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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래의 여자 Apr 05. 2020

왼손 생존자

#에세이 10

부모님의 입에 나의 앞날은 자주 오르내렸더랬다. 모두의 어린 시절에는 이런 일이 종종 있었겠지만, 나는 유독 더 심했다. 심하다 못해 매일 나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지만 이 정도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로서 당연하게 참을만했더랬다. 하지만 이상하게 나의 앞날은 여러 사람의 걱정거리였고 그 사람들은 같은 걱정을 각자 했다.


집에선 부모님의 걱정과 형제들의 걱정이 있었고, 명절날 큰집에 가면 친척들이 걱정했다. 학교에선 선생님이 늘 걱정하였고, 어린 나이에 걸맞게 매일 출근 도장을 찍던 작은 학원에선 원장님이 걱정하였는데, 성격과 성향 그리고 성별을 떠난 걱정의 무게와 질감은 다르지 않았다. 각자의 걱정은 개별적으로 있었지만 그 걱정을 받아내는 나에겐 뚜렷한 하나의 걱정이었다.


모두가 걱정하는 그 이유는 나의 손이었다. 나는 '왼손잡이' 이기 때문이다.


왼손을 쓰는 것 자체가 내 앞날의 걱정이었다. 연필과 지우개를 쓸 때, 숟가락과 젓가락을 들 때도, 가위를 쓸 때와 심지어 왼손으로 다리를 긁을 때 부모님과 사람들의 눈썹은 깊은 팔자로 모아졌다.


늘 이해할 수 없고, 인정할 수 없는 차별을 받았었다. 차별의 시작은 나의 손이었고, 상대방의 첫마디는 누구 하나 다르지 않게 "어라, 왼손잡이네?"였다. 왼손은 절대 쓰면 안 되는 금기의 손이었다. 초등학교 한 반에 마흔 명의 학우 중 왼손잡이는 많아야 한, 둘이었다. 무엇인가 잡기 시작할 쯤에 오른손이 아닌 왼손부터 나가면 입학 전에 철저하게 개조되기 때문이다. 입학 전에 고치지 못한 나와 같은 아이들은 뒤늦은 개조와 차별을 당한다.


차별은 알듯 모를 듯 나타난다. 왼손잡이의 왼쪽에서 급식을 먹으면 다른 친구들이 불편할 거라는 선생님은 길고 긴 식탁의 왼쪽 끝을 나의 고정석으로 지정해주었다. 매월 자리를 바꾸는 날에도 왼쪽 줄에만 앉을 수 있었다. 어느 짝꿍이든 간에 왼손으로 필기하는 나를 신기하게 쳐다봤다. 또, 물건을 받는 왼손에는 '싸가지'가 없다며 오른손으로 주고받기 연습을 시켰더랬다.


뒤늦은 개조는 때가 늦어진 만큼 쉽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하에 강력한 물리력을 동원하여 철저하게 이뤄진다. 연필에 꼽아 쓰는 왼손잡이를 위한 교정 고무를 써서 공책 몇 쪽에 단어들을 계속 쓰게 한다. 미관상 좋아질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집에서와 마찬가지로 학교 급식을 먹을 때도 절대 왼손을 들지 못하게 하는데, 젓가락질이 익숙하지 않아 반찬을 떨어트리면 야단맞기 십상이다.



지금에서 내가 당한 것만 이 정도이다. 모르는 것도 있을 거라 생각해보면 도대체 왼손이든 오른손이든 무슨 상관인가 싶다. 나이가 들며 개조는 점차 줄어들었지만 어딜 가서 무얼 작성할 때에 등 뒤가 따가운 것은 사실이지만 종종 살아남은 왼손잡이들이 있다. 나는 스스로 그들을 '왼손 생존자’라고 칭하는데, 같은 차별과 개조를 버티어 냈을 그의 왼손을 바라보면 동질의 연대심과 함께 뜨거운 저항심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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