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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olpit Feb 25. 2021

웃을 때 웃고 울 때 울자

인생사 새옹지마란 말이 맞다


야근을 할 뻔했는데 하지 않게 되어서 신이 났다고 했다. 그리고 신이 난 채로 운동을 하다가 발을 다쳤다고 하면서 그는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말했다. 오늘 나의 하루도 ‘새옹지마’다. 수업 문의가 들어와서 망설이던 끝에 시범 수업을 하기로 결정했다. 망설임의 이유는 간단했다. 게으름. 차가 없는 나는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수업하는 곳까지 찾아가야 한다. 자동차로는 20~30분 걸릴 곳을 대중교통을 이용하니 한 시간이 소요됐다. 그것도 갈아타기까지 해야 했다. 그러니 틈만 나면 게으름이 고개를 들고 나를 유혹한다. 그러나 이번엔 게으름을 이겼다. 그리하여 수업을 진행했다. 수업은 꽤나 좋았다. 시범 수업일 뿐인데 어머니께서는 커피와 샌드위치까지 준비해 두셨다. 배려가 내 마음을 따스하게 했다. 과외가 성사되지 않는다 해도 따스함을 맛보았으니 괜찮다,라고 말할 정도로. 과외를 끝마치고 나와서는 오랜만에 햇살이 환하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일이, 새로운 일상이 활력을 갖게 만드는 것 같았다. 괜히 신이 났고 괜히 웃음이 났다.



그런데 저녁에 집에 돌아오자 그런 즐거움은 없어지고, 모든 건 반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녀왔습니다.” 인사를 하자마자 거실에서 마주 본 건 엄마의 하얗게 질린 얼굴이었다. 내가 두려워하는 엄마의 얼굴. 엄마가 놀랐을 때 매번 나타나는 표정인데, 엄마를 사랑하면 할수록 난 그 표정을 더 빨리 알아차리기 시작했고 두려움이 커지기 시작했다. 평소 엄마는 나를 보고 잘 웃어준다. 다녀왔냐고, 밥은 먹었느냐고 항상 다정하게 묻던 엄마다. 끝도 없이 오늘의 날씨며, 코로나19 상황이며, 요즘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늘어놓는 엄마였는데, 하얗게 질린 엄마의 표정이 나타나면 이 모든 것들은 멈춰버린다. 엄마의 웃음도, 엄마의 수다도 사라져 버리고 집안엔 적막만 가득하다. 엄마는 일이 거의 끝날 때쯤 기침을 했단다. 그런데 기침과 함께 피가 나왔다. 한 달에 한 번씩 병원을 다녀오는 상황이었고, 심지어 삼일 전에 진료를 받고 왔었다. 그런데 갑자기 피가 나오다니. 얼마나 놀랐을까. 엄마는 놀란 마음에 집까지 어떻게 왔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엄마는 말로 두렵다, 무섭다, 정신이 없다고 하지 않는다. 대신 나 때문에 네가 고생이다,라며 내 걱정을 한다. 난 그 마음을 안다. 엄마는 자식인 나를 위해서 두려움과 무서움을 참는다. 언젠가 한 번은 부모님께서 죽음을 의연하게 맞아 주신다면 자식인 나로서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 덜어지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러면서 나의 부모님은 아마 그러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와 보니 엄마는 내가 바란 어른이었다. 두려움을 내색하지 않으며, 자신의 공포를 혼자서 감내하는 어른. 그런데 엄마를 너무 사랑해서였을까. 엄마가 소리 없이 떨고 있는 게 눈에 보였다. 아주 선명하게.



