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를 물어보면 '말하면 뭐하냐'라며 운을 띄운다.

#다섯 식구 연대기-3

by 모래의 여자

이때 당시 나의 아빠는 이상하게 밖으로만 돌아다녔다. 어린 내가 이렇게 아는 정도면 어땠을지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인데, 판잣집과 화장실에도 없고 가게엔 당연히 없었다.


분명 그 자리에서 가정에 대해 책임을 다해야 할 사람이 어디론가 사라진다. 게다가 한번 나가면 늦은 밤에나 돌아오니 우리 집의 육아와 살림, 가게는 모두 엄마의 몫이었고 종종 뒷모습을 바라보면 그 고생길을 우리 셋의 손을 잡고 겨우 걸어왔을 한 여자의 몸엔 세상의 모든 이야기가 섞여 있는 듯했다. 그때를 물어보면 '말하면 뭐하냐...'라며 운을 띄운다.


자리에 없던 아빠는 친구인 순경이 아저씨, 별칭 '산마을 사장님'과 그렇게 놀러 다녔더랬다. 우리 집의 큰 재산인 파란색 1톤 포터를 끌고 봄에는 꽃과 여름에는 바다, 가을은 단풍과 겨울은 설산을 구경하러 온 곳을 헤집고 다녔다. 당연히 그곳에 우리 가족은 없었고, 그때 당시 나에게 아빠는 먼 존재였다.




무지개 슈퍼는 작은 사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건물의 층수는 3층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우리 점포는 그곳의 1층을 임대하여 운영했더랬다. 나는 같은 건물의 3층에서 운영하던 유치원을 다니고 있었다. 집은 건물의 바로 뒤쪽으로 이어지는 골목길을 안쪽에 있던 파란 쇠문의 판잣집이었고 당연하리만큼 이 곳도 세 들어 사는 집이었는다.


쇠문을 열고 들어가면 작은 마당이 있었다. 그곳에는 수도가 있어 세면장 겸 부엌으로 사용했고 우리 가족은 쪼그려 앉아 세수를 했다. 물을 틀면 아기 오줌 나오듯 물발이 약해 겨울이 되면 수도관은 쉽게 얼어붙어서 아빠는 토치를 들고 겨우 녹였지만 금세 또 얼어붙었다. 아빠가 없는 날엔 큰형이 녹였더랬다.




판잣집은 정말 좁았다. 방한칸에는 텔레비전과 옷장, 서랍 이렇게 딱 세가지만 있었고 그것들은 작은 방에 맞춤으로 나온 것인지 하나같이 작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화장실이었다. 지금은 거의 흔적조차 볼 수 없는 재래식이었는데, 여기서 재래식이라는 뜻은 완벽하게 옛날 방식이라는 것이다. 쉽게 말해 하수도를 통해 내려가는 요즘의 방식이 아닌 그냥 밑에 쌓아두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집엔 종종 '똥차'가 왔었고 크고 굵은 고무호스를 통해 그것을 빨아들였다. 겨울이 되면 마당의 수도관은 꽝꽝 얼어도 독기가 한 곳에 모인 그것은 얼지 않았다. 그리고 이 장소에는 시쳇말로 '웃픈' 우리 가족의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나의 일란성쌍둥이가 밑에 빠진 것이다.




요즘은 잘 쓰지 않지만, 화장실을 간 일행이 오지 않으면 '싸다 밑에 빠졌나?'라는 이제는 그냥 농담처럼 들리는 말이 있었다. 하지만 어린 그는 진짜로 빠졌더랬다. 아마 점심쯤이었을 것이다. 잠시 점심을 차려주려고 온 엄마는 한 명은 어디 갔냐며 물었고, 큰형과 나는 모르겠다고 했다. 큰형은 엄마에게 그 잠깐 동안 동생들도 못 챙기냐며 크게 혼났는데, 나는 옆에서 펑펑 울었다.


그렇게 한참을 찾던 중 쌍둥이는 화장실의 밑에서 발견되었고 왜 소리치거나 울지 않았냐고 물어보는 엄마의 물음에 '너무 컴컴하고 무서워 소리 칠 수 조차 없었다.'라고 했다. 엄마는 우리 셋을 껴안고 울었고, 그 품에서 우리도 같이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