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메일 주소가 어떻게 되세요?

어른인 척할 필요 없어

by eolpit

선생님께 연락이 왔다. 메시지를 읽던 나는 그때 누군가에게 선생님이란 소리를 들으며 일하던 중이었다. 이제 내가 선생님이라니...


몇 년 전만 해도 나는 내가 누군가를 선생님이라 부를 수 있고, 그분과 아직까지도 연락을 한다는 게 나 자신이 아직 어리다는 뜻 같았고 어리게 살아도 된다는 뜻인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어깨에 짊어진 짐도 없으면서도 괜스레 가벼워지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나를 어린 열여덟 살로 바라봐주는 유일한 분이 아닐까 생각하니 더 소중했다. 지금은 그때의 모습에 때가 묻어 깨끗한 나를 바라봐주고 상상해주는 사람들이 없으니까. 지난날에 우연히 지하철에서 선생님을 만났던 기억은 그래서 더 애틋하다. 등 뒤에서 나긋하게 내 이름을 불러주시던 선생님. 더 이상 이름으로 불리는 일이 없기에 이름을 듣는 순간, 나는 열여덟 살로 돌아갈 수 있었다. 무거운 척하지만 정작 마음이 가벼웠던 열여덟 살로.


그런데 오늘은 어떤가. 여태까지 선생님의 연락을 받았던 '나'와는 다르게 오늘은, 선생님의 연락을 받고는, 는 열여덟 살로 돌아가지 못하는구나 싶어 서글퍼졌다. 열여덟 살과 선생님과 연락을 주고받던 지난날들의 '나'와는 다르게 지금의 나에게는 눈 앞에 확연히 보이는 짐이 있고, 짐을 등에 졌고, 그래서 마음을 아무리 가볍게 먹어 보려 해도 먹어지질 않아 애가 타는 내가 아니던가. 나에게 선생님이라 부르며 내 눈 앞에 앉아서 해맑게 웃는 저 18살과 나는 이제 같아지려야 같아질 수 없지 않던가.


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되어서도 난 선생님을 찾았다. 메일로 연락을 드린 것이지만 그때 나는 공강이 있을 때마다 학교 컴퓨터 한 자리를 차지하면서 선생님께 지금 갖고 있는 생각과 고민들의 보따리를 부끄러움 없이 펼쳐 보였다. 내 메일을 읽는 선생님의 마음이 어떠하실지 생각도 안 한 채. 만약 누군가가 지금도 그럴 수 있냐 묻는다면 단언컨대 난 지금도 선생님께 내 마음에 담긴 모든 것을 털어놓을 수 있다. 그러나... 선뜻 그래야지 하고 생각해내지 못한 것은


내가 열여덟 살도 스무 살도 아니기 때문은 아닐까. 더는 돌아갈 수 없어서 그런 건 아닐까.


마음이 조금만 무거워지면 여기저기에 기대던 어린 나는, 나의 다짐대로 점차 홀로서기를 하고 있다.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는 커다란 이물질을 삼켜 낸다. 누구를 굳이 찾지 않고. 쉽게 손 내밀지 않고. 그저 말없이 홀로 흔들리고 흔들린다.


그런 내가 되었기에 선생님의 연락을 받고도 해맑게 웃을 수가 없었다. 열여덟 살로 돌아가기에 너무 멀리 와 버린 것 같아서.


그렇지만 난 다시 생각을 돌려본다.

아직 나는 충분히 어리고, 누군가에게 기대도 좋을 나이라고.

열 여덟로 돌아갈 순 없지만 지금의 나로 선생님을 만나, 이 나이의 내가 갖는 생각과 두려움들을 망설임 없이 펼쳐 보여도 괜찮다고. 자꾸 어른인 척할 필요는 없다고 말이다.


그래서 선생님께 여쭈어봤다.

"선생님, 메일 주소가 어떻게 되세요?"


난 끝까지 선생님 앞에선 열여덟 살, 고민 많은 스무 살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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