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대현 Oct 30. 2021

조제 마우루 지 바스콘셀루스 -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초등학교 때 읽었던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라는 책을 다시 읽게 되었다. 어릴 때 펑펑 울면서 봤던 기억이 있다. 그 때는 꽤 감성이 풍부했었다. 지금은 감성이 메말라서 그런지 슬픔은 느끼지 않았다. 아마 내용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처음 읽었을 때의 감정을 느끼기 힘든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어린 시절 읽었을 때와 보는 관점이 많이 달라진 점이 있어서 흥미로웠다.



이 책은 1960년대 쯤 브라질에 있는 한 소년의 이야기다. 주인공의 이름은 제제 인데, 대한민국의 나이로 치면 7살 쯤 된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제제는 매우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실직자 상태에서 직장을 못구하고 있고, 어머니는 초등학교 입학할 나이 부터 일을 시작해서 평생토록 쉬지 않고 일만 해왔다고 한다.



얼마나 슬픈 크리스마스 만찬이었는지 나는 기억조차 하고 싶지 않다.
모두들 아무 말 없이 음식을 먹었다.

제제 집안의 크리스마스는 초상집 분위기였다. 선물도 없고, 기쁨도 없었다. 절망과 슬픔 뿐이다. 가난하면 인간의 삶이 얼마나 비극적으로 변할 수 있는지 이 한 장면으로 난 바로 느낄 수 있었다.


제제의 집에는 누나 3명에 형 1명 동생 1명이 있었다. 원래 2명의 동생이 더 있었지만 죽었다고 한다. 이런 집안에서 태어나서 그런지 제제를 제대로 돌봐줄 사람이 없었다. 돌봐주기는 커녕 조그만 잘못을 하나만 하면 구타하기 일쑤였다. 그렇게 독하게 자라다 보니 제제 역시 독한 장난을 많이 쳤다.


남의 집 빨래줄을 전부 잘라버리다던지, 스타킹을 뱀처럼 만들어서 임산부를 놀래킨다던지, 담배피면서 누워있는 사람 아래 불을 지펴 엉덩이를 거의 태워먹는다던지 제제의 장난은 끝이 없었다. 하지만 그때 마다 제제는 죽도록 맞았고, 매우 어린 나이였음에도 구타에 익숙했다.



찔렀더라면 창자가 나왔을까요, 아니면 인형 속에 든 지푸라기들이 나왔을까요?


  아리오발두라는 사람은 길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며 음반을 파는 사람이었다. 제제는 그 사람의 노래를 너무나 좋아해서 그 사람을 따라다녔다. 그런 제제를 아리오발두도 좋아했다. 제제와 아리오발두가 함께 노래를 부르고 음반을 팔고 있었는데, 한 여자가 다가와 아동착취를 한다며 아리오발두를 꾸짖었다. 그때 아리오발두는 칼을 꺼내들고 여자에게 겁을 준다.


어린 아이에게 충격적일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제제는 전혀 당황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중에 찌르면 창자가 나왔을지 인형 속에 지푸라기들이 나왔을지 장난으로 물어본다. 짧은 제제의 삶이 얼마나 폭풍 같았는지 보여줄 수 있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아냐, 고도이아 누나······.
왜 날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

 제제는 매일 같이 맞다보니 자존감도 바닥을 기었다. 그 어린 아이를 입원할 정도로 심하게 구타하는 가족들이 잘못되었지만 항상 자기는 맞을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제제는 장난을 심하게 칠 뿐 나쁜아이는 아니다. 가족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자기 동생을 잘 돌봐준다.


아버지한테 선물을 사주기 위해서 밖으로 나가서 구두닦이 일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자기를 챙겨주는 선생님에게 꽃을 꺾어다 주기도 했다. 사실 장난이 심한 것도 애정 결핍의 일환이기도 하다. 제제를 그나마 이해해주고 잘 돌봐주는 것은 글로리아 누나와 엄마 뿐이다.


제제는 새로 이사한 집에 있던 작은 라임 오렌지와 시간을 보낸다. 라임 오렌지 나무 위에 올라타 놀기도 하고 대화를 하며 위로도 받는다. 어릴 땐 몰랐지만, 다시 보니 어린 제제와 진심으로 함께 시간을 보내줄 사람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제제에게 새로운 사람이 등장한다. 고급 승용차를 타고다니는 포르투갈 사람이었다. 아주 무서운 사람이라는 이야기가 항간에 떠돌았다. 그래서 아이들은 그 사람의 차 뒤에 몰래 올라타기를 무서워했다. 하지만 제제는 용감하게 시도했고, 차가 출발하기 전에 뒤에 올라타 있는 것을 들키고 만다.


