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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olpit Jan 27. 2021

ㅅ군 수업 일지

2020년 11월부터 2021년 1월까지

들쑥날쑥한 과외에 상처 받은 날이 작년이었다면 올해는 좀 다르다. 작년 말에 새로운 수업을 시작할 무렵, 다시 상처 받지 않기 위해,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분노하지 않기 위해, 나는 나를 다스리는 작업에 돌입했다. 그건 바로 ‘한 달만 하는 수업이야. 단기 아르바이트라 여기자.’라는 말을 되새기는 것이었다. 



말이라고 하는 건 사소해 보이지만 효과가 강력하다. 바로 어젯밤도 그러했다. 피부로 인해 다시 고통이 시작되었다. 아직 날이 따뜻해지기도 전인데 피부가 이렇게 뒤집어질 수 있다니. 게다가 이것은 전과 다른 피부 증상이어서 나를 더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빨리 병원 가서 치료를 받으려고 했건만 웬일로 마음먹은 일에 세상도 놀랐는지 하필이면 이때 병원이 휴진이었다. 스스로 관리하고 버티다가 병원에 가자고 다짐했는데, 어제 세수를 하고 나니 관리는커녕 상태만 심각해지고 나아지는 건 없어 보였다. 무엇보다 세수하고 나니 피부에 물이 닿아서 쓰라리고 아프기까지 했다. 슬픔이 찾아왔다. 불을 끄고 재빨리 침대에 누웠다. 잠이라도 편하게 자면 좋으련만 잠에 드는 것조차도 무서웠다. 잠자는 동안 내가 피부에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온몸에 소름이 돋고 마음에 슬픔이 차서 심지어 밖으로 넘치려고 할 즈음, 나는 속으로 외치기 시작했다.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그것만으로도 잘 안 되어서 내 이름까지 붙여가며 괜찮다고 다독였다. 그러자 어느 순간 몸에 돋았던 소름이 가라앉았다. 그리고 마음에 진정이 찾아왔고 난 그렇게 잠이 들었다. 



말이라고 하는 건 온몸을 지배할 힘을 가지고 있다. ‘괜찮아’란 말이 내 몸을 지배했듯 ‘한 달만 하는 단기 아르바이트야.’라고 되뇐 나의 말은 내 정신을 지배했다. 그래서 이번 과외를 하면서는 한 달 수업을 진행하고 상대방의 연락을 기다렸다. 

‘저와 한 계약을 계속 진행하실 건가요?’



단기 아르바이트라고 생각했다고 해서 일 자체를 허술하게 하진 않았다. 그와 동시에 내가 마음먹은 것은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자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수업을 하는 시늉만 하지 말고 내가 공부하듯이 열심히 공부하고 준비해서 가르치자는 다짐 말이다. 그래서 이번 수업을 하면서 난 정말 기운이 소진되는 느낌을 받았다. 누군가를 이해시키는 일이 이토록 힘들었던가. ㅅ군은 국어가 8등급이라고 했다. 8등급이 어느 정도인지 알지 못한 나는 막연히 국어를 어려워하겠다 싶었는데, 실제로 겪은 ㅅ군은 날 더 힘들게 했다. 독서 지문 3줄을 해석하지 못하는 ㅅ군을 이해시키려고 하니 ㅅ군도 힘들었을 테지만 나는 ㅅ군을 가르치는 짧은 90분이 180분처럼 느껴졌다. ㅅ군을 가르치고 나면 매번 배가 고팠다.



ㅅ군과의 수업은 한 달을 예상했는데 예상외로 길어졌다. 그리고 어젯밤.


“선생님. 아무래도 ㅅ 수업을 그만해야 할 것 같네요. 그동안 제가 수업을 강요했었는데 이번에 ㅅ이 혼자 해 보겠다고 해서 그렇게 해 보려구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ㅅ군의 어머니께 문자가 왔다. 나는 분노가 일지 않았다. 허무하지도 않았다. 원래 과외란 것은 단기 아르바이트니까 당연하게 느껴졌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안 최선을 다해 가르쳤고,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는 법, 그것이 지금 찾아온 것뿐이라고 생각하니 어제 밥을 먹고 오늘 밥을 또 먹듯 아무렇지 않았다. 오히려 그동안 친절하게 대해주신 어머니께 감사함이 일었다. 집에 방문할 때마다 따뜻한 차를 건네주시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현관문을 열고 나를 맞아주시던 분이셨다. 그랬기에 오히려 내가 ㅅ군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한 것 같아 약간의 죄송함마저 생겼다. 



그리고 난 새로운 사실 하나를 더 내 몸에 적용했다.

그것은 바로 ‘정직한 사람이 되자’다. 

수업을 그만하겠다는 연락을 받자마자 내가 든 생각은 환불을 해 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8회 수업을 다 마치지 못했으니 나머지 수업은 환불을 해줘야 한다. 과외를 그만하겠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사실 이 환불 때문에 자주 화가 났다. 생활비가 갑자기 바뀌는 것이니 누가 좋을쏘냐. 그러다 보니 환불 앞에 마음이 곧잘 쩨쩨해지기도 했다. 작년에도 이런 쩨쩨함과 상대에 대한 괘씸함에 얼마나 치사하게 환불을 해줬던가. 그런데 이번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상대방이 나에게 한 행동을 생각하기보다 내가 나에게 어떤 사람이고 싶은가에 대해 생각하자, 난 쩨쩨해지면 안 됐다. 책임감 있게 수업했듯 마지막도 정직하게 마무리를 지어야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환불하는 과정이 스트레스를 동반하지 않았다. 멋진 나를 내 스스로가 발견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건. 



만남과 헤어짐을 당연히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나의 노력을 결과로 평가하지 않고 제대로 값어치 있게 여기는 것. 헤어짐을 상대의 태도로 결정하는 게 아니라 나의 자세로 결정하여 상대를 대하는 것. 



그것들을 이번 수업에서는 나는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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