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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olpit Jan 25. 2021

질문에 대한 답은 여기에 적겠어요

말이 아니라 글로 배울 수도 있습니다

대학생 때까지 누군가가 던지는 질문에 생각나는 대로 대답을 한 적이 별로 없었다. 선생님이 하는 질문이면 정답을 맞혀야 한다는 생각에 답이 쉽게 떠오르지 않았고, 남들의 시선을 받는다는 것도 불편했으며, 내 대답이 굉장히 엉뚱해서 다른 사람의 무시를 받으면 어쩌나 두려웠다. 그래서 내 생각을 곧이곧대로 드러낸 적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글은 달랐다. 글로는 남의 눈치를 보지 않았다. 이 글을 읽을 사람이 내 마음을 봐주길 오히려 기다렸고 바랐다. 그렇게 해서라도 말로 표현하지 않은 나를 드러내려 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나의 담임선생님은 선생님이 되어 첫해를 보내시는 젊은 여자 선생님이셨다. 선생님은 여태 내가 봐 왔던 선생님과 달랐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일은 낮잠을 재우는 것이었다. 점심을 먹고 나면 선생님은 우리더러 책상에 앉아 엎드리라고 했다. 엎드리고 가만히 있으면 내 머리 위로 클래식이 흘러갔다. 흐르고 흘러 내 귀에 들어왔다가 빠져나갔다. 처음에 엎드려 있는 게 지루하고 답답했다. 곱게 눈을 감고 엎드리면 단조로운 검은색이 나를 괴롭혔고, 팔로 눈을 누른 채 눈을 뜨고 있으면 어지러운 검은색이 나를 괴롭혔다. 그러다 서서히 클래식이 내 귀로 들어가 빠져나오지 않는 순간이 찾아왔다. 내 귀가 클래식을 먹고 먹는 것 같은 기분. 그렇게 나는 클래식에 지배 당해 잠이 들었다. 선생님이 틀어준 클래식을 끝까지 들었던 아이가 있었을까? 그렇게 우리는 즐겁게 낮잠을 자는 12살을 보냈다. 낮잠을 재우는 것 말고도 선생님은 다른 선생님과 다른 점이 하나 더 있었다. 그것은 일기였다. 나는 일기 쓰는 걸 좋아하는 아이였다. 예전 담임 선생님들이 일기에 간단히 사인을 해 주어도 나는 실망하지 않고 열심히 일기를 쓰는 아이였다. 지금도 아무도 보지 않는 데도 열심히 일기를 쓰고 있지 않은가. 아무튼. 그때 선생님은 내가 일기를 써서 내면 다음장의 한 면 가득 선생님의 생각을 적어주셨다. 코멘트로 몇 줄이 아니라 한 가득 말이다. 나는 그런 선생님의 태도에 놀랐다. 그 당시엔 친구들끼리 '교환 일기' '펜팔' 같은 게 유행하던 때였다. 나는 그런 교환 일기를 선생님과 한다고 생각하니 더 설렜다. 얼굴을 마주 보고 하지는 못하는 말을 일기장에 주저리 늘어놓았고, 그 일기는 자주 한 장을 넘어갔다. 그러면 선생님은 또 한 바닥 가득 내 이야기에 대한 답을 달아주었고. 나는 그런 선생님이 가깝게 느껴져 좋았고, 영원히 나의 선생님이길 바랐다. 그런 선생님이 처음이었다. 그 뒤로도 선생님은 나에게 기억에 남을 만한 행동을 자주 하셨다. 같이 포토 사진을 찍으러 가기도 했고, 선생님의 물건을 선물로 주기도 하셨다. 선생님이 어려운 존재가 아니라는 걸, 선생님이란 사람이 멋진 사람이라는 걸 그때 알았다.



그때 경험이 말보다 글을 더 편하게 여기게 한 것은 아니다. 다만 말보다 글을 더 자신 있게 만든 하나의 기억이기는 하다. 어려서는 정말 질문을 받는 게 두려웠으니까. 그와 더불어 그 경험은 글로 남과 소통할 수 있다는 재미를 나에게 안겨주었다. 친구들과 편지를 주고받고 펜팔을 한다고 해도 그렇게 깊은 이야기까지 나누긴 어려웠는데, 선생님은 나의 모든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고 귀 기울여 주셨다. 남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나는 그것을 선생님과 글로 나누었다. 값지고 소중한 경험이었다.



질문에 답하기를 부끄러워하던 학생이 지금은 서슴없이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강사가 되었다. 게다가 사람들의 질문을 기다리는 어른이 되기도 했다. 부끄러워하지 않고 나 자신을 내보여야 소통이 시작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되었고, 그것은 말이 아니라 글로 배울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꼭 말이 아니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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