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식구 연대기-2
내가 태어난 곳은 인천광역시 남구 주안에 위치한 주안 산부인과였다고 하는데 지금은 없어졌다고 한다. 그곳에서 나는 삼 형제 중 막내이자 일란성쌍둥이로 태어났다. 날짜는 1989년 07월 30일, 여름의 새벽녘에 태어났다. 종종 땀이 왜 많은지 생각해보면 아마 태어난 계절 속에서 그 의미를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송 씨 집안의 차녀이며, 나의 어머니이자, 이름 속에 아름다운 꽃이라는 뜻을 품은, 그리고 이름만큼 아름다운 송미화 여사님은 쌍둥이인 우릴 보곤 깜짝 놀랐다고 한다. 분명 초음파 검사를 할 땐 한 명만 보이고 분명하게 딸이었다고 의사가 말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낳고 보니 쌍둥이에 게다가 튼실한 울음소리를 내뱉는 두 아들이니 그런 우리 둘을 보며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도 기가 찼다고 한다.
주민등록상의 생일은 1989년 08월 30일이다. 그때에도 낳은지 별로 안돼서 죽는 아이들이 종종 있으므로 한 달 정도는 상태를 보아야 한다고, 외할머니가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래서 한 달의 텀이 있는데 종종 엄마는 나에게 "넌 생일이 두 번이야."라고 이야기한다. 그럼 난 이렇게 대꾸한다. "엄마가 낳은 날이 7월 30일이고, 사회로 태어난 날이 8월 30일이지." 어쨌거나 생일이 두 번이라는 말은 옳은 말인듯하다.
나의 기억이 시작하는 내 어린 시절은 유치원부터이다. 인천광역시의 주안 어디쯤에서 우리 부모님은 슈퍼마켓을 하셨었다. 그전에 내 아버지는 형제지간이신 둘째 큰아버지가 하시는 선반 공장에서 동업을 하셨다고 했다.
하지만 덜컥 태어난 우리 둘과 원래 있던 나와는 세 살 터울의 큰형을 보곤 기겁해 장사의 길로 빠졌다고 하는데, 또 다른 이유는 둘째 큰아버지가 월급을 자주 미루더라고 했다.
어느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자식 셋을 키워야 하는 입장에 월급이 밀리면 그땐 형제고 뭐고 없을 것이다. 그렇게 대판 싸우고 그만두셨다고 한다. 집에만 들어가면 세 명의 작은 입들이 짹짹 거리는 것을 보면 그때 아빠는 어떤 생각이 들었을지 난 상상하기 힘들다.
하지만 아빠의 의욕이 좀 지지부진했던지 엄마의 진두지휘 아래 초등학교 정문 앞에서 리어카를 끌어와 와플을 팔았다고 하는데, 지금도 가끔 우스갯소리로 와플 반죽의 비율을 물어보면 "해줄까?"라고 당당히 이야기한다.
그렇게 시작된 장사는 어느덧 슈퍼마켓으로 이어졌고 가게의 상호는 '무지개 슈퍼'였다. 사거리의 한쪽 코너에 있던 이 무지개 슈퍼가 내 기억의 시작이자 유치원 시절이었고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우리 아빠가 정신을 못 차리던 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