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2. 05 ~ 08. 해외 이육사 문학제(in 도쿄)
재작년까지(2024) 이동 반경은 태어난 곳에서 100km를 벗어나지 않았다. 같은 지역의 초중고, 옆동네의 대학교. 사람 많은 곳이 싫어, 촌동네에서 도시로 이동해야 한다는 강박도 느끼지 못했다. 이대로 여기서 살다가 죽어도, 그냥 죽었겠구나 싶었다.
앞의 생각을 버린 건 작년(2025) 말이었다. 떠남을 강요받았다. 익숙한 공간에서 기준선을 넘나드는 스트레스는 머리를 쥐어뜯게 만들고, 무언가를 부수고 싶다는 열망을 불렀다. 시간은 떠남을 허락하지 않았고, 지갑 사정이 떠남을 허락했을 때 홀로 대구로 가는 버스를 탔다. 일은 해야 했어서 폰은 항상 귀에 있었고, 쉴 새 없이 통화해야 했지만 몸은 거기 없었으니까 좀 나았다.
13만 원이라는 거금을 지불하고 누운 료칸형 숙소는 포근했다. 두껍고 바스락거리는 이불속에서 한 곳에 썩어 죽는 게 얼마나 미련한 일인지 깨달았다. 발이 닿는 대로, 무계획으로 떠났던 대구여행은 그렇게도 좋았다.
막 홀로 여행 다니는 꿈을 안았어서, 해외여행은 꿈꾸지도 않았었지만 기회는 갑자기 찾아왔다. 도쿄대학교에서 개최되는 '해외 이육사 문학제'의 참여자 신분으로 일본에 갈 일이 생겼었다. 시인 '이육사'를 주제로 발표 자료를 만들고, 팀원들과 발표 연습을 하면서 첫 해외여행을 전액 무료로 다녀온다는 사실에 들떴었다.
대학교에서 단체 버스를 타고 인천공항까지 갔어야 했기에, 출발은 새벽 3시 30분이었다. 눈 감았다 뜨니 인천공항에 있었고, 비행기 탑승까지도 눈 깜짝할세 이루어졌다. 비행기가 이륙하는 기분은 어땠던가, 생각보다 무섭진 않았고 심하게 흔들리는 기차 정도의 느낌이었다. 나리타 공항에 내려서 단체 버스를 타고 도쿄로 향했다.
아무래도 그냥 '여행'이 아닌, '해외 이육사 문학제'를 참여하러 온 것이라 일정은 굉장히 빡빡했다.
3박 4일 동안 도쿄대학 혼고 캠퍼스, 고마바 캠퍼스, 간다쿠 킨죠우 고등예비학교, 도쿄 세이소쿠예비학교, 2.8 독립선언 기념관을 방문했다. 이틀차에 팀원과 함께 준비한 이육사 시인의 자료를 발표하였다.
몰아치는 일정에서 바라본 일본 도쿄는 서울과 다른 느낌이 없었다. 사람은 발에 치일 정도로 많고, 건물은 높았으며 밤에도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밝았다. 다만 귀에 들리지 않는 차 클락션 소리와 불법 주차가 없는 거리는 부러웠다. SNS와 유튜브에서 바라본 것과 직접 실감하는 건 확실히 틀렸다. 낯선 곳에서 숨을 쉬고 일행들을 쫓아가기에 바빴지만 첫 해외여행인 만큼 설레었던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3박 4일 동안 주어진 자유시간은 3일 차 오후의 4시간 남짓이었다. 음식은 확실히 입에 안 맞았다. 무엇이든 짜게 느껴졌고, 좁은 돈키호테 매장을 행진하며 집은 것은 몇 개 안 됐다. 단체이다 보니 그러려니 했다.
또다시 눈을 떴을 때는 한국으로 돌아와 있었다. 지친 몸이었지만 버스에서 잠들지 못하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온통 검은색에 고속도로 가로등만 제 빛을 내고 있었다. 평생 썩을 것 같은 곳에서, 평생 타보지 않은 이동수단에 몸을 맡긴 경험은 날것이지만 그 이후를 생각해 볼 여지를 남겼다. 한번 경험해 봤으니 두 번은 그렇게 어렵지 않을 거다. 첫 번째보다는 환전을 많이 해야겠고, 좀 더 많은 정보와 안전에 유의한다면 다음 시도도 얼마든지 좋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발은 예전보다 조금 가벼워졌고, 손은 가볍게 하되 마음은 무겁게 지고 나가는 편이 좋겠다.
그 100km 밖으로 나아가지 못했던 이유는 그저 '안되니까'라는 막연한 생각 때문이었다. 돈과 시간이 없어서, 위험하니까, 무서우니까, 익숙한 것이 편하니까. 이 방해물들을 치우는데 무려 대학교 4학년이라는 타이틀이 필요했다. 기회가 없었던 것도 아닌데 앞에서 치워버린 것들이 이제야 아쉬울 따름이다. 언젠가 또 머리를 쥐어뜯는 날이 온다면 떠나버려야겠다. 대신 사람이 적은 곳으로. 조용하고 낯설며 정적인 곳을 찾게 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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