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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olpit Mar 31. 2021

나가기 직전, 우린 한차례 변한다

언제까지 일하시고 퇴사하시나요?


섬세한 선생님이 좋았다. 학원에 일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나 싫다는 여학생을 마주해 나는 큰 상처를 받았다. 첫 수업을 했을 뿐인데 내가 싫다고 줄줄줄 읊어댈 만한 게 있다니 놀라울 따름인데다, 어떻게 내가 아직 퇴근도 안 하고 있는데 그런 험담을 원장님께 전하고 앉아 있는 것인지. 또 원장님은 그 사실을 아이를 앉혀 두고 나에게 쪼로로 달려와서 이야기를 해 댈 수 있는 것인지. 그 소리를 들었는데 당연히 앞으로 그 수업은 하기 싫어지지 않겠나. 아무튼 그날 이후 나는 학원에 출근하면서 지었던 미소를 무표정으로 바꾸고, 나 싫다는 곳에 나 역시도 수업하기 싫다는 마음을 되새기며, 그만둘 각오를 하며 수업을 이어나갔다. 그러고 있는 때, 선생님께서 내 어깨에 손을 올리시더니 괜찮냐며 초콜릿을 건네셨다. 내 상처를 알아봐 줬고, 위로해 줬다는 데에서 나는 감사함을 느꼈다. 내 편은 하나도 없다고 확신한 일터에서 내 편을 만나다니, 위안이 되었고 힘이 되었다. 그 뒤로 나는 그 선생님을 따르며 일을 해 왔다.



그랬던 선생님이 이제 학원을 그만두신다. 예전부터 선생님이 느껴온 갈등을 들어왔던 터라 그만두신다는 결정이 놀랍지는 않았다. 더 놀라운 건 따로 있었다.



“제가 금요일마다 과외가 있어서 인사도 못 드리고 일찍 나갔어요.”

“아 그랬구나. 난 또 뭐 저렇게 빨리 나가나, 사람이 왜 그러나 했어요.”



내가 아는 선생님은 이렇게 말할 사람이 아니다. 그저 ‘아 그런 일이 있었구나.’ 하고 너그럽게 받아주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런 말을 하시다니. 4년 만에 처음 보는 모습이다. 이런 말도 하셨다.



“아니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컴퓨터 먼저 쓰는 건데. 왜 말 안 했어. 여기서 이제 문서 작성하면 어째. 나도 수업이 있는데.”



웃으면서 하신 말씀이지만 나 역시도 웃으면서 속으로 적잖이 놀랐다. 예전에 선생님께서 인쇄를 하고 계실 때 내가 나의 차례를 기다린답시고 선생님 뒤에 기웃대며 서 있던 때가 있었다. 퇴근할 때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집에 도착하고 나서 선생님께 연락이 왔는데, 인쇄 기다렸냐면서 다음에는 급하면 자기한테 먼저 이야기하라고, 서로 너무 배려하지 말자고 다정하게 말씀하셨다. 그랬던 분이 내가 컴퓨터를 오래 붙잡고 있다고(10분...) 혼내는 격으로 말씀하시다니... 그럼 그간 배려해 줬던 것들이 다 속마음과 반대되는 것들이었을까?



학원이 싫어져서 그만둔다고 하시는 거다. 충분히 싫어질 만도 하시다. 그래서 불만이 가득한 얼굴도 이해가 되고 학원에 대해 안 좋은 소리를 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 그런데 나한테 너무 속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만은 이해가 안 된다. 이제 나하고도 인연을 끊을 생각에 솔직하게, 느낀 대로, 포장 없이 이야기하는 건가. 섬세하고 예민하신 분이지만 긍정적인 분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불만들이 가득하면서도 상대를 배려하느라 그것들을 표현하지 않으시는 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는 불만들이 밖으로 표출되기 시작한 걸까.



오래 근무했던 곳에서의 마무리가 좋지 않은 일을 보는 건 안타깝다. 좀 허무하달까. 일했던 곳에 애정이 없을 수가 없는데 막판에 이렇게 되면 모든 게 다 사라져버리고 마는 것이니 그곳에서 일했던 나의 노고도, 나의 보람도, 나의 웃음도 사라져 버리는 것 같다. 최근에 읽은 책에서, 사소하지만 반복적으로 계속되는 일들에 대해 불만을 갖는다면 사소하다 해서 숨기지 말고 터놓고 이야기해야 한다는 말을 봤다. 일도 마찬가지다. 불만이 있다면 즉시 이야기하고 해결하는 게 좋다. 불만이 쌓이고 쌓여 폭발할 때까지 가만히 놓아두는 건 모두에게 좋지 않다. 나 자신이 기억해야 할 말이다. 내가 이 학원을 나갈 땐, 아니 모든 학원에서 퇴사를 할 때, 마음에 걸리는 것 없이 깨끗하게 치워진 마음으로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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