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스비 에코 B닙, 대제목에 이보다 완벽할 순 없어요

나의 만년필 여정: 라미 사파리에서 트위스비 에코까지

by 어디

기록하는 사람에게 도구는 단순히 글을 쓰는 수단 그 이상입니다. 때로는 그날의 기분을 결정하고, 때로는 멈춰있던 펜끝을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 되기도 하죠. 오늘은 제 기록 생활에 새로운 즐거움을 더해준 친구를 소개하려 합니다. 대만의 만년필 브랜드, 트위스비(TWSBI)의 ‘에코(ECO)’ 모델입니다.


브라운 피규어에서 시작된 만년필 여정

저의 첫 만년필은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라미 사파리와 라인프렌즈의 콜라보 제품이었죠. 솔직히 고백하자면, 만년필의 성능보다는 클립에 끼우는 ‘브라운’ 피규어가 갖고 싶어 시작한 가벼운 입문이었습니다. 당시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던 저는 다른 팀원들과 공유하는 교정지 외의 모든 기록을 그 만년필로 채웠습니다. 글씨가 굵게 써져 손은 조금 피로했지만, 브라운의 귀여움이 그 모든 번거로움을 잊게 해주던 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퇴사 후 아이를 낳으며 만년필은 제 삶에서 잠시 자취를 감췄습니다. 기록할 짬은 커녕 손목과 눈의 건강조차 허락지 않는 고단한 육아의 시간이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죠. 아이들이 주는 경이로움은 그 어떤 피규어의 귀여움도 가볍게 이겨버리더라고요. 자연스럽게 브라운에 대한 관심은 사그라들었고, 라미 사파리는 창고 한편으로 들어갔습니다. 다시 기록을 시작했을 때 제 곁을 지킨 건 실용적인 ‘플래티넘 프레피’였습니다. 지금도 제 기록의 80%를 담당할 만큼 훌륭한 도구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늘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있었습니다.


왜 하필 ‘B닙’이었을까?

프레피에 만족하면서도 그보다 10배 넘게 비싼 트위스비 에코를 들인 이유는 명확했습니다. 바로 ‘대제목’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본문은 세밀하게, 제목은 굵게 쓰는 것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프레피의 M닙으로는 대제목 특유의 묵직한 맛이 살지 않았죠. 그러던 중 우연히 시필해 본 트위스비 에코의 풍부한 잉크 흐름에 매료되었습니다. ‘아, 이 흐름에 B닙을 쓴다면 내가 원하던 그 선명한 굵기가 나오겠구나!’ 확신이 들자마자 트위스비 에코 B닙을 손에 넣었습니다. 흐름이 좋은 플래티넘 카본 잉크까지 채우니, 평소 대제목용으로 쓰던 스테들러 피그먼트 라이너 1.2mm와 비교해도 손색없을 만큼 든든한 굵기가 나왔습니다. 비로소 제 노트가 100% 만년필로만 채워지는 순간이었습니다.


트위스비 에코, 제대로 알고 오래 쓰는 법

트위스비 에코는 5만 원대 초반이라는 합리적인 가격에 ‘피스톤 필러’ 방식을 경험할 수 있는 매력적인 모델입니다. 구성품으로는 본체와 함께 피스톤 관리를 위한 실리콘 윤활제, 분리용 렌치가 들어있습니다. 내부를 완전히 분해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지만, 잦은 분해는 오히려 도구를 상하게 할 수 있으니 피스톤이 정말 뻑뻑해졌을 때만 조심스럽게 분해하시길 권합니다.


잉크 주입 시 주의할 점은 닙 전체를 잉크에 충분히 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소분병을 쓰신다면 병 입구가 닙이 들어갈 만큼 넓은지 미리 확인해 주세요. 펜 뒷부분을 돌려 잉크를 빨아올릴 때, 끝까지 꽉 채우기보다 약간의 공기층을 남겨두는 것이 잉크 흐름 면에서 더 유리합니다. 워낙 잉크 저장량이 많은 모델이니 필요한 만큼만 적당히 채워 쓰셔도 충분합니다. 충전을 마친 뒤에는 닙 주변을 휴지로 가볍게 닦아 마무리하면 됩니다.


오래 사용하기 위해 기억할 점들이 있습니다. 우선 캡을 너무 세게 닫지 마세요. 펜 뒤에 캡을 꽂는 습관도 캡 파손의 원인이 될 수 있어 권장하지 않습니다. 충격에도 주의해야 합니다. 프레피와 달리 트위스비 에코는 수리를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수리에 드는 시간과 번거로움을 생각하면 처음부터 조심스럽게 다루는 것이 최선입니다.


마치며

보통 세필을 선호하는 분들은 EF나 F닙을 많이 선택합니다. 하지만 노트 위에서 시원하게 뻗어 나가는 선을 즐기거나, 나만의 확실한 대제목을 완성하고 싶다면 트위스비 에코 B닙은 좋은 선택이 됩니다. 부드러운 필기감과 풍부한 잉크 흐름을 직접 경험해 보시길 권합니다. 이 새로운 도구가 여러분의 기록을 한층 더 선명하게 채워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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