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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olpit Jun 30. 2023

꿀잠

'아무튼, 잠'을 읽고 내 잠에 대해서

진실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기억 속에 나는 잠을 적게 잤다. 강사 일로 오후에 출근이면서도 오전에 일어나려고 노력했고 심지어 새벽 5시에 일어나 계획대로 움직이고 낮잠은 안 잤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책 읽고 노래 듣다가 잠깐 졸았고 대체로는 그걸 '피곤'이라고 못 느꼈다. 걱정까진 아니지만 학생들 일로 신경이 쓰이는 밤이면 잠을 못 이루거나 꿈에서도 학생을 가르치며 스트레스를 받았다. 밤마다 한포진으로 손을 긁어대며 잤고, 긁는 동시에 어렴풋이 잠에서 깨어났으니 화가 나, 더 긁어댔다. 이러다 보니 잠을 좋아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자는 것이지 잠을 원하고 환영하진 않았다.  

   

집이 아니면 못 자기도 했다. 언니가 결혼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형부가 출장을 가게 되었다. 언니가 혼자 있기 무섭다고 해서 내가 언니 집에 가서 잤다. 난 거실에 이불 깔고 누웠는데, 꿈에서 형부가 현관문을 열고 거실로 와 내가 '어쩌지, 형부다, 빨리 일어나야지.' 하며 놀란 마음을 가졌다. 띡띡띡띡 띠리리~. 형부가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는 그 소리는 꿈에서 몇 번이나 나를 깨웠다. 그 뒤로는 언니 집에 가서 잔다는 소릴 하지 않았다.     


진실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이때 나는 잠이 부족했던 때일까, 적은 잠으로도 충분했던 걸까. 무엇이 진실인지 모르지만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 자동차를 얻어 타면 운전하는 분께 죄송해 잠을 참아내던 내가, 본능을 따르자는 나의 결심으로 눈을 감고 잠을 청하고, 이모네 방문하느라 새벽에 일어나 피곤했던지 잠이 와서, 어른들의 말에 따라 이모 집의 빈방에 들어가 잤다. 낮잠을 자고도 밤에 잠을 잘 잤다.     


병원에서 생활했을 때 처음엔 못 잤다. 첫날은 낯설어 그런 거라고 여겼다. 병실을 옮기게 된 첫날밤에도 괜스레 무서운 마음이 들어 보호자 침대에 누워 있는 엄마에게 손 잡아 달라고 말하며, 손을 잡고 잤다. 재활병원 와서도 첫날은 그랬다. 그래서 병원의 첫날은 으레 못 자는 건 줄 알았는데 이게 웬일. 이비인후과 치료로 입원했을 땐 내 침대인 양 잘 잤다.     


이렇게 잠이 '대놓고'는 건 2년 전부터다. 2021년 7월. 학생들의 시험이 끝나고 나는 수술을 하러 입원했다. 학생들이 시험 보는 날로부터 1달 전에 시험 대비를 하기에, 강사인 나도 지치고 힘들었다. 그래서 입원해 있는 내내 잠만 잤고, 퇴원하고는 인생무상을 느껴 잠만 잤다. 그때는 잠이 늘긴 했지만 현실 회피용이었고 잠을 자는 게 '좋은' 일이란 생각은 안 했다. 그러나 지금은 잘 생각만 하면 빙그레 미소를 짓게 된다. 보통 사람들이 걷는 것에 반밖에 못 걷지만 걷는 건 나에게 꽤 피곤한 일이다. 정신적으로도 그렇다. 자려고 눕는 순간 그 피곤함이 사라진다는 생각이 들어 침대를 떠올려도 좋고 베개를 떠올려도 좋다. 아빠가 퇴근하는 시간에 맞춰 5시 반이면 저녁을 먹는다. 그리고 우리 집은 9시에 불이 꺼진다. 각자 방에 들어가 늦게 잘 사람은 늦게 자지만, 대체로 나는 9시 반이면 하품이 나오고 10시엔 무조건 잠을 잔다. (강사 일을 했을 땐 10시에 퇴근했는데 이게 웬 영광인가.) 낮잠은 되도록 안 자려고 하지만 자게 되더라도 꿀잠을 잤다며 만족해하고 9시 반이면 다시 잔다. 손은 이제 안 긁는다. 일시적인 것일 수 있지만 지금은 그렇다. 잠을 달게 잔 덕분이라 생각한다. 5시 반에 일어날 생각 하면 잠이 모자라 못 일어나는 게 아니라 잠든 행복에서 깨어나는 게 아쉬워, '굳이' 일찍 일어나지 않는다. 9시 반에 자면서 중간에 깨지도 않고 아침 8시까지 잔다. 그제야 만족스럽다.  

   

무엇이 진실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동안 잠을 홀대한 건 사실이다. 몰아서 자는 잠은 그동안의 피곤을 가셔주는 건 아니라지만 난 그동안의 피곤을 가시듯 매일 충분히 잔다. 앞으로도 충분히 자는 생활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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