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소설 - <염소는 힘이세다>를 읽고

작품 속 문장에 관한 개인적인 소고.

by Prosh 사회인

염소는 힘이 세다. 그러나 염소는 며칠 전에 죽었다. 이제 우리 집에 힘센 것은 하나도 없다. 힘센 것은 모두 우리 집의 밖에 있다. 아저씨는 우리 집의 밖에서 살고 있다. 따라서 아저씨는 힘이 세다. 힘이 약한 사람은 힘이 센 사람에게 복종할 수밖에 없다.

- 김승옥. <염소는 힘이 세다> 中.


작가의 말

최근 평론가 이동진 씨가 유튜브에서 선정한 한국문학 작품 중 하나 김승옥의 <염소는 힘이 세다>(이하 염소)를 꼽았다.


이전에도 브런치에 썼지만, 김승옥은 자본주의를 극도로 혐오하는 것 같다.

작중에서, 죽은 염소가 살아있는 가족들보다 강하다는 말을 한다. 왜냐하면, 죽은 염소는 염소탕이 되어서 강한 사람들을 자신들의 염소탕 가게에 불러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죽은' 염소가 '살아있는' 가족들보다 힘이 센 이유는 '금전적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자본주의 세상에서 '가난한 가족'은 돈을 못 벌어서 '살아있음'이 부정당하고(약하고), '죽은 염소'는 자신의 죽음으로 돈을 벌기 때문에, 죽었지만 '강하다'.


테리 이글턴은 “초기 산업자본주의의 냉담한 규율들은 모든 공동체를 뿌리째 뽑고 인간의 삶을 임금노예상태로 변화시키며 소외를 야기하는 노동과정을 새로이 형성된 노동계급에 강요하고 공개시장에 내놓을 상품으로 전환될 수 없는 것은 이해하려들지 않는다.”1)라고 말했다.

<염소>에서 염소의 죽음이 상품화된 이유는 인간의 삶이 “임금노예상태로 변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죽음이 죽음의 형태로 끝나지 못하게 되고, 오히려 죽음이 누군가의 가난을 벗어나기 위한 수단으로써 즉, 상품화되어 희롱당했다. 김승옥은 이 희롱의 근본적인 원인을 '자본주의'로 본 것이다.

ー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다. 내 의견이 부정당해도 상관없지만, 만약 당신이 김승옥의 다른 작품들을 읽었을 때, 김 작가가 가진 자본주의에 대한 혐오는 쉽게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 나는 이 말을 좋아한다: “초기 산업자본주의의 냉담한 규율들은 (중략) 공개시장에 내놓을 상품으로 전환될 수 없는 것은 이해하려들지 않는다.”

ー 대표적으로 회화 예술은 자본주의가 들어서면서, 더 이상 심미적인 평가 주가 되지 않고, 오히려 '얼마인지'가 더 중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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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테리 이글턴. (2002). <문학이론입문>(역, 김명환•정남영•장남수). 창작과 비평. p.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