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꿈을 이룬 아이

어쨌든 이루었어.

by 명태

나는 돌잡이 때 연필을 잡았다. 공부를 잘하겠거니 하는 부모님의 기대는 져버렸지만,

그 돌잡이가 완전히 틀려먹진 않았나 보다.


초등학교 때는 학교의 단상이 그렇게 높아 보였다.

학업 우수상을 받는 아이들은 교장 선생님과 악수하고, 손에 파란 커버가 덧씌워진 상장을 들고 내려왔다.

단상의 불빛은 스포트라이트처럼 아이들을 비추었고, 부러운 눈빛만 보내면서

그 스포트라이트가 비추는 단상 위로 올라가는 것이 꿈이 되었다.


꿈은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그 작은 꿈은 교내 글쓰기 대회 덕분에 금방 이룰 수 있게 되었다.

이름이 호명될 때부터 단상에 올라갈 때까지 받은 사람들의 눈빛과 박수, 그리고 단상의 스포트라이트는

마치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아, 이거구나. 이게 내 길이구나’

그날 단상에서 받았던 느낌은 잊을 수 없었다.

남들보다 높은 역량을 발휘할 곳이 생긴 건 처음이었기에 백지들을 금방 빼곡하게 채웠다.

상장과 칭찬을 목표로 삼은 백지는 단 한 번의 검토나 퇴고 없이도 확실한 성과를 가져왔다.

동시에 손에 들어오는 상장과 귀에 들려오는 칭찬이 쌓일수록 점점 오만해졌다.

이 오만함이 무슨 결과를 가져올지 그때는 몰랐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는 손에 들어오는 상장이 급격히 줄어들고,

높은 기대를 안고 참가한 교외 글쓰기 대회에서 낮은 순위의 상장을 받으면서

자존심은 바닥을 치고 지하로 떨어졌다.


어린 마음에 응석처럼 부린 오만함은 눈물로 씻겨나갔고, 백지 대신 교과서에 머리를 박았다.

부모님은 상장보다 성적표에 찍힌 점수에만 관심이 있어 학업을 게을리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학업은 검토나 퇴고 없이 상장을 몰고 왔던 글쓰기와 다른 노력을 요구했기에 금방 포기하고 말았다.

높아질 기미가 없는 성적과 상장 없는 글쓰기는 불안감만 끌고 왔다.

‘무엇 하나 잘하는 것이 없다’라며 스스로를 몰아세우고, 자기혐오에 빠져 학업조차 놓아버리고

현실과 동떨어진 게임에 눈과 귀를 묻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들어갔을 때는 온통 새로운 것 투성이었다.

새로운 학교, 새로운 친구, 새로운 선생님, 새로운 환경.

그리고 이 모든 게 새로운 출발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시 글쓰기를 시작한 건 국어 교과서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미하엘 엔데의 <모모>를 읽고 난 뒤였다.

국어 교과서에서는 ‘모모’라는 아이가 마을 사람의 고민을 작은 귀로 열심히 들어주며 고민을 함께해 준다는 내용으로 책을 소개하고 있었다.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국어 수업이 끝난 뒤 도서관으로 찾아가 <모모>를 대출해 읽었다.

꽤 긴 내용이었음에도 술술 읽히는 것이 신기해 이때부터 독서에 흥미를 느꼈고,

이후 수필과 소설을 여러 권 읽으며 책과 친해졌다.

동시에 글쓰기를 향한 열망도 커져서 다시 백지를 꺼냈다.


남들과는 다른, 더 뛰어난 글을 쓰기 위해 학업을 제쳐두고서 글쓰기에 온 힘을 다했다.

완성된 글을 여러 번 곱씹어보고 완전히 엎어보기도 하면서,

이 노력을 인정받고 싶어서,

남들에게 나만의 재능을 인정받고 싶어서, 절박하게 교내대회에 매달렸다.


그러다 교내대회 마감일을 착각하고 글을 과도하게 수정하다 제출조차 하지 못한 일이 있었다.

그제야 자리를 굳건히 지키던 오만함과 최우수상을 위한 열망이 그 백지를 더럽혔음을 깨달았다.


초등학교의 끝과 같이 또 한 번 ‘실패자’로 끝난 중학교 생활은 만신창이가 된 마음과 성적표로 마무리됐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고도 오만과 열망을 버릴 자존심은 없었기에 글쓰기는 내려놓고 학업에만 집중했다.


글을 업으로 삼고 싶었던 어린 꿈도 내려놓고,

미래를 책임져줄 현실적인 직업을 찾아 간호학, 행정학, 사회복지와 관련된 수업이나

공동교육과정을 찾아들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글쓰기가 그리워졌다.


고등학교 2학년을 마무리하고도 마땅한 진로 탐색 없이 대학입시에 발을 들였다.

성적은 저공비행으로 간신히 바닥을 면하고 있었기에,

갈 곳 없는 자존심을 꺼내와 마지막 희망으로 불태웠다.


직업 희망란에 작가를 써넣고, 오만과 열망을 버리는 연습을 했다.

글이 마음에 들지 않아 전부 엎어버리는 일은 없어졌고, 기대했던 만큼 좋은 결과를 받지 못해도

그 모든 것이 잘못되었다고 자책하지는 않게 되었다.

손에 들어오는 상장이나 칭찬 없이도 글이 좋다는 생각 하나로,

대학교 원서 대부분을 같은 학과로 적어서 냈다.


“나중에 대학 나와서 뭐 먹고살려고?”

“알바라도 하면서 살게”

주변 어른들이 얼마나 걱정을 하던지, 없던 걱정마저 생길 지경이었다.

단 1년 만이라도 내가 사랑했던 것을 되새김질하고 싶었기에

어른들의 근심은 전부 버려두고 대학 합격의 순간을 즐겼다.


졸업한 학과에 맞추어 진로를 나가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설령 대학 생활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재수나 편입의 길은 열려있기에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물론 대학원에 온 지금도. 그 선택만큼은 후회하지 않는다.

대학교는 여태 겪어왔던 학교와 완전히 달랐다.


50분 수업, 10분 쉬는 시간으로 이루어진 중, 고등학교 시간표가 닭장같이 느껴질 만큼 대학교는 자유롭다.

생기부를 목적으로 하는 동아리 활동 대신, 한 분야에 관심을 두고 열정으로 뭉쳐진 동아리들이 있으며,

국영수가 아닌 흥미 있는 분야를 심도 있게 배울 수 있는 강의들이 있고, 다양한 사람과 교수님이 계신다.


10년이 지나든, 30년이 지나든 이 대학, 이 학과를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곳에서 이루고 싶은 꿈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취미로 시작한 글쓰기 동아리에서 글을 연마하고,

넓은 세상에 글을 내보이고,

공저로 책도 내보는 경험도 해보고….


수능을 끝내고 고사장을 나오는 나에게, “너는 나중에 네 꿈을 이룰 거야”라고 말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상장과 칭찬을 목표로 글을 쓰던 아이가, 유의미한 성과까지 내놓는 지경에 이르렀다면, 얼마나 놀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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