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여자친구는 일본에 살고 있다. 그녀의 집은 도쿄에서 차로 약 5시간 거리, 오사카에서는 약 2시간 거리 그리고 나고야에서는 약 1시간 반 거리에 있는 히코네에 살고 있다. 내가 그녀를 보러 갈 때, 항상 간사이 공항에 내려서 지하철을 타고 교토에서 환승해야지, 그녀의 집 근처인 히코네 역 앞에 도착할 수 있다.
간사이 공항에서 히코네까지는 왕복 약 6000엔 정도다. 역시 일본이라 지하철 비용이 너무 비싸다. 하여튼, 몇 번 가본 그녀의 집은 나에게 친숙한 도시이기 때문에 이 정도 비용은 친숙함을 위한 의미 있는 지출이라고 생각한다. 친숙함은 내가 잠시 이곳의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을 만들어주면서 여행의 즐거움과 더불어 많은 의미를 주는 아주 중요한 감정이니까.
히코네 역에 도착한 나는 우선 슈트케이스와 함께 엘리베이터에 탑승한다. 플랫폼에서 개찰구가 있는 쪽으로 올라간다. 엘리베이터가 “띵” 소리를 내며 도착했다는 신호를 보내면, 나는 종이 티켓을 찾기 위해 주머니를 뒤적거리며 ‘표가 어디 있지?’라는 생각을 잠깐 해야 된다. 그런 다음 종이 티켓을 개찰구의 표 넣은 곳에 넣고 통과한 뒤 슈트케이스와 함께 몸을 빠져나와야 한다.
다른 지하철역 같으면, 단순히 어딘가를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이동 과정에 불과하지만, 히코네역은 다르다. 왜냐하면, 그곳은 나에게 있어서 또 하나의 입국 심사장이기 때문이다. 만일 내가 티켓을 잃어버리거나, 역 안에서 불상사가 일어난다면, 친숙함은 주어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히코네역에서 심사받아서 역 밖으로 작업은 나에게 아주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내가 역에서 나가는 행동들 하나하나를 다 생각하면서 나갈 수밖에 없다.
이동하면서, 슈트케이스의 바퀴가 부러지지도 않았고, 종이 티켓을 잃어버리지도 않았고, 내 발목과 다리에 큰 이상도 없었기에 나는 큰 무리 없이 히코네역의 개찰구를 통과하여 에스컬레이터를 통해 내려갔다.
후끈거리는 여름의 더위와, 이글대는 아스팔트가 보일 정도로 햇빛은 강했다. 강한 햇빛에 잠시나마 에스컬레이터 아래에 빛 밖에 보이지 않았다. 선글라스는 내 슈트케이스 안에 있어서 꺼내지 못했지만, 다행히도 빛이 거둬지고 잠시 뒤에 눈앞에 마중 나온 여자친구가 보였다. 그녀의 코 옆에 미세하게 있는 팔자 주름은 ‘내 여자친구가 맞는구나.’라고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녀의 집으로 이동하면서, 우리는 평소와 같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잘 지내고 있었는지. 대학교로 언제 돌아가는지. 오늘 날씨는 왜 이렇게 더운지. 등― 그리고 그녀의 집 안으로 들어가면 일본의 가정집의 형태를 볼 수 있었다. 보통 한국 사람들이 일본의 가정집에 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나는 분리된 화장실과 욕실, 겨울에 사용하는 코타츠를 볼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았다. 히코네의 한 가정에 들어온 나는 히코네를 떠나기 전까지 히코네 사람으로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일본인이 됐다'. 라는 의미와 다르다.
