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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진 Mar 10. 2022

어느 날의 독서노트

거짓의 조금-유진목



2021.8.21 교보문고 옥외간판




 어느 늦은 여름, 버스를 타고 가다 옥외간판에 [올여름 할 일은 모르는 사람의 그늘을 읽는 일]이라고 쓰인 글귀를 발견했다. 와닿는 문구라 버스가 지나치기 전 얼른 사진으로 찍어두었다.

 나는 에세이를 좋아한다. 에세이를 읽으면 대화 없이도 다른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는지를 보다 쉽게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종종 즉석에서 대화하는 것은 상대방의 말을 깊숙이 받아들이고 소화시킨다기보다, 짧은 숨으로 듣고 즉시 답을 내뱉어야 할 것 같은 때가 있다. 때문에 원하는 단어들을 골라 잘 정시켜 정제된 글로 표현한 것이 더 편하게 느껴진다. 다른 카테고리의 언어들보다 친밀하고 장벽이 낮은 것 같다.



 어떤 날은 업무 외에 타인과 사적인 대화를 하루 동안 10분도 채 나누지 않을 정도 극단적으로 메마른 생활을 할 때도 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하며 사는지, 나는 이런 생각을 하는데 남들도 나와 같은지가 궁금해진다.


 읽고 싶은 에세이를 고를 때의 기준은 단순하다.
쉽게 읽히는가, 공감 가는가, 전혀 새로운가(닮고 싶은 방향으로).


 이 책은 서점에서 훑어볼 때 한 순간에 시선을 쏙 빼놓을 만큼 공감 가는 문장을 발견해서 집어왔다.



하루는 신이 나에게 물었다. 어디로 가고 싶어요?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 없는 곳으로요.
거기가 어딘데요?
내가 없는 곳이에요.



 내가 이런 생각을 했던가?
머릿속으로라도 꺼내어 생각해본 적 없는 이야기인데 순간 사무치게 공감이 갔다.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고 싶다.
내가 없는 곳으로.


 그토록 나를 좀 내버려 두라고 목놓아 악다구니를 썼었는데.
모든 내용을 공감하는 건 아니더라도 그의 얼룩과 나의 얼룩엔 닮은 부분이 있었다.


 어쩌면 나는 타인에게서 나의 얼룩을 찾아내려고 필사적인 것 같다. 글을 읽으며 종종 전혀 다른 이야기에서 어느 한 문장만 오려와 나의 얼룩을 다시 그려내는 일들을 한다.
 또 어떤 때에는 읽다가 그의 얼룩이 사진처럼 선명하게 보여 내게도 번지는 것 같다.




 글쓴이의 생각과 선별된 기억을 읽고 나니 그의 생활이 궁금해졌다. Sns로 글쓴이의 계정을 들어가 일상 기록들을 보니 안심이 되었다. 다행이다. 얼룩을 뽀송하게 말릴 수 있는 일상이 있는 것 같아서.

 나머지를 마음 편히 읽었다. 인스타에서 본 그녀의 마른 팔뚝이 생각난다. 그 팔이 생각나 애잔하다. 더는 힘들지 않고 좋은 일만 생겼으면 좋겠다고 바본다.



 이 책을 읽고 그 문장이 너무 마음에 와닿아서 일기도 안 쓰던 내가 필사 노트를 쓰기 시작했다. 한번 더 쓰고 나면 마음에 꾹 눌러 잔불로 데워지는 느낌이다.





내용은 물론이고, 책도 예뻐서 마음이 더 갔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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