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명태 Apr 19. 2024

우리 집안은 '완벽'하다고 믿었어요

제삼자, 첫째 딸의 관점으로

씨 성을 지닌 우리 집안에 태어난 저는 딸내미입니다.

아빠도 첫째 아들, 엄마도 첫째 딸.

저는 그들의 딸로 태어난 큼 집안 어른들에게 애교 부리며 사랑받는 삶을 살았습니다.

잔뜩 사랑받고 자란 저는 집안 어른들이 를 사랑하는 만큼 서로를 열렬히 사랑하고, 백년해로하며 

제가 늙어 죽는 날까지 행복 거라 믿었습니다.     


그런데 절대, 완벽이라는 단어는 오로지 단어로만 있네요.

저는 생각지도 못하게 ‘이혼’을 제삼자의 입장에서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결혼과 이혼, 육아와 헌신, 노후와 죽음.

옛날 어른들이 생각하는 삶의 지표는 고정된 환상을 심어둔 것 같아요.

'이혼'도 가정이 파탄 나는 나쁜 행동이기에, 남들이 꾸짖어도 고개를 들 수 없는일이라 생각했습니다.      


시대가 변하고, 가치관이 바뀌면서 사람도 변했습니다. 기존 지표는 유효하지 않기에

더는 ‘이혼’이 죄악시되지 않습니다.


결혼처럼 이혼도 개인 간의 존중으로 이루어집니다.

이혼하더라도 정말 가정이 '와장창' 파탄 나거나,

사람들이 우려하는 것만큼 큰일이 일어나지는 않았습니다

적어도 제가 봐왔던 이혼만큼은요.


그래서 이혼에 대한 생각도 고쳐보게 되었습니다

이혼이 그렇게 ‘대단한’, ‘큰’, ‘엄청난’, ‘부정적인’ 일은 아니라고,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를 보면서,

바다 이모와 산 이모부를 보면서,

그 모든 일을 지켜보고 입에 올리는 집안 어른들을 보며 그렇게 고쳐먹었습니다.      


그들이 입에 올리는 이야기는 부정적이지 않습니다.

심지어 그 당사자도 지금은 울거나 화내지 않아요.

그래서 그 주변 사람들이 눈썹을 세우고 혀를 움직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글을 쓰는 저에 대해 궁금하시겠네요.

저 역시 그 집안사람의 한 명으로서,

이제 어엿한 그 집안의 어른으로서,

아직 경험할 게 많은 사회초년생으로서, 

제삼자의 관점으로 숟가락은 얹지 않고,

제 소중한 가족들을 바라보려고 합니다.


제 글에는 꽤 많은 사람이 등장할 예정입니다.

이혼을 경험하신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나오고,

바다 이모와 산 이모부가 등장하고,

함께 그 일을 목도한 집안사람이 나옵니다.     


글의 뒤편에는 저의 훌륭하신 어머니와 아버지도 나옵니다. 

들이 홧김에‘이혼’을 이야기할 때면 심장이 하늘을 치고 땅으로 내려앉지만요.


어쩌면 우리 집안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것은 와 가장 가까운, 

혹은 제가 나중에 겪을 일들을 준비하는 과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어릴 적 믿었던 환상은 하나의 완벽주의였을지 모릅니다.

구시대 환상에 맞추어 나간 저의 꿈은 부서졌지만, 그래도 괜찮습니다.


절대라는 것은, 완벽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고

단순히 우리 집안이 ‘완벽’할 거라 믿었던 것은 어린 마음이었으니까요.

어엿한 집안 어른이 된 지금은 전혀 다른 생각을

만들어 나가는 중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