이러한 생각은 가정(假定)에 불과하고, 내가 정말 히코네 사람이 돼서 한 일본인 가정(家庭)에 속해 가족이 된 건 아니지만, 여행이기 때문에 이러한 공상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짐을 풀고 나서 저녁 시간이 돼서 퇴근한 여자친구 어머님과 인사를 나누고 저녁을 먹은 뒤, 우리는 다음날 돌아가신 여자친구 할머니의 장례식을 아침 일찍 참석해야 해서 각자 일찍 침대로 가야 했다. 그렇게 침대로 가서 누웠다. 잠이 들기 전 내가 마지막으로 여자친구 할머니를 만났을 때 기억들을 더듬어 봤다. ―코 양옆 팔자 주름, 따스함, 친절함, 쿠난(苦難)1), 강아지.
*
우리는 아침 8시 반쯤에 집을 나와서 여자친구 어머님의 차를 타고 나와서 할머니 집으로 이동했다. 이동 시간은 대략 2시간 정도 걸렸다. 여자친구 할머니 집에 도착하기 십여 분 전 길은 상당히 좁은 고샅을 지나면, 주택가의 비좁은 1차선 비포장도로를 지난 뒤 비탈길을 올라가다 보면 이 차선 도로가 나온다. 그리고 조금만 더 앞으로 나아가면, 여자친구의 할머니 집이 나온다. 예전에도 이 길로 가서 할머니를 뵈러 갔지만, 가도 가도 적응되지 않는 길이다. ―적응되지 않았기에 히코네에 도착했을 때, 내 생각을 가정(假定)으로 둔 것 같다.
오랜만에 도착한 나는 집 안을 둘러보았다. 집 안에는 지난번에 보았던 활기 넘치는 말(馬) 그림은 있었지만, 꽃꽂이한 꽃과 여자친구 할머니는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없는 집은 참으로 공허해 보였다. 활기 넘치는 말은 더는 활기가 없어 보였고, 도리어 주인을 잃은 한 마리의 말이 하늘을 바라보며 체념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말 그림 뒤편 공간이 있는데, 우측에는 주방과 이어지는 복도와 문이 있다. 문 위에는 그녀의 사진이 걸러져 있었다. 그 영정 사진은 이젠 이 공간이 제 기능을 할 수 없다는 하나의 증서와도 같았다. ―그녀 없는 이곳은 황무지에 불과했다.
감상에 젖어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있을 무렵, 여자친구 친척들이 도착했다. 나는 서툰 일본어로 자기소개를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때 여자친구 할아버지도 별채에서 주방으로 와서 우리는 다 같이 이동을 했다.
제사를 지낸 곳은 여자친구 할머니 집 근처 작은 절이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이날 여자친구 가족과 친척들은 할머니의 백재(百齋)를 위해 모두 모였다. 절의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제사 지내는 곳에는 큰 불상과 화려함이 있었다. 나는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추모를 위한 염불인 것은 알고 있었다.
―염불에 뜻에는 "불경을 외다"라는 뜻과 "어떤 사물에 집착해서 자꾸 되씹어 말하다."라는 뜻이 있다. 전부 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추모를 위한 염불'이라고 파악한 나는 아마, 그녀를 마음속으로 곱씹고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 차례가 돼서 앞에 나와 묵념할 때 그녀를 다시 떠올렸기 때문이다.
―코 양옆 팔자 주름, 따스함, 친절함, 쿠난(苦難)1), 강아지.
그렇게 나는 그녀의 모든 것들을 떠올리며, 나만의 방식으로 그녀를 위한 염불하고 있었다.
*
제사를 마친 뒤 다시 여자친구 할머니 집으로 돌아왔다. 그곳에서 나는 키우고 있는 강아지 한 마리를 보았다. 여자친구가 말하기로는 원래 할머니가 살아 계실 때 털을 자르러 가려고 했으나, 할머니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셔서 자르지 못한 채로 지금까지 계속 있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삼촌분이 나와 여자친구에게 강아지의 털을 바리캉으로 다 밀어줄 수 있냐는 부탁을 받았고, 우리는 그 부탁을 승낙했다.
