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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진아씨 어진아C Jan 07. 2021

사춘기의 말-‘밤 역시’ 그게 뭔데?

 

  

  “엄마, 아빠랑 동생은 안 그런데 엄마랑 나는 왜 뒤통수가 볼록하지 않아?”

  “아기 때 밤-역시(제주어 명사로 아기가 잠을 자지 않고 밤마다 울며 보채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가 심해서 구덕에 눕혀서 재우다 보니까 뒤통수가 평평해졌대.”

  “잉? 그게 뭔데?”

  “잠투정!”    


  그랬다. 칠 남매 중에 ‘밤-역시’가 제일 심한 아이였다. 위로 언니 2명과 오빠는 대-구덕에서 재워도 잘 잤지만 나는 대-구덕에서 잠을 못 이루고 울고 보챘다. 대-구덕(제주에서 사용하던 대나무로 엮은 요람)은 대나무로 엮은 직사각형의 길쭉한 바구니라 아이를 들로 밭으로 눕혀 등에 지고 다닐 때는 편하지만 애를 재우기 위해 흔들면 ‘탁탁’ 둔탁하게 소음을 내서 쉽게 잠이 오질 않는 구조다.     

  내가 예민한 탓도 있었겠지만 하도 울고 보채서 출산한 지 한 달도 안 된 산모인 엄마가 급기야는 직접 시골 오일장으로 걸어가 쇠-구덕을 사 오셨다 한다. 아들인 오빠가 누려보지 못한 호사를 나부터 누린 것이다. 물론 쇠-구덕으로 바뀌었다고 잠을 잘 잔 것은 아니지만 대-구덕보다는 흔들기가 편해졌다고 했다. 그래서 낮에는 언니들이 나를 재우는 횟수도 늘었고 그 시간에 엄마는 다른 집안일도 할 수가 있었다. 매일 운다고 이 사람 저 사람 모두 쇠-구덕을 흔들며 재우기에 급급했기에 뒤통수가 예쁘지 않다.     


  깊은 잠을 자지 못하고 쉽게 깨어나 울며 보채는 건 한동안 계속됐다. 그래서 엄마가 돌이 지난 나를 안고 동네 보살 집 문턱을 닳도록 다녔었다고 한다. 나도 기억한다. 국민학교 1~2학년 때까지는 가끔 새벽에 침 맞으러 다녔었고 보살 집에 도착해보면 우리 형제뿐만 아니라 동네 어린 애들부터 내 또래 큰애들까지 순서를 기다리던 그 시절을. 그 시절 우리 형제 중에서도 예민하고 유약해서 나는 질리게 침을 맞았었다. 큰 장침이 내 손끝 발끝을 시작으로 해서 점점 얼굴로 향할 때는 오싹함이 최고조로 달한다. 인중과 미간 중심을 쓱 찌르고 머리를 훑고 지나는 장침은 정말 극강 공포체험이었다.   

  

  세월이 흘러 결혼하고 첫아이를 무사히 자연분만으로 낳았다. 그런데 출산의 기쁨도 잠시 말로만 듣던 나의 ‘밤-역시’가 그대로 첫아이에게 나타났다. 외모는 아빠를 닮았는데 ‘밤-역시’하는 것은 나를 닮은 모양이었다. 그래서 미리 사뒀던 현대식 요람은 무용지물이 됐고 남편은 친정엄마와 함께 제주시 오일장으로 급하게 가서 쇠-구덕을 사 왔다. 출산휴가로 혼자 아이를 돌보던 시기에는 낮에는 쇠-구덕을 흔들며 대충 끼니를 때우기도 했었다. 3개월의 출산휴가가 끝나 다시 출근하기 시작하자 가정 탁아를 하는 아주머니를 섭외해서 아침에 맡기고 출근하면서 데리고 오기로 했는데 그분 역시나 하루 아이를 돌봐주고 나서 쇠-구덕을 갖고 오라고 하셨다. 그 아주머니도 쇠-구덕이 익숙한 분이라 많이 애용했다. 고개를 가누기 시작하자 집에서는 아기 포대기로 안기도 하고 업기도 하면서 재웠다.     


  첫아이의 밤-역시는 둘째를 임신하고 나서도 끝나지 않았다. 새벽에도 깨서 울고 보채는 큰아이를 안기도 하고 업기도 하며 재웠다. 그런데 신통방통하게도 둘째를 출산하고는 밤-역시가 많이 줄어들었고 어느새 새근새근 잘 자는 아이가 됐다. 예전에 친정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침을 맞힌 것도 아니다. 그런 부지런함(보통 새벽녘에 시간을 맞춰 보살 집에 침을 맞히러 가야 한다)은 애초에 따라 하지 못하거니와 내가 무서워하는 침을 아이에게도 맞힐 자신은 없었다.     


  단지 내가 한 일은 둘째를 임신하면서부터 ‘밤-역시’하는 첫째를 안고 재우며 속삭였었다.

“동생이 태어나면 우리 어진이(제주에서 이름 대신에 아기나 어린 아이들을 부르는 별명으로, 어질게 자라라는 바람도 내포함.)는 잠투정하지 않고 코-하고 잠을 잘 거야, 그지? 안 그러면 엄마가 너무 힘들단다. 네가 엄마를 도와줘야지.”     


  돌이켜보면 이것은 나의 바람이자 첫째에게 거는 주문이었고 암시였었다. 어쨌든 그 주문으로 애가 세뇌당한 것인지, 동생을 낳기 위해 진통하는 엄마의 모습을 곁에서 지켜봐서 그랬는지 동생을 아끼는 언니가 되었고 신기하게도 너무도 평화로운 밤을 보내게 되었다. 그리고 더 기쁘고 놀란 것은 둘째가 ‘밤-역시’를 하지 않더라는 것이다. 자다가 낑낑대면 젖을 물렸고 그러면 새벽까지 푹 잤다. 새벽잠을 설치지 않아도 되는 날들이 이어져 육아의 고단함을 훨씬 덜 느끼게 되었다. 밤-역시를 심하게 하는 것이 다행히 유전은 아닌 모양이었다.    


  뱃속에서 둘째는 엄마 목소리만큼이나 언니 목소리를 밤에도 자주 들어서 그런지 언니를 졸졸 쫓아다녔고, 언니는 동생을 보호자인 양 챙기고 보살폈다. 지금도 고2인 첫째는 동생을, 중2인 동생은 언니를 서로 챙긴다. 코로나19로 등교도 정상적으로 하지 못하고 집에서 같이 있는 요즘이지만 서로를 위해 역할 분담도 한다. 점심상 차리기는 둘째가 하고 아침 설거지와 점심 설거지는 첫째가 하고 있다. 사춘기를 요란하게 지나고 있는 녀석들이 가끔 다툴 때를 제외하곤 친구처럼 서로를 아끼고 챙기는 걸 보면 입가에 미소가 저절로 번진다.     


  초보 엄마들이여, 밤-역시 심한 아이라고 해서 걱정하지 말자! 아이의 밤-역시는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것이고, 오히려 섬세한 성향으로 자라 잘 챙겨주고 돈독한 형제와 자매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제주어-밤 역시 #밤 역시는 잠투정 #사춘기들의 우애 #육아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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