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나거나 우울할 때 쓴 기록, 나중에 다시 읽어도 괜찮을까?
저는 여느 때처럼 일기를 쓰다가 문득 이런 궁금함이 생겼습니다. 여러분은 화가 나거나 마음이 몹시 우울한 순간에도 기꺼이 펜을 드시나요? 이 질문에 답하는 분들을 보면 보통 두 가지 부류로 나뉩니다.
첫 번째는 ‘쓰지 않는다’는 분들입니다. 감정이 불안정할 때 쓴 글을 나중에 다시 읽는 것이, 마치 감정의 쓰레기통을 다시 뒤지는 것 같은 불쾌감을 주기 때문이죠. 그때의 우울과 분노가 기록을 통해 고스란히 재현되는 것이 두려운 마음일 것입니다.
반대로 두 번째는 ‘어떤 상황에서도 쓴다’는 분들입니다. 일기장이 감정의 쓰레기통이 될지언정, 그 순간의 부정적인 찌꺼기를 종이 위에 다 쏟아버리고 싶어 하는 것이죠. 혹은 그 지독한 순간마저 나의 일부로 남겨두고 싶어 하는 마음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감정이 소용돌이칠 때 썼던 일기를 시간이 흐른 뒤 다시 꺼내 보면, 세 가지 감각이 차례로 찾아옵니다.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낯섦’입니다. ‘정말 이게 내가 쓴 게 맞나’ 싶을 정도로 평소와 다른 글씨체를 마주하게 됩니다. 종이가 파일 듯 꾹꾹 눌러 쓴 자국이나 거칠게 휘갈겨 쓴 문장들에서, 지금의 나와는 또 다른 '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어지는 감정은 ‘민망함’입니다. ‘내가 고작 이 일로 이렇게까지 화를 냈다고?’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죠. 하지만 그 민망함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만큼 지금의 내가 단단해졌다는 증거이며, 당시의 내가 그만큼 간절히 아팠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이니까요.
마지막은 비로소 찾아오는 ‘이해’입니다. 감정의 파도가 지나간 뒤에야 비로소 그 이면이 보일 때가 있습니다. 단순한 화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두려움이나 억울함이었음을, 우울함 뒤에 숨어 있던 해묵은 트라우마가 있었음을 기록 덕분에 뒤늦게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처음 던졌던 질문에 관해 저는 두 번째, ‘그럼에도 기록한다’ 쪽을 택합니다. 마음이 너무 힘들어 도저히 펜을 잡을 수 없을 땐 잠시 쉬어가는 것도 선택이겠지만, 저는 가급적 정제되지 않은 날것의 감정도 기록해두려 노력합니다. 그래야만 꾸밈없는 진짜 나를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록은 빛나는 날들만 남기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기쁘고 행복한 날뿐만 아니라, 화나고 우울해서 내가 무너져 내리는 날조차 남겨둘 가치가 있습니다. 그 어두운 기록들까지 차곡차곡 쌓일 때, 비로소 ‘나’라는 사람의 온전한 지도가 완성될 테니까요. 여러분의 모든 날, 모든 기록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