이날 삭발을 하기까지 강아지를 보았을 때, 이전에 봤을 때와 느낌이 다르다. 전에 봤을 때는 강아지도 말 그림처럼 생기가 넘쳤지만, 할머니가 돌아가신 걸 아는지 뭔가 축 늘어난 기분이었다. 강아지의 눈을 보았을 때 힘없고 슬퍼 보이는 눈이 나는 너무 안쓰러웠다. 자신의 주인이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알고 있다는 그 눈은 자신의 모든 감정을 빼앗긴 무상함 그 자체였다.
강아지의 무상함을 이해했을 때, 나는 너무 슬펐다. 왜냐하면, 할머니의 존재는 강아지가 살아갈 수 있는 이유이며 감정의 원천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녀가 이 세상에 없게 되자, 강아지는 자신이 존재해야 할 이유가 사라졌으며, 슬퍼하거나 기뻐하거나 분노할 수 있는 모든 감정들 또한 송두리째 빼앗겼다. 이러한 일이 인간에게 있었다면, 대부분 버티지 못하고 같이 죽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삭발을 마친 다음 여자친구와 나는 옷을 털은 다음, 시간이 늦어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어머님의 말씀을 들었다. 여자친구와 나는 강아지를 꼭 껴안고 차로 돌아갔다. 차로 돌아갈 때, 핸드폰을 강아지 집 있는 곳에 놔두고 와서 여자친구보고 먼저 돌아가라고 했다.
핸드폰을 찾아 돌아가려던 찰나에, 강아지는 “왕! 왕!” 짖었다.
나는 그를 꼭 껴안으며
“다음에도 꼭 올 게 그러니까 잘 있어야 돼.”
라고 말하며 차 안으로 돌아갔다.
차 안에서 여자친구와 잠시 눈이 마주쳤지만, 나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눈을 감았다. 그때 내 눈 안에서는 비통함이 방울방울 맺혀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비통함을 계속 가지고 있으면, 계속 비통할 수밖에 없으니 나는 그 방울을 놓아주었다.
비통함이 내 몸 밖으로 나가고서야, 여자친구 할머니의 죽음에 같이 슬퍼하고, 같이 위로하는 내 모습은 히코네 사람이 됐기 전에, 누군가에 상실과 슬픔에 공감할 수 있다는 그 사실이 나를 기쁘게 했다. 이러한 생각을 하고 나서 눈을 떠서 바깥을 바라보았을 때, 표지판에는 ‘HIKONE’이라고 쓰여있었다.
내가 히코네 사람이 되려는 이유, 유독 히코네시 여행을 고집했던 이유는 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있는 원천은 히코네시 안에, 즉 내 여자친구가 있었기에 가능했었다. 공감과 이해는 인간을 또 한 번 성장시킬 수 있는 원천 중 하나이다. 그러니 냉혈한(冷血漢)을 자처하지 말자. 냉혈한도 때가 되면 될 테니까.
Thanks for H.
강아지와 나
작가의 말
여자친구는 외국 대학에서 학기 중 할머니의 비보를 전해 들었다. 학기 중에 할머니 장례식을 가기에는 무리가 있어 안타깝게도 그녀는 장례식에 가지 못했다.
얼마 전 그녀에게 “장례식에 못 간 게 후회되지 않아?”라고 물었을 때, 그녀는 “아니, 나는 영안실에서 할머니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할머니는 내 가슴속에 있어.”라고 말했다.
여자친구 할머니의 스토리가 궁금하다면 아래 작품을 꼭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각주
1) 당시 여자친구 할머니가 나무 위 사람 모양이 무수히 많은 장식물을 보여줬다. 그녀는 나에게 이것이 쿠난(苦難)이라는 작품이라고 했다. 그리고 사람 모양이 정확히 97개가 있는데, 이것은 ‘큐쥬 나나’(97의 일본어 발음) 즉 쿠난을 의미한다고 했다. 그리고 인생은 고난의 연속이 이만큼 많이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