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둘째 생일에 있었던 일이다. 코로나19로 개학도 몇 차례 미뤄지고 급기야 온라인 개학을 맞은 시기라 우울해하던 둘째의 얼굴이 모처럼 밝아졌다. 일요일 오후 외출해서 친구들과 식사와 음료만 하고 오겠다고 반 통보식으로 알려 와서 허락했다. 노래방은 출입 금지할 것과 먹을 때를 제외하고는 친구들 모두 마스크를 착용하라고 엄포를 놓았다. 하지만 속으로는 ‘ 막막한 시기에도 어김없이 생일도 돌아오고 기념일도 맞는구나. 그래, 물리적 거리는 두되 마음을 나누는 일에는 소홀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토요일부터 비가 세차게 와서 일요일 오후 약속이 미뤄지든 하겠지 하고 내심 기대를 했지만 둘째는 빗속을 뚫고 기어이 친구들을 만나러 나갔다. 코로나19나 장대비도 막지 못할 유난스러운 둘째 친구들을 생각하니 초등학교 때의 일화가 떠올랐다. 5학년 때부터 친하게 어울리더니 졸업 후 다른 중학교로 진학했어도 서로의 생일을 챙겨주고 주말 저녁에 배드민턴도 같이 하는 사이가 됐다. 물론 코로나19로 주말 저녁 두 시간씩 하던 배드민턴도 2월부터는 중단되었지만.
그 애들과 어울려 다니던 5학년 시기에 다른 엄마에게서 연락이 왔다.
“둘째가 그 애들과 어울리는 걸 알고 있어? 아침에 애들 데려다줄 때 보면, 학교에 안 가고 모여서 **앞에 앉아 있더라. 학교 샘들이 그 애들에 대해 공부에는 관심이 없고 외모 꾸미기나 신경 쓰고 몰려다녀서 골치라고 하던데...”
“아, 그래요? 몇 번 봤는데 인사성도 좋고 흥이 많아 보였는데요.”
그 친구들이 학교에서 나쁜 평판을 듣고 있으니 어울리지 말도록 지도하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조언이었다. 물론 우리 둘째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었지만 공부에 관심이 없고 외모 꾸미는 것에 관심이 많다고, 화장을 하고 다니고 몰려다닌다고 문제아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였다.
저녁에 둘째에게 물어봤다. 혹시나 어울리는 친구들이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킨 적이 있는지.
“엄마, 그 애들 그렇게 나쁜 애 아니야, 샘 말에 고분고분하지는 않아. 샘들이 색안경 끼고 봐서 그렇지, 착한 애들이야. 공부엔 관심이 없어서 성적은 그저 그래. 성적이나 옷차림, 외모 보고 판단하지 말라고 엄마가 그랬잖아. 아침엔 그 가게 앞에서 애들 만나서 같이 등교해. 다른 반도 있으니 같이 수다 떨면서 가는 거야, 아침에 편의점 들려 군것질도 좀 하고.”
화장 좀 하고 다니고, 몰려다니긴 했다는 말이었다. 어른들의 눈에는 곱지않게 보여졌으리라. 그럼에도 난 둘째를 믿었고 그 친구들과는 어울리도록 내버려 뒀다. 6학년 때도 마찬가지로 선생님들이나 주변 엄마들에게 좋지 않은 애들과 어울린다는 말도 들었고 같은 무리라고 괜히 억울한 상황에도 처했다. 하지만 그 친구들과는 졸업해서도 지금껏 우정을 키워 오고 있다. 귀가 약속 시간을 몇 분 앞두고 현관문을 열고 둘째가 들어왔다. 우산을 썼지만 장대비라 바지도 흥건히 젖었다. 하지만 친구들을 만나고 와서 어느 때 보다 밝게 웃고 있었다.
“친구들 마음이 고맙다. 이 빗속을 뚫고 네 생일 축하도 해 주고...”
“응, 이 친구들과는 아마 오래 갈 것 같애.”
그때 그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게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 둘째는 마음이 맞는 친구들을 사귈 기회를 잃었을지 모른다. ‘그래, 그 유난스런 친구들이 있어서 네 인생이 따분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라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인생을 살다 보니 이젠 나름의 기준이 서서 솔직히 사람들을 가려서 만나게 된다. 그렇지만 그건 어른이 돼고 나서인 것이다. 청소년 시기에는 다양한 성향의 친구들을 많이 만나면서 사회성을 기르고 갈등도 겪고 조화와 협력을 배우는 경험을 많이 가져보는 게 낫다. 그러면서 나와 맞는 특성을 가진 친구들도 있고 맞지 않는 특성을 가진 친구들도 있다는 걸 체득해야 하겠다. 청소년 시기에 가려서 친구들을 사귄다면 이런 경험을 하지 못할 것이고 어른이 돼서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고 교류하기가 쉬울까? 대인관계도 연습이다. 연습 없는 실전이 어떨지는 어렵지 않게 그려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