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틀에 감사하며, One Million Moons Asia Tour
지난 11월 8일, 서울로 걸음을 옮겼다. 여행으로도 서울은 안 가는데, 안 갈 수가 없었다.
동서울 버스터미널에서 내려 2호선을 타고, 다시 7호선을 타고 어린이대공원 역에서 하차했다. 6번 출구로 나오니 세종대학교 대양홀이 눈을 반겼다. 네 개의 현수막에는 일본 인디밴드 'Mili'의 첫 내한 콘서트 「One Million Moons Asia Tour」가 새겨져 있었다. 설렘을 가득 안고 콘서트 티켓을 팔찌로 교환했다.
Mili를 알게 된 건 초등학교 2학년때였다. 내 또래들보다 빨리 스마트폰을 갖게 되었고, 컴퓨터로 게임을 하는 버릇이 있다 보니, 제일 먼저 'Deemo'라는 리듬게임을 다운로드하게 되었다. Mili는 그 게임에 곡을 투고한 인디밴드였는데, 보컬의 감미로운 목소리와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 그와 대비되는 가사가 심금을 울렸다. 그때부터 Mili의 유튜브를 구독하고, 그들의 곡을 사랑하게 되었다.
Mili의 큰 특징은 '일본 인디밴드'임에도 불구하고 노래의 가사가 대부분 영어인 점이다. 일본어보다는 영어가 귀에 익었다 보니, 이 특징은 Mili에 더욱 빠져들게 만들었다. Deemo, Cytus를 비롯한 리듬게임과, Mili의 오리지널 앨범, Ender Lilies 같은 메트로베니아류 게임, 일본 애니메이션의 오프닝과 엔딩곡, 국산게임 라이브러리 오브 루이나와 림버스 컴퍼니. Mili를 따라다닌 시간은 10년을 넘겼다.
이 10년의 시간은 한국에서 Mili를 목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첫 티켓팅의 불안은 2층 뒷열을 거머쥐게 만들었다. 1층 앞열에 앉고 싶은 열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티켓팅은 Mili Patreon 유료 멤버십 회원에 한해 선예매를 진행했는데, 이 선예매를 통해 티켓팅을 시도했지만 아쉽게 2층에 앉게 되었다. 다만 선예매 전용 좌석이 20초 만에 매진되고, 본예매는 10초 만에 매진되는 광경을 보며 오히려 안심했다. 게임 림버스 컴퍼니와의 콜라보 콘서트에 가까웠기 때문에 그 팬층의 열기를 실감했다.
콘서트가 시작되기 30분 전에 입장했는데 이때부터 콘서트가 끝날 때까지 무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눈으로 모든 순간을 담고 싶었는데, 첫 곡이 연주되는 순간 흐르는 눈물을 닦기가 벅찼다. 옆에 앉은 사람이 카메라에 집중한 게 고마울 정도였다.
2025년은 나에게 정말 고난이었다. 이 이야기는 차후 풀어갈지도 모르지만, 사람과 일에 치어 살았다. 첫 곡이 흘러나오는 순간 겪어온 역경이 납득될 정도였다. 실제로 이 콘서트를 보기 위해 버텼던 한 해였는데, 그 순간이 너무 감동스러운 나머지 애처럼 울었다.
첫곡 중반쯤에 눈물은 그쳤고, 다시 눈을 열었다. 「One Million Moons Asia Tour」를 관람하면서 가장 좋았던 건 무대효과였다. 레이저와 연기, 보컬을 비춘 카메라 줌인이 환상적이었다. 연주되는 음악에 맞춰 배경의 색과 레이저의 패턴이 변했는데, 멋모르지만 '연출이 참 괜찮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다만 아쉬웠던 건 두 번 정도 마이크가 작동하지 않아 보컬의 목소리가 끊기거나, 스피커의 음질 자체가 나빴다는 점이다. 아무렴, 그래도 좋았다. 10년 동안 좋아한 밴드가 눈앞에 있으니 그저 좋았다는 말 밖에 안 나왔다.
