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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호 Sep 20. 2024

"저, 잘 지내요"

공무원, 그만두고도 잘 지내요.

 '지이이잉-----'


 자전거를 세우는 찰나 울리는 진동소리.

 백팩을 뒤적뒤적, 휴대폰을 겨우 꺼냈다.


 'ㅇㅈㅇ 실장님'


 이름을 확인하고 잠시 멍-한 기분, 시간이 멈춘 기분.


 "여보세요?"


 내가 수신 버튼을 누름과 동시에 상대는 꺼짐 버튼을 누른 모양이다.


 '다시 걸까?'


 잠시 망설이다 그만두었다.  

 잘못 걸려온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실수로 건 전화에 회신 전화가 오는 것만큼 난처한 일도 없기에 그만둔다.


 '실수라면 톡이라도 오겠지'


 지난 14년 내 과거의 삶에는 공무원이라는 정체성이 있었다. 

 그 정체성을 떼어버린지 만 2년.

 이따금 잊혀 가는 이름들과 연락이 닿을 때가 있다. 그런 순간이었을까.


 'ㅇㅈㅇ 실장님, 좋은 분이셨는데'


 마흔둘의 나는 교육행정직 공무원을 그만두고 초등학생들과 책을 읽고 글쓰기 수업을 하는 논술 선생님이 되었다.

 가끔씩 '내가 선생님 놀이를 하나?'라는 생각에 웃음도 난다. 

 그래도 귀여운 아이들이 나를 '선생님'이라고 불러주니 나는 선생님이다.


 공무원도 박봉이었지만 지금은 더 말도 못 하게 박봉이다. 

 물론 일하는 시간이 많이 줄었다. 그렇다곤 해도 수업을 위해 준비하는 시간을 생각하면 긴 시간이다. 

 장시간 일하고 파트타임 정도의 수입을 벌지만 아이들 책을 읽으며 나도 많이 배운다. 

 공무원 그 시절에도 나는 일을 하며 무언가 배우고 있었지만, 지금은 더 마음에 드는 것들을 배운다.

 역사나 세계지리, 과학처럼 학창 시절 배웠지만 잠시 머물고 희미하게 사라져 간 지식들 말이다. 

 나이 마흔에 이런 것들을 배우는 것이 재미있다. 

 그때는 외우기 바빴지만 지금은 재미있게 공부한다.





 한 보건직 공무원의 죽음을 인터넷 기사로 접했다.

 부제에 적힌 '차라리 공장 가서 일하면 안 될까'라는 문구가 뇌리에 강하게 남았다.


 마지막 학교에서 나는 젊은 행정실장이었다. 

 주어진 책임을 무거워하던,  내 몫을 잘 못하고 있다는 자책에 힘든 시간을 보내던, 초등학교 행정실의 관리자였다.


 "페인트 도장은 배워야 할 수 있는 거예요? 어디서 배울 수 있어요?"


 교내 페인트 도장 시공을 맡은 업체의 대표님께 진지하게 물었던 적이 있다. 

 몸이 고되더라도 마음이 덜 불편한 일을 하고 싶다는 바람이 컸기 때문이다.


 젊은 공무원의 죽음을 신문기사로 읽으며 과거의 나를 겹쳐본다.

 그때의 나와 포개져 눈물이 괸다.




 2021년 겨울,

 휴직의 나날이 한 장 한 장 지나가고 복직의 부피가 성큼성큼 다가옴을 느끼며 

 나는 헐벗은 나무처럼 떨었다.


 퍼석퍼석 불안한 마음만 남은 나는 수없이 검색했다.

 공무원 이후의 삶이 잘 가꿔지고 있는지.

 공무원을 관둔 사람들은 후회 없이 잘 살고 있는지.


 내 삶도 그들과 같으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그저 '잘 살고 있다'는 그 한마디를 듣고 싶어서 검색하고 또 검색했다. 그들의 삶에 나의 삶을 치환하여 관두고도 잘 살 수 있다는 확신을 얻고 싶었다.


 논술 선생님으로 살고 있는 현재의 내 삶에도 여전히 시름은 있다.

 그래도 잘 지내고 있다는 말을 남기고 싶어 이 글을 쓴다.

 혹시 누군가 그 무렵의 나처럼 그 한마디를 찾아 헤맨다면 '잘 지내고 있다'는 그 말을 여기에서 확인하라고 이 글을 쓴다.

 때때로 우리는 잘 알지 못하는 타인의 말 한마디에서 위안을 얻고 용기를 얻는다.


 ㅇㅈㅇ 실장님껜 아직까지 톡이 오지 않는다. 전화를 걸어봐야겠다.


 '왜 전화하셨을까'


 "잘 지내? 메신저에 왜 자기가 없지?"


 그렇게 물으신다면,


 "저, 그만뒀어요. 잘 지내고 있어요"


 대답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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