엄마가 눈앞에 없으면 엄마의 소리 없는 떨림이 내 눈에 더 선명해졌다. 그래서 난 엄마가 안 보이면 우는 어린아이로 돌아갔다. “엄마, 우리 같이 자자.” 난 엄마와 같이 잠을 잘 수밖에 없었다. 나를 위해서. 엄마가 내 옆에 누워 있고, 엄마가 숨을 쉬고 있고, 엄마의 피부가 닿으면 그때 나는 웃을 수 있었다. 첫날은 역시나 잠을 자지 못했다. 엄마는 한 숨도 못 잔 듯했다. 나 역시도 그런 엄마의 움직임을 느끼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다음날 병원을 향하는 버스 안에서 엄마와 나 우리 둘은 잔뜩 긴장을 했다. 병원, 진료, 이 두 단어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힘이 들었다. 그렇게 찾아간 병원에서는 일단 코로나19 검사를 하고 오라고 말했다. 하루를 더 기다려야 하는 형편이 되었다. 코로나19 검사를 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자 그제야 웃음이 났다. 나 자신에게 여유가 생겼다. 아직은 심각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아직은 시간이 많다고 생각해서이리라. “엄마 나 아까 병원 갔다 올 때 긴장을 해서 배가 다 아프더라니까.” 엄마는 그 말에 싱긋 웃어 보였다. 엄마 역시 긴장이 풀린 걸까. 밤새 이루지 못한 잠을 낮에 보충하셨다. 오후에 정상적으로 출근을 했다. 1교시는 아무런 사건이 일어나기 전의 내 모습대로 수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그런데 퇴근이 가까워올 무렵부터는 마음의 공포, 두려움이 가득해졌다. 엄마가 더 아프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으로 입이 바짝 타들어갔다. 겨우 수업을 마치고 집에 오자 희한하게도 안심이 되었다. 엄마가 거실에서 웃으며 날 맞아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난 또 말했다. “오늘도 같이 자자. 오늘은 내가 엄마 방에서 잘래.”



모든 것이 결정되는 날. 나는 전날 학원에 연락해 수업을 못할 것 같다며 다른 요일로 변경을 요청했다. 오전에 병원에 가서 검사를 했다. 그때까지도 엄마와 나는 표정이 어두웠다. 아침밥이 넘어가질 않았다. 엄마도 나도. 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두 시간이 걸렸다. 집으로 돌아가기에도 애매해서 엄마와 보라매공원으로 향했다. 공원을 조금 거닐었을 뿐인데 엄마는 다리가 아프다며 쉬자고 했다. 평소 엄마는 이 정도는 거뜬히 걷는다. 매주 나와 산책을 하니 내가 안다. 그런데 이번엔 아닌가 보다. 내가 아무리 옆에서 떠들어 대도 걱정이 사그라들지 않는가 보다. 그러니 몸 자체도 쉬이 지치는 것일 것이다. 그렇게 쉬다가 병원으로 갔는데, 그때는 나 역시도 물을 먹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만큼 입이 타들어가기 시작했고, 배도 아프기 시작했다. 호흡할 때마다 산소가 부족했으며, 심장이 쿵쾅대는 울림이 온몸을 지배했다.



의사선생님을 마주 보고 앉아서, 의사선생님의 말 한마디, 한 마디에 그렇게 집중한 적은 처음이었다. 혹시나 다리에 힘이 풀릴까 봐 의자에 앉아 의사선생님의 말을 들었다. 결과는 다행히, 다행히, 괜찮았다. 내가 인터넷에서 본 심각한 증세들은 아니었다. 괜찮다는 말을 듣고도 엄마는 정신이 없어서 볼이 발개졌고, 나는 의사선생님께 감사하다고 인사드리고 나오자마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우리는 겁쟁이 모녀다. 엄마는 지난 60년간 살아오면서 자신이 보낸 몸의 증세와 다른 새로운 증세들 앞에서 많이도 놀랐다. 나 역시도 순수하고도 맑은, 선하디 선한 웃음을 가진 엄마를 잃을까 조마조마했다. 올해만 해도 벌써 3번째다. 전달에 안심하고 돌아서서 가는 버스에서 나는 엄마 팔짱을 끼며 말했다. “당신을 심히 걱정하였소.” 웃자고 한 말에 엄마는 정말 활짝 웃어줬다. 그런데 이번엔 엄마가 내 팔짱을 끼더니 환히 웃으며 말했다. “엄마 때문에 고생 많았어.”



스킨십은 잘 하지 않는 모녀인데, 요 근래 들어 손도 잡고 팔짱도 끼며 스킨십이 부쩍 들었다. 그리고 표현도 늘었다. 소중한 사람이라는 게, 내가 꼭 지켜주고 싶은 사람이라는 게 심장에 팔에 다리에 머리에 새겨진다.

우리는 언젠가 헤어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시간을 늘릴 수 있다면 더 늘리고 싶은 마음이다. 그때까지 우리는 행복해야 한다.



오늘도 엄마랑 같이 자야지.


참으로 웃고 우는 일주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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