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olpit Jan 19. 2021

선생님, 메일 주소가 어떻게 되세요?

어른인 척할 필요 없어

선생님께 연락이 왔다. 메시지를 읽던 나는 그때 누군가에게 선생님이란 소리를 들으며 일하던 중이었다. 이제 내가 선생님이라니...


몇 년 전만 해도 나는 내가 누군가를 선생님이라 부를 수 있고, 그분과 아직까지도 연락을 한다는 게 나 자신이 아직 어리다는 뜻 같았고 어리게 살아도 된다는 뜻인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어깨에 짊어진 짐도 없으면서도 괜스레 가벼워지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나를 어린 열여덟 살로 바라봐주는 유일한 분이 아닐까 생각하니 더 소중했다. 지금은 그때의 모습에 때가 묻어 깨끗한 나를 바라봐주고 상상해주는 사람들이 없으니까. 지난날에 우연히 지하철에서 선생님을 만났던 기억은 그래서 더 애틋하다. 등 뒤에서 나긋하게 내 이름을 불러주시던 선생님. 더 이상 이름으로 불리는 일이 없기에 이름을 듣는 순간, 나는 열여덟 살로 돌아갈 수 있었다. 무거운 척하지만 정작 마음이 가벼웠던 열여덟 살로.


그런데 오늘은 어떤가. 여태까지 선생님의 연락을 받았던 '나'와는 다르게 오늘은, 선생님의 연락을 받고는, 는 열여덟 살로 돌아가지 못하는구나 싶어 서글퍼졌다. 열여덟 살과 선생님과 연락을 주고받던 지난날들의 '나'와는 다르게 지금의 나에게는 눈 앞에 확연히 보이는 짐이 있고, 짐을 등에 졌고, 그래서 마음을 아무리 가볍게 먹어 보려 해도 먹어지질 않아 애가 타는 내가 아니던가. 나에게 선생님이라 부르며 내 눈 앞에 앉아서 해맑게 웃는 저 18살과 나는 이제 같아지려야 같아질 수 없지 않던가. 


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되어서도 난 선생님을 찾았다. 메일로 연락을 드린 것이지만 그때 나는 공강이 있을 때마다 학교 컴퓨터 한 자리를 차지하면서 선생님께 지금 갖고 있는 생각과 고민들의 보따리를 부끄러움 없이 펼쳐 보였다. 내 메일을 읽는 선생님의 마음이 어떠하실지 생각도 안 한 채. 만약 누군가가 지금도 그럴 수 있냐 묻는다면 단언컨대 난 지금도 선생님께 내 마음에 담긴 모든 것을 털어놓을 수 있다. 그러나... 선뜻 그래야지 하고 생각해내지 못한 것은


내가 열여덟 살도 스무 살도 아니기 때문은 아닐까. 더는 돌아갈 수 없어서 그런 건 아닐까.


마음이 조금만 무거워지면 여기저기에 기대던 어린 나는, 나의 다짐대로 점차 홀로서기를 하고 있다.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는 커다란 이물질을 삼켜 낸다. 누구를 굳이 찾지 않고. 쉽게 손 내밀지 않고. 그저 말없이 홀로 흔들리고 흔들린다.


그런 내가 되었기에 선생님의 연락을 받고도 해맑게 웃을 수가 없었다. 열여덟 살로 돌아가기에 너무 멀리 와 버린 것 같아서.


그렇지만 난 다시 생각을 돌려본다.

아직 나는 충분히 어리고, 누군가에게 기대도 좋을 나이라고.

열 여덟로 돌아갈 순 없지만 지금의 나로 선생님을 만나, 이 나이의 내가 갖는 생각과 두려움들을 망설임 없이 펼쳐 보여도 괜찮다고. 자꾸 어른인 척할 필요는 없다고 말이다.


그래서 선생님께 여쭈어봤다.

"선생님, 메일 주소가 어떻게 되세요?"


난 끝까지 선생님 앞에선 열여덟 살, 고민 많은 스무 살이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사각사각사각사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