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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olpit Jan 20. 2021

오후에 출근하는 나에게 새벽은 언제일까?

<새벽 편지>와 <나의 하루는 4시 30분에 시작된다>를 읽고


새벽이란 시간은 어쩌면 가장 편안한 시간


새벽에 깨어나

반짝이는 별을 보고 있으면

이 세상 깊은 어디에 마르지 않는

사랑의 샘 하나 출렁이고 있을 것만 같다.

고통과 쓰라림과 목마름의 정령들은 잠들고

눈시울이 붉어진 인간의 혼들만 깜박이는

아무도 모르는 고요한 그 시각에

아름다움은 새벽의 창을 열고

우리들 가슴의 깊숙한 뜨거움과 만난다

다시 고통하는 법을 익히기 시작해야겠다.

이제 밝아올 아침의 자유로운 새소리를 듣기 위하여

따스한 햇살과 바람과 라일락 꽃향기를 맡기 위하여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를 사랑한다는 한마디

새벽 편지를 쓰기 위하여

새벽에 깨어나

반짝이는 별을 보고 있으면

이 세상 깊은 어디에 마르지 않는

희망의 샘 하나 출렁이고 있을 것만 같다.


-곽재구, 새벽 편지




얕은 경험과 지혜를 가진 독자라 그러한가. 나는 시의 의미를 뒤늦게 깨닫는 편이다. 시는 한 번 봐서는 모른다. 보고 또 보다 보면 어느새 내 안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고 있다가, 불현듯 시가 갖고 있는 의미를 나에게 알려준다. 이 시도 마찬가지다. 이제야 마음에서 저절로 떠올랐다.


아침이 밝아오면 고통이 시작된다. 어떤 사건이 없어도 그렇다. 너의 고통이 무엇이냐 물으면 대답할 수 있는 사람도 있지만 없는 사람도 있는 법. 대답을 못 한다고 해서 그들의 고통이 없는 건 아니듯이 나의 고통도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면 없는 것이 되지만 나는 아침만 되면 괴로워한다. 아침이 고통스러운 이유는 고통과 쓰라림과 목마름의 정령들이 살아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언제 마음을 편하게 다잡을 수 있을까.


그것은 시에서 말하듯 '새벽'이다.


새벽은 고통과 쓰라림과 목마름의 정령들이 잠든 시간. 아무도 모르는 그 시간에 고요히 깨어 앉아 있으면 새벽은 나를 다독여줄 것이다. 그리고 고통을 직면할 수 있는 준비를 해 줄 것이며, 아침의 새소리와 따스한 햇살, 라일락 꽃향기도 맡을 수 있다는 마음의 여유를 선사해줄 것이다.  


<나의 하루는 4시 30분에 시작된다>에서 저자는 새벽 4시 30분이 가장 여유로운 시간이라고 했다. 나는 '새벽 편지'를 읽으며 그 시간이 가장 편안한 시간일 거라고 생각한다. 아직 4시 30분에 일어나 본 적이 없지만. 아무도 눈 뜨지 않아, 고요한 그 시각. 그래서 고통도 쓰라림도 목마름도 다 잠든 시간. 그 시간이야말로 행복의 시간일 수 있겠다.



덤?


4시 30분에 일어난다는 저자는 그 시간에 깨지 못하더라도 자책하지 말라고 한다. 그것은 덤으로 얻은 시간이니까 일찍 일어나면 덤으로 시간을 활용할 수 있는 것이고, 아니면 평소대로 행동하면 되니 아까워하고 안타까워할 필요가 없다는 거다.


4시 30분이 아닌 6시에 일어나는 나는 어떤가. 오후에 출근을 하는 나에게 6시 기상은 일반 직장인들이 4시 30분에 일어나는 것과 유사할 것이다.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측면에서.


그러나 나는 숫자로 계산했을 땐 그렇다고 끄덕이지만, 실제로는 덤이 아니라고 느낀다. 6시에 일어나면 가족들의 활동이 시작이 된다. 그러니 그것을 나만의 시간이라고 할 수 없다. 가족들이 각자의 일터와 생활로 찾아간 뒤 나에게 주어진 무수히 많은 시간도 나만의 시간이라고 할 수 없다. 그 시간은 다른 사람의 분주한 움직임을 바라보는 고통의 시간이고, 목마름의 시간이지 자유와 평화의 시간은 아니다. 그 시간은 이성이 찾아오는 괴로운 시간이지, 자유로운 영혼의 시간은 아니다. 그러니 6시에 일어난다는 나는 아직도 '덤'으로 얻을 수 있는 시간을 원한다. 나에게 진정으로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새벽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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