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권의 책, 그리고 끝내 다 읽지 못한 문장들

2026년 3월 독서 결산

by 어디

시간이 정말 빠르네요. 2026년의 시작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4월의 문턱에 다다랐습니다. 지난 3월 한 달 동안 제 곁을 머물렀던 17권의 책들을 갈무리해 보려 합니다. 13권의 완독과 4권의 중도 포기. 그 솔직한 여정을 시작합니다.


시의 마음으로 연 3월의 문

가장 먼저 펼친 책은 문학동네 시인선 300호 기념 시집, "우리를 세상의 끝으로"입니다. 여러 시인의 시와 함께 ‘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각자의 답이 실려 있어 흥미로웠어요. '잠든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조그만 인중을 만져보는 것. 부서지지 않도록.'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이 문장을 필사할 때 마음이 참 몽글몽글해졌습니다.


덮어두기로 한 책들: 실패가 아닌 선택

때로는 책을 덮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합니다. "노멀 피플"은 이미 드라마를 너무 인상적으로 본 탓에 자꾸 배우들의 연기만 잔상처럼 떠올라 정주행을 포기했고, 양귀자 작가님의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은 설정이 다소 생소해 중간에 내려놓았습니다. "구의 증명"은 ‘식인’이라는 파격적인 소재와 음울한 분위기가 제 마음속에 찌꺼기를 남기는 기분이 들어 끝내 덮었습니다. 다만 남녀 주인공의 시점이 교차하는 방식은 참신했어요. 박정민 배우님의 출판사에서 나온 "첫 여름, 완주" 역시 소재가 조금 뻔하게 느껴져 1/3 지점에서 멈춰 섰습니다.


변화하는 세상과 기록의 기술

남편의 추천으로 “기계는 어떻게 생각하고 학습하는가”도 읽었습니다. '진정한 위험은 인간이 질문하기를 포기한 때에 온다.' 우리가 학교에 다닐 땐 없었던 AI이지만, 이제는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찾으며 배워가는 자세가 필요함을 새삼 느꼈습니다. 이어 읽은 실용서 "잉크, 예뻐서 좋아합니다"는 제게는 이미 아는 내용이 많았지만, 잉크 입문자들에게는 훌륭한 길잡이가 될 것 같더군요. 산문집 "활활발발"에서는 '다 써놓고 한 문장을 빼봤을 때 와르르 무너지는 글이 정말 잘 쓴 글'이라는 소중한 팁을 얻었습니다. 기록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생활 글쓰기"에서는 GPT를 '머리는 좋은데 일머리 없는 신입사원 같다'고 묘사한 부분에서 격하게 공감하며 웃기도 했습니다.


짧지만 강렬한, 위픽 시리즈의 발견

이번 달은 위픽 시리즈의 매력에 푹 빠졌습니다. 아이디어는 기발했지만 전개가 다소 기괴해 겨우 완독한 "돈 안 쓰면 죽는 병”을 읽었고요. 미술계와 난민 이야기를 잘 녹여낸 "나의 미치광이 이웃”은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습니다. 소설 속 미아가 어디선가 꼭 예술 활동을 계속하고 있기를 바라게 되더군요. 그리고 "만조를 기다리며"는 3월 최고의 흡인력을 보여주었습니다. 필사할 새도 없이 단숨에 읽어버릴 정도로 흥미진진했죠. 짧은 소설이 줄 수 있는 최고의 몰입감이었습니다.


음악, 그리고 기록하는 삶

본업이 음악 쪽이라 예전부터 궁금했던 "OOO 음악가 되기"는 테크니션 이세호 님의 인터뷰가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이어 읽은 "기록하기로 했습니다"에서는 인스타그램에 '좋은 순간 모음집'을 쌓아가는 '#1일1줍' 아이디어를 얻어 저도 실천해보고 싶어졌습니다. "내가 아직 쓰지 않은 것"은 시인의 말만 따로 묶은 참신한 책이었는데, '해야 하는 일에 구멍이 뚫리면 여유가 생긴다. 조급해지지만 그것도 여유다'라는 문장에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어떻게 쓰지 않을 수 있겠어요"를 덮으며 다시 한번 기록의 의미를 새겼습니다. '인생은 돌아갈 수 없는 순간의 연속이니까 계속 쓴다.' 기록해 두면 그 찰나의 순간을 잠시나마 다시 살 수 있으니까요.


다시 만난 공간의 기억

마지막으로 “종이 위에서 울고 웃기”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제가 이전 글에서 소개한 ‘라이팅룸’에서 쓰인 무수한 글들과 저자의 에세이가 함께 묶인 책인데요. 공간의 공기를 떠올리며 저자의 문장에 집중해 읽다 보니, 소중했던 그곳의 기억이 다시금 선명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여러분의 3월은 어떤 문장들로 채워졌나요? 같은 책도 어떤 상황에서 읽느냐에 따라 마음을 건드리는 지점이 다르게 마련입니다. 제 독서 노트 속 조각들이 여러분의 4월에 작은 영감이 되길 바랍니다.


<2026년 3월 독서 결산>

우리를 세상의 끝으로 - 한정원 외

노멀 피플 - 샐리 루니 (중도 포기)

기계는 어떻게 생각하고 학습하는가 - 뉴 사이언티스트 외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 양귀자 (중도 포기)

구의 증명 - 최진영 (중도 포기)

돈 안 쓰면 죽는 병 - 이두온

잉크, 예뻐서 좋아합니다 - 이선영

활활발발 - 어딘

첫 여름, 완주 - 김금희 (중도 포기)

생활 글쓰기 - 김혜원

나의 미치광이 이웃 - 이소호

OOO 음악가 되기 - 김호경

만조를 기다리며 - 조예은 (★3월의 추천!)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 김신지

내가 아직 쓰지 않은 것 - 최승호 외

어떻게 쓰지 않을 수 있겠어요 - 이윤주

종이 위에서 울고 웃기 - 송예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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