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루리 역 앞 소년과 나의 어린 시절

by Prosh 사회인

예전 나와 내 여자친구는 카오위(烤鱼, Grilled Fish)라는 중국식 생선요리를 좋아해서 즐겨 먹는다. 그리고 최근 sunway velocity에 내가 좋아하는 카오위 브랜드가 할인을 많이 해서 거의 매주마다 갔었다. 우리는 고정적으로 lingbo fish’s 칭화지아오(fresh peppercorn, 青花椒), 자색고구마 볼, 중국 당면, 밥•음료 무한리필을 시켜 먹는다. 다 합치면 가격은 세금 포함해서 약 108RM 정도, 보통 카오위만 108RM 정도에 먹는데 할인받아서 싸게 먹었다.

한 끼에 108RM이면, 데이트 식비 치고는 저렴했었고, 우리는 세일 기간을 놓칠 수 없었기에, 매주 주말마다 Maluri역으로 갔었다.

Maluri역에서 Sunway Velocity로 이동할 때는 햇빛이 너무 강했었다. 어느 정도의 햇빛이냐면, 출구로 이동하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이동할 때, 아주 잠깐이지만 내 눈에는 빛 밖에 보이지 않았다.

빛 때문에 눈이 부셨을 때, 출구에서 한 소년의 마인어인지 영어인지 모르겠는 언어가 내 귀에 들렸다. 그 순간 나는 현상을 보았다.ー자전거, 자전거 뒤쪽 상자, 상자 속 비닐 안의 손질된 여러 과일들, 그리고 자전거 뒤에 말레이시아 앳된 소년.

 우리는 소년을 무시하고 우리의 목적지로 이동했다. 애써 무시한 나와 내 여자친구의 등 뒤에서는 알 수 없는 언어가 계속 들려왔다. 우리는 그 언어가 영어인지 마인어인지 제3국에 언어인지는 전혀 모르지만, 자기 물건을 사달라는 소년의 외침이란 것은 알 수 있었다. 당시에 내 얼굴이 어땠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여자친구의 얼굴은 알 수 없는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날의 카오위와 사이드 요리의 맛은 언제나 그랬듯이 맛있었다. 다 합쳐서 나온 금액은 마찬가지로 108RM정도, 두 명에서 먹었으니 54RM 정도였다. 음식을 먹고 나서, 우리는 자주 가는 오락실에서 ‘마리오 카트’를 했다. 마리오 카트는 한 게임에 2RM, 두 명에서 3판씩 했으니 총 12RM 정도였다.

우리는 오후 7시 반쯤 집으로 가기 위해 Maluri역으로 돌아갔다. 역 앞에 도착하기 전, 멀리서부터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역 앞에 다다랐을 때, 소년은 아직도 있었다. 역 입구로 들어가기 직전, 논리적으로는 말도 안 되는 말이지만, 우리는 그 소년을 짧지만 아주 길게 쳐다보았다. 아직 다 팔리지 않은 과일, 자전거, 소년의 외침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외침은 강렬했고, 그의 눈동자는 어디도 바라보고 있지 않았으며 공허했다. 우리는 그날 이후에도 그 소년을 3번 더 마주쳤다. 그때마다 내 여자친구는 “마음이 너무 안 좋네.”라고 말했고, 나도 그 말에 공감했다.

앞서 말했지만, 우리가 먹은 카오위의 값은 108RM이었다. 4번 정도 먹었으니, 432RM 정도 됐을 것이다. 소년이 팔고 있는 과일은 아마 5~10RM 사이의 가격이었을 것이다. 432RM이 그 소년에게 주어졌다면, 며칠 동안 장사를 하지 않고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소년에게 기부하지도, 소년이 파는 과일을 사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그렇게 돈을 준다고 해서 당장의 형편만 나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내가 돈을 준다고 할지라도, 근본적인 원인은 해결될 수 없다.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할 수 없다면 이는 단지 내가 그 소년보다 돈이 많다는 이유로 그 소년을 돕게 된다면, 이는 쓸모없는 동정심에 불과하다.

그 소년을 통해서,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소년은 나의 어릴 적과 많이 닮아있었다. 물론 나는 그 소년처럼 무슨 물건을 팔러 나가본 적이 한 번도 없지만, 나도 그처럼 어린 시절 가난했었고, 그가 과일을 팔기위해 친구와 놀지 못하는 것처럼, 나또한 성격의 이유로 친구들과 잘 놀지 못했다.ー물론 이 말들은 그 소년에 대한 나의 추측에 불과하다.

어렸을 적, 잘살던 친구네 집에 놀러 가 우연히 먹었던 제주도 한라봉은 우리 집에서는 함부로 살 수 없었던 식재료였고, 한라봉을 먹고나서 집으로 돌아가 우리 엄마에게 차마 사달라는 말을 하지 못하며 학교 급식비를 내야된다고 말했었지만, 20대가 된 나는 매주마다 베이징덕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군대를 다녀오기 전, 돈도 사교성도 없는 나는 하고 싶은 것은 많았지만,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하지만 회사원이 된 지금은 ー사치가 아니라면ー 웬만한 것들을 체험할 수 있게 되었다.

말루리 역 앞 그 소년은 내가 성장했다는 것을 알려주었지만, 동시에 어렸을 적 나를 보는 것 같아서 기쁘기보단 오히려 씁쓸하고 슬픈 기분이 들었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이미 지나간 궁핍한 시기였더라도, 어렸을 적 궁핍했다는 분명한 기억은, 내 뇌리 깊숙한 곳에 자리 잡아 있었다. 흉터처럼, 그것은 현재에서 나의 과거를 마주할 때마다 느낄 수 있는 기억이었다.

내가 그 소년을 동정한다는 건 우월감이나 정복감과 같은 자아도취가 아니다. 내가 소년을 동정한 까닭은 소년에게서 투영된 ‘어렸을 적의 나’를 동정하고 싶었기 때문이 아닐까싶다.


- Prosh 사회인




작가의 말

다시 생각해보면, 참으로 비극이다. 내 동정심은 우월감에서 비롯된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예전의 나를 위로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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