 시간 뒤, 아름다운 날씨를 배경으로 맑은 바닷물에 발을 담근 너의 모습이 보였고, 비로소 나는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이제 됐다.’
이제 적응한 것이었다. 나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너와 너의 엄마는 행복해 보였다.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남아있고, 내일 일정도 급하게 변경되었지만, 엄마의 불평도 덜 해졌고, 너도 짜증 내는 투가 아닌 것으로 보아 괜찮아진 것 같았다. 에이전시도 현지에서 급박하게 변하는 상황들에 적잖이 당황해 보였고, (남녀 차별이 아닌 남녀 차이)여자 직원이 없어서인지 섬세함과 꼼꼼함이 조금은 결여되어 있는 그저 열심히 하는 남자분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매끄럽지 않게 돌아가는 상황이 아주 조금은 불안해 보였다. 나는 상관없다. 여차하면 한 달 그냥 놀다 와도 된다. 스쿨링은 뒤로하고 괌 한 달 살다 오기를 해도 좋으니까!
이제 사람들과의 만남으로 조금 더 풍성해질 것이고 잡음도 조금씩 생겨나겠지만, 사회라는 곳은 늘 그런 투닥거림으로 굴러가는 것이니 그것 또한 네가 헤쳐나가야 할 또 하나의 인생인 것. 그렇게 생활을 통해 너의 마음이 커가고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들을 잘 갖추어 나가기를 바란다.
오늘 자기 전에 영상통화에서 너는 네가 쓴 영어 일기를 읽어주었다. 어제와 오늘의 이야기… 확실히…오늘은 기분이 좋다. 내 여자들이 기분이 좋으니… 나도 기분이 너무나도 좋다. 적응해 줘서 너무 고마운데, 여기에 한술 더 떠 네 엄마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랑해, 그리고 고맙고 이런 경험하게 해 줘서~잘자요~나만의 남자”
(분명, 어제까지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그 사람이 맞다! 나만의 여자...바로
그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