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생 보호자 일기 1

- 재수는 제주에서 하자!

by 어진아씨 어진아C

“엄마 아빠 허리가 휜다, 재수는 제주에서 하자!”


내일이면 드디어 개학! 아니고 개강이다. 대학교 개강이 아니라 재수학원 개강!

아이들이 어릴 때 겨울방학은 유독 길게 느껴져 개학하기만을 기다렸는데, 스무 살이 된 둘째의 재수학원 개강이 이리도 반가울 일이던가! 아니 경험해 본 사람들은 알 수도 있을 것이다.

완전한 살얼음판은 아니더라도 함부로 디디면 깨질 것 같아서 조심스러운 분위기로 12월부터 2월까지 석 달을 보냈으니 말이다.


수능을 보고 온 저녁, 가채점할 의욕을 잃은 둘째는 망했다고, 논술전형도 포기하겠다고 대성통곡하고 난리가 났다. 아이를 진정시키고, 결과보다는 과정이 더 중요한 거니 끝까지 마무리를 잘 지어보자고 달래서 논술전형을 치르게 했다. 그 이후 자기가 할 수 있는 게 더는 없다고 생각했는지 침울한 표정으로 12월부터 2월까지 3개월 동안 친구를 만나러 나갈 때와 졸업식 외에는 주로 자기 방에서 지냈다. 물론 결과는 수시나 정시 모두 낙방이었다. 당연한 순서지만 재수하겠다 했다. 그것도 첫째가 있는 서울에서.


하지만 첫째도 말리고 남편이랑 나도 말렸다. 이유는 돈이었다. 첫째의 학비야 일 년에 두 번이니 어찌어찌 마련한다지만 작년부터 자취를 해서 원룸 비와 생활비를 다달이 보내고 있는 형편이라 쪼들리고 있었다. 잘 다니던 회사를 2년 전 그만두고 털컥 홀로서기를 주장하며 자영업자의 길로 나선, 그래서 수입이 들쑥날쑥한 나를 남편은 불안한 시선으로, 엄밀히는 원망하는 눈빛으로 보고 있던 차였다. 나 또한 남편의 시선을 의식해 첫째의 원룸을 옮길 상황이 되자 “엄마도 보탤게!”라고 큰소리를 친 상황이었지만 고정지출 외에 아파트에 낡은 엘리베이터 교체 건으로 이백만 원이나 지출해야 했고, 더더욱 1분기는 가난한 시기라 부담스러웠다.

서울에서 기숙학원을 다니면 한 달에만 수백만 원이 들어갈 테고, 첫째의 자취방에서 학원에 다닌다고 해도 학원비에 생활비까지 하면 그 역시 부담스러운 액수였다. 거기다 첫째의 자취방에서 같이 지내면 형제지간의 우애마저도 장담하기 어렵다. 곁에 있으면 싸울 게 분명하다고, 엄마 아빠 곁에서 재수하면서, 엄마의 집밥을 일 년 더 먹고 오라고 첫째도 설득에 나섰다.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둘째는 제주에서 재수를 하기로 결정했다.


석 달 동안, 엄마아빠를 볼 면목이 없다면서 식사 때를 제외하고는 자기 방에서 칩거 생활 비슷하게 해서 나나 남편이 반대로 둘째의 눈치를 보게 됐다. 하루는 침울한 표정이었다가 또 언젠가는 무심한 듯 보여서 신경이 쓰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성인은 맞지만, 아직 소속된 울타리가 없어서 보호는 해야 하는 어중간한 수험생, 아니 재수생!


나나 남편은 반백 살 넘게 살아보니 대학 낙방 정도는 지나고 보면 점에 불과한 좌절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아직 인생 경력이 짧은 스무 살 당사자로서는 일생일대 크나큰 좌절로 느낄 상황이라 짠하기도 하고, 혼자 두고 장시간 외출하는 것도 살짝 걱정됐다. 그러다 보니 어서 3월이 되어 등록한 재수학원이 개강하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재수생 학부모가 된 것이다. 사실 친정어머니 간병 돌봄 하느라 작년 고3 수험생이던 시절에는 정작 신경을 쓰지 못했다. 수능을 망친 것도, 대학에 낙방한 것도 어쩌면 보호자인 내가 제대로 살피고 돌보지 못해서인 것 같아 미안하기도 했던 터였다.


둘째야, 재수를 해도 제주에서 하자! 이 엄마 곁에서. 이번에는 너의 하소연도 더 들어줄게!

미안해하고 후회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 자, 이제 내일부터는 불량 수험생 학부모였던 것을 만회할 차례다. 다시 나만의 속도로 걷는 일만 남았다. 아자!

SL372212.JPG 다섯 살? 무렵 둘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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