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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olpit Mar 03. 2021

안 보이던 게 보였다

안 봤을까? 못 봤을까? 아니면 이제... 달라진 걸까?


칠판에 쓴 거 적어 줘,라고 말하자 ㅅ군은 눈을 비볐다. 그러더니 저거 시옷으로 적은 거예요? 저건 무슨 글자예요?라고 조금씩 묻더라. “ㅅ군아, 잘 안 보이면 앞에 나와서 적다가 다시 들어가도 돼.” 그제야 앞자리에 앉는 ㅅ군. 자리를 옮기며 ㅅ군이 농담조로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며칠 동안 게임만 했더니 앞이 침침해.”

보였던 게 안 보이기도 하고, 안 보였던 게 보이기도 한다. 그건 ㅅ군만 그런 게 아니다. 나도 며칠 동안 푹 쉬어서 그런가, 오늘따라 안 보였던 새로운 게 보인다. 그건 바로, 학생들의 변화다.



그이들이 중학교 2학년 때 나를 만났다. 처음에 봤을 때 참 말 안 듣더라. 장난만 치고. 그러다 중학교 3학년이 되자 그들이 서서히 눈에 들어왔다. 장난을 잘 치고, 공부도 안 하지만, 무엇보다 마음이 착하다는 게 눈에 쏙쏙 들어왔다. 공부를 하기 싫어하니까 내가 시키는 숙제도 싫고 내가 하는 말들도 다 싫을 텐데 꿋꿋이 숙제를 안 해오면서도 어른이라 그런지 선생님이라 그래 주는 것인지 “죄송합니다”, “꼭 해 오겠습니다” 등의 깍듯한 인사말을 꼭 했다. 거기다 덤으로 부끄러운 듯 웃어주는 미소까지. 그래서 난 그들이 공부는 싫어하지만 마음이 착하다는 걸 믿으며 일 년을 보냈다. 그리고 오늘. 그들은 고등학교 1학년이 되었다. 여전히 공부를 하지 않는다. 숙제를 한 명도 해 오지 않아서 나는 1월부터 그들에게 숙제를 내지 않았다. 싸워서 뭐 하나. 숙제 대신 수업 시간에 설명하고 수업 시간에 풀도록 하는 방법으로 바꾸었다. 그 탓에 진도는 느리지만, 어차피 숙제하지 않는 거, 그편이 그들에게 더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게 포기할 건 포기하고 맞춰가며 수업을 했는데, 오늘 갑자기 눈에 보였다. 그들이 변한 것이.



ㄱ군이 꽤나 얌전해졌다. 중학생일 때 ㄱ군은 주변 친구들에게 쉽게 농담을 하는, 가벼운 친구였고 공부는 무척 하기 싫어해서 매번 애를 먹였던 아이였는데 오늘은 친구들이 다 농담하는 와중에 혼자서 문제를 푸는 모습, 내 설명에 혼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게다가 ㄱ군이 나에게 질문을 하니, 친구들도 ㄱ군의 영향으로 떠들기를 그만하고 문제를 푸는 모습으로 변하더라. 이게 뭐지.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게 이제 보이는 건가. 푹 쉬고 나왔더니 캄캄했던 게 환하게 보이기 시작한 걸까.



ㄱ군뿐만이 아니다. ㅁ군은 서서히 국어 실력이 늘어가고 있다. 문제를 풀리고 답을 부를 때 ㅁ군은 대체로 정답을 맞힌다. 예전과 다르게. 고등학교 국어에 대한 개념이 하나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가랑비에 옷 젖듯이 서서히 쌓여갔나. 집에서 공부를 했던가. 이제 공부를 하려고 마음을 먹은 것일까. 한 반에 두 명이나 새롭게 보이니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그런데 사실 그 반만 그런 건 또 아니다.



독서논술반이 개강한다. 저번에 수업을 수강했던 학생이 다시 이 수업을 수강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어머니께서 나에게 따로 연락을 하셔서 개강하기를 기다렸다고 이야기까지 하시니 감사한 마음에, 수강생이 한 명이어도 수업을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그 학생과 같이 수업을 듣는 ㅂ군도 듣겠단다. 작년에 독서논술반 수업이 있는 걸 알았던 ㅂ군은 나에게 절대 이 수업은 듣고 싶지 않다는 식으로 이야기했었다. 그리고 진짜 수강하지 않았고. 나 역시 ㅂ군은 책에 흥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글자를 읽기 싫어서 한 줄, 한 줄 건너 읽는 그의 습관을 바라보며, 나는 ㅂ군을 자주 지적했었다. 그런데 일 년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ㅂ군이 독서논술반에서 수업을 듣겠다고? 책을 읽겠다고? 책 읽기 너무 싫어서 한숨을 내쉬던 ㅂ군이? 이상한 마음에 ㅂ군을 자세히 보니 이제는 그가 글자를 더 이상 띄엄띄엄 읽지 않는다. 숙제도 숫자를 찍어서 적어오지 않는다. 아직 글을 잘 읽는다고 할 수 없지만, 숙제를 완벽하게 해 온다고 할 수 없지만 분명히 작년과는 달라졌다.



조카는 3살이 되자마자 여태까지 듣던 모든 소리를 입 밖으로 내뱉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지금은 심심해, 가 아니라 무료해,라는 말을 사용하고, 이모의 실수로 아직도 선물을 받지 못해 실망했으면서도 나를 배려하기 위해 괜찮다고 말해주기까지 한다. 아이들은 성장한다. 어린아이들은 일 년마다 아니 6개월마다 몰라보게 크지만, 청소년들은 그렇지 않다. 변화가 겉이 아니라 속에서 일어나 관찰하기가 어렵다. 보이지 않을 뿐이지 그들은 매번 달라지고 있다.

오늘 나도 눈을 비벼 보았다.

안 보이던 것들이 오늘따라 반짝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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