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te as Snow

Food & Poem 8 - 흰눈처럼 하얀 커피를 내리며

by 어진

흰 눈이 펑펑 쏟아지는 흐린 오후에 호숫가에서 실컷 뒹굴다가, 이내 고요한 창문 속에서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흰 드리퍼에 똑 똑 떨어지는 뜨거운 커피를 내리는 것. 그것은 핀란드 어느 깊은 눈숲 속 어딘가에 작은 통나무 사우나 집을 짓고 뜨겁게 목욕을 하는 행위와 맞닿아 있다.

낮인지 밤인지 알 수 없이 몽롱하게 하얀 백야의 눈숲에 침엽수는 살포시 눈을 싣고, 소년은 눈을 씻는다. 주변이 온통 새하얀 순수한 도자기 드리퍼 같은 숲이다. 숲 속 어느 얼어버린 옹달샘가에는 참나무 향이 나는 커피로 만든 작은 통나무집이 있다.


소년은 한 꺼풀씩 옷을 벗는다. 눈 오는 소리, 소년이 옷을 벗는 소리가 하얗고 순결하게 눈숲에 포개진다. 저마다의 마음속에 뜨거운 화덕과 불가마가 있어 매일 별을 구워낸다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소년은 그렇게 자기 마음의 속 중심으로 들어간다. 희디 흰 드리퍼에 담긴 뜨거운 재 속으로 눈 녹은 땀을 똑 똑 떨어뜨리며 걸어 들어간다.

흙 도가니 같은 소년의 자아에게로 눈 녹인 뜨겁고 순수한 물이 타원을 그리며 천천히 흘러 들어간다. 핸드 드립으로 고요하게 내려져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소년의 몸은 이제 흙 도가니에서 정제하여 일곱 번 순수하게 만든 은 같이 매끄럽다. 흰 하사미 드리퍼 같이 눈 같이 흠이 없다.

소년은 그렇게 눈숲 속으로, 자기 마음의 속 중심으로 들어간다.

그렇게 통나무 사우나 집에서 제련되어 뜨겁고 아름답게 달궈진 소년은 눈 속으로 나온다. 그리고는 눈이 있는 곳간 같은 옹달샘 위에 온 몸을 소리 없이 파묻는다. 눈은 설원 같은 소년의 살결을 사무치도록 격렬하게 껴안는다. 샘에서는 어린 양털 같은 숫눈들이 영원히 솟아오르고, 흰 눈 결정들은 소년의 속에서 솟아나는 우물이 되어 영존하도록 마르지 않는다.


날은 하얗게 흐려 부드러운 스웨터 같은 눈결들이 모든 것을 쏟아내듯 소리 없이 숲을 휘몰아 감는다. 상쾌한 차가움 속에 안락한 뜨거움이 있는 소년의 혼은 이제 열과 냉의 엔트로피가 더 이상 증가하지 않고 영원히 균형과 질서를 보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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