그 때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포르투갈 사람에게 엉덩이를 쎄게 맞았다. 그 이후로 제제는 포르투갈 사람을 싫어하지만 그 사람은 계속해서 제제에게 아는 척을 한다. 어느 날 제제는 유리조각을 밟는 사고를 당하게 되고 발이 심하게 다친다. 피가 계속 흘렀고, 잘 걷기도 힘들었지만 가족들에게 맞을 까봐 비밀로 한다.


그렇게 절뚝이며 학교를 가는 제제를 포르투갈 사람이 발견하게 되고 병원에 데려가 치료를 해준다. 그 뒤로 제제도 포르투갈 사람을 좋아하게 되었고, 계속 시간을 함께 보내며 뽀르뚜가라는 애칭(?)도 붙여주고 가족에게 할 수 없었던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제 마음속에서 죽이는 거예요. 사랑하기를 그만 두는 거죠.
그러면 그 사람은 언젠가 죽어요.

 제제는 상심해 있는 아버지를 위로해 준답시고 노래를 부른다. 그런데 그 노래는 아주 폭력적이고 외설적인 내용이 담긴 노래였다. 아마 제제는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불렀을 것이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 노래를 듣더니 가죽 벨트로 제제를 죽도록 두들겨 팬다. 피 범벅이 된 제제를 보고 글로리아 누나가 뛰어와서 말린다.


그리고 제제는 그때 아버지를 죽이기로 결심한다. 나중에 뽀르뚜가와 이야기하며 더 이상 아버지를 아버지로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는 말을 한다. 그러면서 더 이상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게 된다면 그 사람은 자기 안에서 죽게 된다는 이야기를 한다.


어릴 때도 이 말은 되게 충격적이었지만, 지금 읽을 때도 참 뜻 깊은 말인 것 같다. 인생에서는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스쳐지나가지만 사실 거의 나에게 의미가 없는 사람이다. 내가 어떤 사람을 사랑하기 시작했을 때 그 사람은 내 안에서 새로 태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사랑하던 사람도 사랑하기를 그만 두면 내 안에서 서서히 사라져버린다.


그러면서 제제는 뽀르뚜가가 자신의 진정한 아버지라고 입양해달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뽀르뚜가는 아버지와 좋은 관계를 이어가는 게 중요한 일이고 다른 사람의 자식을 함부로 뺏어가는 것은 안 된 다는 식으로 타이른다.



제제에게는 이제 뽀르뚜가 밖에 없었지만 뽀르뚜가는 어느날 자동차를 타고 가다 기차에 치여죽고 만다. 그 소식을 들은 제제는 정신적으로 극심한 충격을 받는다. 그 탓에 몸도 아프기 시작한다. 결국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고 시름시름 앓는다. 막상 제제가 이렇게 아프자 아버지도 형도 반성을 하며 제제를 돌봐주고 글로리아 누나나 엄마도 제제를 잘 돌봐준다. 하지만 제제의 상처는 그 무엇으로도 치료되지 않는다.


어린시절에 뽀르뚜가가 죽은 장면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묘사가 어찌나 생생한지 읽는 사람이 이야기 속으로 그렇게 잘 빨려들어갈 수 있도록 서술되었다. 그런데 이번에 읽으면서 느낀 거지만 이런 생생한 묘사들이 실제로 겪은 일이 아니면 쓰기 힘들다는 생각을 했다. 알고보니 이 이야기는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라고 한다.


어릴 때는 제제가 너무 말썽을 피워서 당연히 얻어 맞았겠거니.. 생각을 했는데 지금 자라서 다시 보니 아동학대를 당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제제가 유리를 밟아 피를 흘리며 글로리아 누나에게 울면서 찾아간 장면이 있다. 그때 제제는 글로리아 누나에게 대충 치료를 받으며 다른 가족들에게 비밀로 해달라고 당부한다. 맞을 까봐 겁이 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글로리아 누나는 그 부탁을 들어준다.


어릴 때 나는 역시 글로리아 누나는 착하다고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지금 보니 참 정상이 아니다. 유리를 밟아 피가 멈추지 않는 상황에서 가족한테 맞을 걱정을 하는 제제나, 동생의 발이 엉망이 되었는데도 부모님한테 말 안하는 누나나, 정상은 아니다. 오죽했으면 가족도 아닌 뽀르뚜가가 데려가 치료를 했을까. 참 가슴 아프다.


어린아이가 겪었다기에는 인생에 많은 이야기가 담긴 책이었다. 인생의 비극과 사랑. 고통과 죽음. 하지만 또 그 안에 소소하게 느낄 수 있는 즐거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작품인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 느껴지는 특유의 감정이 있는데 이게 어떤 건지 잘 모르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요한 볼프강 폰 괴테 -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