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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olpit Jan 18. 2021

사각사각사각사각

몽당연필을 좋아합니다

사각사각사각사각


칼로 연필을 깎는다. 옆에 연필깎이가 있지만 칼로 깎는 이유는 이것이 너무도 작은 몽당연필이 되어 버려서 연필깎이로 깎을 수 없기 때문이다. 몽당연필을 들고 책을 읽으며 밑줄 긋는 날 보고 동생은 물었다.


"누나는 왜 몽당연필을 써?"

"귀엽잖아."


나의 대답은 단순했다. 귀엽다. 그런데 정말 그것뿐이던가.


나는 긴 연필이 몽당연필이 되는 순간을 기다린다. 그리고 그 순간이 오면 그것을 몽당연필 모음집에 곱게 넣는다. 지금까지 모은 몽당연필은 열두 자루. 몽당연필 모음집을 만들기까지는 꽤 걸렸다.


나는 한 가지의 행동을 집중력 있게 하지 못한다. 어른이 되고 나서 더 그렇게 됐다. 책을 읽다가 그림 그리고 싶어 지면 책을 덮어 버린다. 그림을 그리다가 영상이 떠오르면 영상을 찾아서 본다. 책도 한 권만 꾸준히 읽지 않는다. 재미가 없으면 다른 책을 펼치며 읽다 보니 현재 읽고 있는 책만 해도 3권이다. 이러다 보니 짧은 외출에 짐이 한가득. 나 자신이 무엇을 할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나를 나 자신은 변덕쟁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예쁘다고 극찬하면서도 산 것을 끝까지 사용하지 못하는 나를 자주 봐 왔고 그런 나에게 매번 실망했다.




그래서 더욱더 몽당연필이 좋다.

이것은 내가 끈기를 가지고 연필을 사용했다는 증거다. 변덕 부리지 않았다는 증거다. 오래 물건을 사용하는 습관을 기르는 중이며, 오랜 것들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가짐을 되새기는 중이다.


오늘도 칼로 연필을 깎는다.

사각사각사각사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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