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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olpit Apr 07. 2021

풍선을 띄울 거야

기대가 실망으로 변할 때


약속이 깨진 상황들이 나에게 다가왔다. 온라인 모임이, 단순히 통화하자는 약속이, 과외를 해 달라는 요청이 그렇다. 정해놓은 것들은 제시간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것을 순전히 약속을 깬 사람, 즉 상대방 탓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마음껏 탓한 적은 없다. 나 역시도 그럴 때가 있을 수 있다 생각했고, 상대방도 일부러 그런 게 아니니까 마음이 너그러운 척 이해하고 넘어갔다. 그러나 속으로는 아니었다. 불쾌하고 불만 가득한 어떤 기운이 내 안에 꿈틀거렸다. 억지로 그것을 말로 변환시키지 않아 내 마음에 대한 인지를 둔감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그런데 이게 또, 모든 깨진 약속에 대해 이런 감정을 갖는 건 아니다. 과외가 취소된 것은 전혀 내 마음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그 차이는 무엇일까. 바로 기대다.




온라인 모임에 참석하면 나는 아침부터 활기를 띤다. 인간관계가 워낙 적은 탓에 사람과 그나마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자 사람 구경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책이라는 매체를 좋아하다 보니 책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좋다. 책을 통해 대화하지 않으면 우리는 무슨 대화를 할 수 있을까. 오늘 뭐 먹니? 건강은 어떠니? 해야 할 일 다 했니? 정도가 고작이다. 필요한 말이고 고마운 말이지만 그것만으로 이루어진 대화는 건강하지 않다. 다른 말들이 끼어들어야 하는데 그 화제를 찾기란 어려워서, 그걸 도와주는 게 책이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나는 온라인 모임에 참석하길 좋아하는데,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기대가 커졌다. 눈을 뜨는 게 어렵지만 막상 모임에 참석하면 책도 읽을 수 있고 사람 구경도 할 수 있고 더불어 나의 하루가 이른 출발로 풍족해질 거라는 기대가 무럭무럭 자랐다. 그런데 이 야속이 깨졌다.




오랜만에 친구와 전화 통화를 하기로 마음먹고는, 이날, 몇 시에 통화를 하자고 이야기했다. 친구는 당일이 되자 다른 날 전화하면 안 되냐고 물었다. 다른 날로 바꿔도 괜찮았다. 다만 시간이 안 맞았을 뿐. 그래서 결국엔 정해놓은 날에, 정해진 시간에 전화를 했다. 그런데 이 한 번의 깨짐이 나의 기대를 인지하게 했다. 친구와 나누는 오래간만인 대화가 따스하고 솔직한, 다정다감한 시간이 될 거라고 기대한 것이다. 전날 전주 초록이와 전화를 했을 때 그러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상을 이야기하면서 그 안에 담긴 마음을 이야기했다. 사실적인 일들과 그에 얽힌 생각들이 적절히 섞여 대화를 풍요롭게 만들었다. 어떤 생각과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었는가에 대해 나누는 대화는 즐겁다. 그런 것들은 가까운 사람 아니면 말할 수 없는 것들이다. 더불어 가까운 사람은 그 마음에, 생각에 질문을 던져 주기도 하며, 알고 싶어 해야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친구와도 그런 대화를 하고 싶다, 할 수 있다는 기대를 품었는데, 한 번 약속 깨지는 소리를 듣고는 ‘안 그럴 수도 있다’는 예감이 퍼뜩 들었다. 친구의 성향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사실적인 이야기들만 나누는 친구와 나의 대화 패턴.




두 가지의 일들이 한 번씩 깨지면서 내 안에는 물음표가 떠올랐다. 내가 속이 상하는 건 정말 상대의 탓일까? 그렇지 않다. 내가 그만큼 두 관계에 대해 마음을 쓰고 있었으며 기대를 했던 탓에 깨지는 소리에 속이 상한 것뿐이다. 그렇다면 기대를 하는 게 잘못일까? 그것도 아니다. 예전에는 기대를 하지 말아야 하나보다 생각했는데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사는 게 참으로 지루하게만 돌아간다. 마음을 주고, 관심을 주다가 생기는 기대인데 그걸 어떻게 낮출 수 있나. 어떻게 없앨 수 있나. 나는 아직 그 방법을 모른다. 그래서 지금은 이렇게 정리한다. ‘기대를 충분히 하고, 그러다 우연히 기대가 좌절될 때는 그저 허공에 떠 있는 기대감을 펑 하고 터뜨리자.’ 그리고 다시 기대를 하면 된다. 풍선 하나 터뜨리고 다시 풍선 하나 띄우고. 풍선을 절대 안 띄울 것처럼 굴 필욘 없다. 그렇게 하면 재미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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