생애 첫 콘서트를 관람한 이후, 행운은 한 가지 더 있었다. 티켓팅 이후 림버스 컴퍼니의 제작사 '프로젝트 문'의 테마카페 '햄햄팡팡'에서 150명 한정 Mili 사인회를 개최한다는 공지를 올렸다. 이 공지를 보며 심박수가 엄청 올랐다. 캐치테이블 어플을 켜고 손가락을 벌벌 떨면서 행운의 150인이 되길 빌었다. 오전 11시, 오후 12시, 오후 1시. 시간별로 50명씩 신청이 가능했다.
오전 11시를 선택했다.
[예약이 마감되었습니다]
머리를 싸맬 1초를 아껴 오후 12시를 선택했다.
화면이 결제창으로 넘어간다.
하필 정지된 카드가 등록되어 있다.
계좌이체라도 해야겠는데. 만약 계좌이체가 늦어지면 무산되는 건가?
어? 입금 됐는데?
어? 되나?
어!
[예약이 완료되었습니다]
아!
놀랍게도 행운의 150명 중 1명이 되었다. 입이 귀에 걸린다는 표현은 여기서 쓸 수 있겠다.
콘서트 다음날에 햄햄팡팡이 있는 수원 광교로 향했다. 생애 처음 신분당선을 타면서 마음을 얼마나 졸였는지 모르겠다.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지만 그래도 좋았다. 눈에 마음껏 담아가야지, 하는 마음으로 추위와 떨림에 그렇게나 떨었다.
햄햄팡팡에 들어가고, 맨 처음으로 기타리스트 Yamato Kasai를 만났다. 일본어로 '안녕하세요'를 까먹는 바람에 입을 떼지 못했는데, 먼저 한국어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네주셔서 '아리가또 고자이마스'를 연발했다. 그다음으로 베이시스트 Yukihito Mitomo에게도, 드러머 Shoto Yoshida에게도 '아리가또 고자이마스'만 전했다. 이때 처음으로 일본어를 공부하지 않은 걸 후회했다.
마지막으로, 나의 최애 보컬 Cassie Wei를 만났다. Cassie는 웃으면서 '안녕하세요'라고 말했고, 굳어진 입을 겨우 떼서 '안녕하세요'라고 말했다. Cassie가 사인을 할 동안, 내가 말해야 하는 문장은 두 가지였다.
"I've known Mili since Deemo, and it was nice to see Mili's concert yesterday"
"디모때부터 밀리를 알게 되었고, 어제 콘서트를 보게 되어 좋았습니다"
"It's an honor to be in the same era as Mili"
"Mili와 동시대를 함께할 수 있어 영광입니다"
몇 번이나 입 밖으로 꺼내 연습한 문장이었는데, 첫 번째 문장만 전할 수 있었다. Cassie 옆에 있던 Shoto는 'oh deemo, '라고 말했고, Cassie는 "Thank very much"와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두 번째 문장을 전하지 못한 게 정말 아쉬웠지만 빠른 진행을 위해 경호원의 안내를 받고 퇴장할 수밖에 없었다. 사인을 품에 꼭 안고 집으로 가는 길에는 울지 않았다. 아, 정말 좋았다. 그 생각뿐이었다.
두 번째 문장은 다음 기회에 전하기로 했다. 사전에 햄햄팡팡 직원분께 Mili를 향한 편지를 전달했고, 그 안에 나의 마음이 있으니 잘 전달되었을 거라 생각한다.
나쁜 올해에 참 좋은 기회가 주어졌고, 행복한 이틀이 지나갔다. 이 기억으로 몇백 년을 살아야겠다. 좀 더 용기가 생긴다면, 일본에 직접 가서 Mili를 바라보고 싶다.
p.s. 다음 내한은 Mili 오리지널 앨범으로 돌아오길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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