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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olpit Feb 01. 2021

저 미워하시죠?

'나'란 존재는 내 손에 눈에 피부에... 비호감을 드러낼 땐 조심...

누군가에게 “저 미워하시죠?”라는 질문을 받아본 적이 없다. 그래서 고작 서른세 번의 날들을 근거로 “이런 일은 여태 없었는데” 하며 ‘이상한’ 질문이라고 단정 지어 버렸다. 서른셋. 그게 얼마나 많은 숫자라고 그것을 근거로 판단했던 걸까. 아직 나에게 일어날 일은 무궁무진한데... 



며칠 전 나는 개인적인 연락 하나를 받았다. 그녀는 나에게 자신에 대한 선입견이 있는 것 같다며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나는 그녀를 유쾌하게도 불쾌하게도 생각해 본 일이 없으므로, 오해임이 확실하다고 적극적으로 변명을 했다. 변명을 하고 나니 그녀가 내가 자기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고 오해했을 법한 장면 하나가 떠올랐다. 그것은 첫 만남에서였다.     



첫 만남에서 나는 그녀가 읽고 있던 <자존감 수업>이란 책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현실에선 자존감과 자신감이 잘 구별되지 않아요.” 그건 순전히 나의 생각이었다. 온갖 책에선 자존감과 자신감이 다르다고 했지만 내 경험에 비추었을 때 대개는 자존감이 낮으면 자신감이 낮았다. 그 둘은 별개로 움직이지 않는 듯했다. 그래서 뱉은 말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이 말을 책이 아닌 자신에 대한 비판 혹은 비호감으로 받아들인 것일까.     



5년 전에 가입했던 독서모임에서 나도 이와 같은 경험을 했다. 내가 추천한 책으로 진행되는 토론에서 A양은 단호히 말했다. “전 이 책 싫어요.” 당황한 나는 침착하려 애쓰며 책이 싫을 수 있다고 나를 달랬다. 그런데 몇 주 후에 A양은 또 말했다. “전 그때 읽은 책, 재미없어요.” 이유는 없었다. 그저 싫다고 했다. 그러니 나도 그저 그녀가 싫었다. 왜 내가 추천한 책을 근거도 없이 비판하는가. 그러다 보니 그녀의 모든 행동을 그 순간, 그 사건에 맞춰 해석하기 시작했다. 이번의 말도 나를 싫어해서 뱉은 것일 거야, 이것도 그래, 저것도 그래, 거봐 그녀는 날 싫어하잖아 등등.      



자신이 애착하는 무언가를 비판하는 상대를 봤을 때 우리는 유쾌하지 않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도 그랬다. “나는 갤럭시 안 예쁘더라. 왜 저렇게 만들어?” 난 내 손에 들린 갤럭시를 쳐다보았다. 나는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친구는 갤럭시를 왜 싫다고 하는가. 친구는 물건에 대해 호불호를 드러내었다. 그걸 뻔히 아는 데도 기분이 유쾌하진 않았다. ‘그래 네가 쓰는 아이폰은 뭐 그리 좋으냐’고 말하고 싶었다. ‘다 거기서 거기 아니냐’ 고도 말이다.     



물건일 뿐이라고 하지만 그건 단순히 물건일 수 없다. 내가 쓰는 핸드폰은 곧 나의 일부분이고, 내가 읽는 책은 곧 나의 또 다른 면이다. 불호를 드러낼 때 좀 더 예의를 갖추며 말을 했어야 상대의 불편함을 없앨 수 있었을 거다.      



이번 일을 난 ‘이상한’ 사건으로 바라본다. 난 그녀와 친해지는 중이라고까지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인간이란 게 다 이렇지 않나 보편화시켜 보기도 한다. ‘나’라는 존재는 여기저기서 드러나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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