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진 Mar 08. 2022

어느 한복쟁이 번아웃의 해명

어른 방학이 시작되었다.




 나는 친구들도 말릴 정도로 이상한 완벽주의가 있다.

다른 데서는 헐렁한데, 어느 한 포인트에서 완벽해야 하는 나조차도 이상한, 강박에 가까운 완벽주의.


 대다수의 사람들은 주어진 시간 내에 가능한 전체적인 완성도를 보는, 효율적인 방식을 택하지만 아직 나는 고집스러울 정도로 하나를 잡으면 어느 곳을 뜯어봐도 무결해 보이길 원한다.


 이 두 가지는 언뜻 보면 완성도가 비슷할 수 있지만 미묘한 디테일의 차이가 분명 있다. 그 디테일에서 퀄리티가 결정된다고 생각기 때문에 시간을 더 써서라도 완성도를 높이고 싶어 했다.


 당신이 딱 봤을 때 어느 한 곳을 콕 찝을 순 없지만 어딘지 모르게 이상한 그 옷은, 아주 작은 부분이 잘못되어 있거나, 어설프게 마무리 되었을 수 있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물론 이런 작은 부분은 입고 움직이면 전혀 티가 안나는 경우가 많기는 하다.)



 현실적으로 어느 쪽이 정답이냐 굳이 따지면, 전체적인 완성도에 지장이 없다면 시간 내에 많이 처리할 수 있는 쪽이다.


나는 계속 이 일을 하면서도 4년여 가량이 지나서야 그 사실을 통감했고, 깨달았다고는 하지만 아직 포기가 안 되는 부분이다. 당연히 모든 한복에 몇십, 몇백 시간분의 정성이 들어가면 좋겠지만, 그 건 대부분 장인의 한복에나 가능한 일이다. 그러려면 한 벌에 들어가는 비용이 수백 단위를 넘게 된다.



현재 웨딩 한복 산업에서 가장 수요가 많은 것은 단연 대여한복이 아닐까 싶은데,

이 대여 한복이란 매주 수 십, 많게는 수 백 벌씩 나가는 것이라 출고할 때 모든 옷을 꼼꼼히 뜯어 살펴보기란 한없이 불가능에 수렴한다.




벽면 한가득 걸려있는 치마들


우리 샵은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매주 수십 벌을 출고하는데, 5~6명이 함께 달려들어도 숨 가쁘게 소화해내는 정도의 일이다. 수선과 다림질을 조금 헐렁하게 한다면, 소품에 조금 덜 신경을 쓴다면 쉬워질 일이다.

리는 최선을 다해 퀄리티를 높이고, 매 주 그들의 예식을 위해 힘닿는 데까지는 숨이 가쁠 만큼 열심히 했다.



수 십 번의 분무질을 해서 구김 없이 빳빳하게  다리고,  장갑 낀 손마저 뜨거워 붉게 익혀버릴 정도로 스팀을 쏘아 주름을 다린다.  체중을 싣고, 힘주어 팽팽히 잡은 주름을 체형에 맞춰 힘주어 누르거나,  둥글게 살리거나 하며.  바느질이 이상하면 풀어서 다시 하고,  옷감이 상하거나 염색이 조금 날아가서 처음 봤던 그 느낌이 달라질세라, 새로 제작해서 한눈에 봐도 반듯하고 정갈하게.   윤이 나고 태가 나도록.

당신이  고른 한복이 가장 귀해보이고, 돋보일 수 있게.




이런 어설픈 완벽주의로 8년을 아슬아슬 버텼더니 번아웃 비슷한 것이 왔다.


 요리를 못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실수가 불조절이다.

예열을 해야만 잘 익는 것이 있고, 약불로 익혀야 맛이 우러나는 것들이 있다. 나 역시 서투른 까닭에 불 조절에 실패해 여러 가지를 태워버린 것 같다.


모쪼록 식어버린 열정이 또 다른 온도로, 다른 방향으로라도 다시 뜨거워지길 바라며 어른방학의 포문을 열었다.







보기만 해도 배부른 기분이 든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