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 & Poem 9 - 대학로 60년 다방 「學林」
무거운 나무 문이 삐걱거렸다. 안과 밖의 공기가 뒤섞였다. 육십 년 된 입김의 결들이 쉬이 녹았다. 글과 커피로 만든, 「學林」이라고 불리는 숲에 어느 청년이 들어왔다. 그날의 마지막 손님이었다. 갈라진 문을 닫자 사환은 자신의 할 일을 하듯 조용히 마감 팻말을 걸고 문을 잠갔다.
숲에서는 문인들의 갈라진 혀끝 냄새가 났다. 금이 간 나무에서 나는 향기, 벌어진 시간에서 풍기는 냄새 같은 것이었다. 오래된 시인의 얼굴들이 엘피 커버 재킷처럼 납작하게 책장에 꽂혀 있었다. 그 사이를 음표들이 비집었다. 삐그덕거리며 바깥공기를 마시려 안간힘이었지만, 수많은 사람들에겐 그저 작게 새어 나오는 클래식 음악 한 줄일 뿐이었다.
동인들을 만나러 왔으나 그는 너무 기진했다. 졸음이 도둑같이 밀려오고 쓰라림이 커피 찌꺼기처럼 개어왔다. 글을 쓸 힘조차 없었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 다방이었다. 육십 년 전 이곳이 생각나지 않는 머릿속. 결국 동인들은 그가 있는 다방의 번지수를 찾지 못했고 만남은 성사되지 않았다.
문을 닫기 전, 모두가 마시어지고 비어버린 다방 이층 구석 자리에 그는 폐인처럼 눌러앉았다.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혀끝들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는 시간을, 언젠간 머릿속에서 먼지처럼 철거될 장소를, 그는 무얼 바라 기억하려고 했을까.
이 숲에 매일 눌러앉아 글을 쓰던 어떤 작가는 '글을 쓰는 행위는 그것이 어떤 글이든 과거를 끄집어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 말을 떠올리고는 이런저런 생각에 글쓰기를 이어나가지 못했다. 너무나 졸리고 피곤했다. 과거는 아무리 해도 떠오르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과거를 끄집어내며 글을 써야 하는가 하고 되뇌었다. 헛되고 덧없는 글쓰기였다.
그는, 그리고 우리는 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것들에 노스탤지어를 느꼈던가.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 현재를 느끼는 것보다 더 가치 있는가. 과거를 떠올리려는 이 순간을 기억할 수 있을까. 먼 미래에 이 순간을 떠올리면 지금이 아니라 혹시 지금 생각하고 있는 먼 과거가 떠오르게 되지 않을까. 어제를 더듬더가 오늘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서울에서는 언제나 피로했고, 내일로 달음질해야 하는 오늘은 항상 졸렸다. 옛 정취가 아련히 남아있는 이 다방이 서울이 아니라 파리에 있었다면, 그리고 지금이 아니라 먼 근대에 존재했다면 어땠을까.
나무 벽에 비스듬히 걸린, 흑백 활동사진 속 파리의 낮은 밤이 되고 새벽이 지나도 잠들지 않았다. 파리 카페에서 보들레르는 어떻게 하루에 커피를 사십 잔씩이나 마시며 글을 썼을까. 그 옛날엔 밤이 길었나 보다. 아무리 밤을 새도 새벽이 오지 않는 시절이었나 보다.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밤의 공간에서 오래도록 선한 영감을 흡입할 수 있는 건 부러운 일이었다.
그는 지금의 밤이 너무 짧다고 느껴졌다. 커피와 글과 함께하는 그의 시간은 한밤의 꿈처럼 찰나에 지나가 희미하게 사라질 것이었다. 그가 아무리 쓰고 지어도 완성하지 못하는 이 글처럼 힘없는 책갈피를 들추면 깃털처럼 떨어질 것이었다.
숲은 벌써 컴컴해지고, 닫을 시간이 다가왔다.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쓰다 만 종이를 테이블에 올려두고 문인들의 혀끝 냄새가 나는 커피의 마지막 한 모금을 들이켜고 미완성의 머리를 들고 숲을 떠났다. 참으로 허무한 결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