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따금 그리워졌다
본 적 없는 까만 밤하늘에 맞닿은 하이얀 메밀밭
얼굴도 모르는 다정한 마도로스 외할아버지
손길 한 번 닿아보지 못한 누군가의 강아지
어쩌면 일어났을 열여덟의 연애 이야기
다듬잇돌 위로 경쾌하게 퍼지는 뚝딱뚝딱 다듬이질 소리와 가만히 바람에 흔들리는 처마 밑 풍경소리
한 번도 내게 일어나지 않았던 일들과
허락되지 않은 사람들
익숙한 것에서 생경한 것이 겹쳐 보인 순간
본 적 없는 것들이 그리워 사무치는 일이 종종 있다
오렌지빛 구닥다리 조명에 부옇게 쌓인 먼지
아스팔트를 벗어난 땅에서 나는 흙냄새
만년필로 쓴 날짜가 적힌 빛바랜 사진
일기에 쓰고도 쓰지 않은 이름
이런 사소한 것들이 마음 속에 파란을 불러와
나를 몇 번이고 하이얀 메밀 밭 한 가운데,
깊은 밤 파리의 시간을 가로지르는 마차,
열여덟의 학교 복도로 데려다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